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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항에서 본 핀란드의 현재 조용하기만 한 북구의 나라 핀란드는 현재 남녀 성평등이나 복지 수준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겨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도 세계적인 단말기 제조업체 노키아를 일어 내는 등 상당한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헬싱키항에서 본 핀란드의 현재조용하기만 한 북구의 나라 핀란드는 현재 남녀 성평등이나 복지 수준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겨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도 세계적인 단말기 제조업체 노키아를 일어 내는 등 상당한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 권기봉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이상향이 있는 걸까. 이 사회의 모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정치·사회적인 면에서의 이상향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청년도 있을 테고, 언젠가 책에서 본 곳 혹은 텔레비전에서 순간적으로 지나가던 화면이지만 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상향을 지닌 채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단 이상향이란 것이 한번 그곳을 가보거나 실현하게 되면 더 이상 이상향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것이 끝이 없는지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가게 되는 것이 또 이상향인가 보다.

3만여 개의 호수를 가진 북구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중학교 시절부터 언젠가 한번은 찾아가야 할 나름의 이상향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상향이라기보다는, 이 여행자의 이상향을 노래한 한 교향시의 고향을 찾아간 것이리라.

반갑다 헬싱키! 하루동안 북해를 항해해 도착한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헬싱키항 저편으로 낮은 건물들 사이에 유난히 우뚝 솟은 대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반갑다 헬싱키!하루동안 북해를 항해해 도착한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헬싱키항 저편으로 낮은 건물들 사이에 유난히 우뚝 솟은 대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 권기봉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접한 '핀란디아(Finlandia)'는, 1899년 얀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교향시로 크게 4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당시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시벨리우스의 모국 핀란드의 암울했던 역사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 먼 유라시아 서쪽 끝의 교향시가, 그리고 그 배경이 유라시아 반대편 끝 나라에 살고 있는 저자에의 이상향이 되었을까. 그저 핀란디아가 꿈꾼 그 '자유'가 좋았다. 그저 핀란디아에서 보여주는 그 '희망'이 한 청년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기 때문이다.

유럽 대륙에 위치한 나라의 수도들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헬싱키를 찾아가기 위해 거쳐간 곳이 스웨덴 스톡홀름이다. 폴란드나 러시아를 통해 갈 수도 있겠지만 비자 등의 문제가 있기에 통행에 별다른 심사가 없는 스톡홀름에서 북해를 건너 헬싱키로 들어가는 배편에 몸을 싣는다. 거의 12시간에 이르는 북해의 찬 바다를 항해한 끝에 도착한 헬싱키항은 건물과 거리의 모습이 우리와 다르고 피부에 느껴지는 기온 역시 차이가 있지만, 하나같이 나지막한 건물들이며 여유 있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서울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한적함' 그대로이다.

압제에서 벗어나 주변에 스웨덴과 러시아 등 강국으로 둘러싸여 있어 오랫동안 압제를 받은 것 등, 우리 나라와 다소 비슷한 역사를 지닌 핀란드. 1917년 12월에 이르러 러시아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진은 핀란드 국회의사당.
압제에서 벗어나주변에 스웨덴과 러시아 등 강국으로 둘러싸여 있어 오랫동안 압제를 받은 것 등, 우리 나라와 다소 비슷한 역사를 지닌 핀란드. 1917년 12월에 이르러 러시아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진은 핀란드 국회의사당. ⓒ 권기봉
스톡홀름에서 막 여객선이 도착한 새벽녘부터 핀란드 총 수입물량의 절반 이상이 거쳐가는 핀란드 무역의 중심지 헬싱키항에는 시장이 서 있었다. 주로 털이 복슬복슬한 모자나 목각 인형 등 관광상품을 판매하고 있었지만 지금이라도 막 튀어 오를 듯한 북해의 싱싱한 생선과 과일도 시장 상인들의 판매 품목에선 빠지지 않았다.

한편 시장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가면 세나테 광장에 이어지는데 여기에는 헬싱키항으로 배가 들어오면서부터 한눈에 들어오던 대성당이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잠시 아침이라도 할 겸 샌드위치 한 조각을 사 광장 계단에 앉아 이리저리 나름의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마음을 좀 진정시키고 핀란디아와 시벨리우스를 만나러 가도록 하자.

그 길에 핀란드 국회의사당이 있으니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춰 보자. 주변에 러시아와 스웨덴 등 강대국으로 둘러싸여 우리 나라와 비슷하게도 피압박의 역사를 가진 핀란드. 어쩌면 이러한 점 때문에 핀란디아에 더욱 매료되었는지도 모르는 핀란드는, 우리나라보다 조금 이른 1917년 12월에 이르러 러시아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핀란디아의 선율을 따라 국회의사당 근처에서 만난 핀란디아홀. 마치 '핀란디아'와 '투오넬라의 백조'의 선율이 느껴지는 듯 하다.
핀란디아의 선율을 따라국회의사당 근처에서 만난 핀란디아홀. 마치 '핀란디아'와 '투오넬라의 백조'의 선율이 느껴지는 듯 하다. ⓒ 권기봉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한 핀란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를 점령한 러시아군과 유혈 내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상황이 곧 진정되어 의회를 통해 핀란드 초대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바로 그 국회가 있던 곳이 바로 이 핀란드의 국회의사당이라고 한다.

아, 하마터면 중요한 것을 지나칠 뻔했다. 국회의사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핀란디아홀'이 있다. 우리로 치자면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정도 되어 보이는 음악당인데, 이 곳에 앉아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를, 그리고 투오넬라의 백조나 엔 사가 등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서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길을 한참 걷다보면 어느새 녹음이 짙은 공원에 들어서게 되는데 '시벨리우스 공원'이다.

경의를 표함 헬싱키 시내에 위치한 시벨리우스 공원.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 공원에는 시벨리우스를 기리기 위한 조각품과 그의 두상 등이 자리하고 있다.
경의를 표함헬싱키 시내에 위치한 시벨리우스 공원.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 공원에는 시벨리우스를 기리기 위한 조각품과 그의 두상 등이 자리하고 있다. ⓒ 권기봉
어딜 가나 핀란디아홀이니 시벨리우스 공원이니 하는 것을 보면 시벨리우스를 향한 핀란드인들의 사랑이 결코 적지는 않은가 보다. 물론 시벨리우스 공원이라고 해보았자 시벨리우스의 두상과 조각품 몇 개가 '전부'이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도시 전체가 음악가 한 사람에게 이처럼 의미를 부여하며 각종 건축물이나 시설 등에 그와 그의 작품 이름을 붙인다는 것이 그리 간단치 만은 않을 것이다.

시벨리우스와 핀란디아, 그리고 고향 헬싱키. 비록 며칠의 짧은 일정이긴 하지만 그토록 꿈꿔오던 곳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 지는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이상향으로서의 '자격'이 사라지긴 했지만, 헬싱키 방문은 오랫동안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을 듯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PC사랑' 7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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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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