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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하혜자씨는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오웅진 신부 금광 탈취'를 고발하는 1인시위를 했다. ⓒ 임경환
지난 5월22일 오후 5시 경 명동성당 앞에서 60대 후반의 한 아주머니가 1인 시위를 벌였다. 그는 '꽃동네 오웅진 신부의 금광 탈취 기도 의혹사건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전단을 행인들에게 나눠줬다.

전단을 받아든 한 수녀는 그에게 "오웅진 신부님은 이럴 사람이 아니"라고 화를 내며 명동성당으로 이내 발길을 옮겼다.

이날 1인시위를 벌인 사람은 하혜자(68세)씨. 하씨는 충북 음성군에 위치한 (주)태화광업 태극광산 회장 김태순(70)씨의 부인이다. 현재 태극광산은 인근 주민들과 사회복지시설 '꽃동네'(대표 신순근 신부)의 반대로 16개월째 채광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씨는 "꽃동네 오웅진 신부가 금광을 탈취하기 위해서 작업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시위에 나섰다"고 말했다.

하씨의 1인시위가 열렸다는 소식을 들은 꽃동네 측은 "태화광업 측에서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태화광업 측이 오웅진 신부를 공격함으로써 광산개발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만들어낸 술책에 불과하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과연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지를 알아보기 위해 문제의 태극광산 개발현장과 꽃동네, 인근 주민, 광산업자 등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보기 위해 현지취재에 나섰다.

▲ 맹동면 주민들은 금광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갱구 입구에 컨테이너를 설치해 감시하고 있다. ⓒ 임경환

'꽃동네'에서 서북쪽으로 1.7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태극광산 정문에는 지난해 5월 16일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결정문이 붙어있었다. 갱입구는 철문으로 막혀 있었고, 음성군 맹동면 주민 2~3명이 교대로 임시컨테이너 건물에 머물면서 갱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컨테이너에는 '우리들도 사람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 지난해 5월 꽃동네 측과 주민은 법원으로부터 공사방해금지가처분을 받았다. ⓒ 임경환
"오 신부님이 광산 개발한다고 하면 주민들이 그냥 바라보고 있을 것 같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수박꽃 수정을 막 마치고 태극광산 갱입구에 도착한 태화광업(주) 광산개발저지투쟁위원회 안효붕(45) 총무가 기자를 보자마자 대뜸 던진 말이다.

주민들이 금광개발을 온몸으로 저지하고 나선 까닭은 지하수 고갈과 오염으로 인해 수박농사를 더이상 지을 수 없다는 불안함 때문이다.

안 총무는 "맹동면 주민 대다수는 수박농사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지하수가 고갈되거나 오염될 경우 수박농사는 끝이에요. 이건 생존권 문제에요"라고 주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전했다.

갱구를 지키고 있던 정아무개(70)씨는 "맹동면 일대는 20~30m만 파고 들어가도 지하수가 콸콸 쏟아질 정도로 지하수가 풍부해 지하수로 수박농사를 지어 왔는데 금광을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물이 안 나오는 곳이 벌써 생기기 시작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주민들은 이같은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태화광업소 측에 공사시행 전에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동안 공사를 진행하지 못해 손해를 입은 회사측에 보상해 줄 용의도 있다는 '당근'도 제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같은 주민들의 제안에 대해 광업소 측의 반응은 신통찮다. 광업소 측은 "공사시행 전에 환경영향평가를 받을 법적의무도 없고, 공사가 진행된 후에 광산지도소에서 수시로 점검을 나와 오염원이 발견될 경우에는 공사를 중단시킬 수 있는 광산보안법이 있기 때문에 주민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 광산개발저지투쟁위원회 위원장 박근현씨. ⓒ 임경환
또 광업소 측은 광산개발이 시작되면 지하수가 고갈되고 오염된다는 주민들의 주장은 근거없는 억측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태화광업 이재경 업무과장은 "이번에 사용되는 터널굴착 공법은 철제 레일이 없어 물 부식이 없는 친환경적 공법일 뿐더러 갱내수 100%를 농업용수로 공급하고, 개발후 만들어지는 공간은 농민들이 무상으로 농산물 저장창고로 사용할 수 있는 첨단 친환경적 공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금광개발은 탄광개발과 달리 지하 200~300m에서 채굴이 이뤄지기 때문에 주민들이 우려하는 지반침하는 일어날 가능성이 없고 탄광개발과 달리 원석만 채취하기 때문에 분진이 발생할 가능성이나 중금속에 의한 수질오염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태화광업소 측은 16개월 동안 계속되고 있는 주민들의 갱구 불법점거는 환경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꽃동네 오웅진 신부의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태화광업소 측은 그 근거로 주민들이 갱입구를 점거하기 두 달 전인 지난 2000년 10월 오웅진 신부가 태화광업 사무실을 방문해서 했던 발언을 들고 있다.

당시 현장 소장이었던 김병한씨는 "오웅진 신부가 '기존 투자비용을 지급할테니 철수하라'고 압력을 넣었고 이에 반발하자 오 신부가 '음성에서는 내 허락 없이는 일 못하고, 태화광업 사무실 자리는 꽃동네 정신병원 설립지로 맘에 든다. 장애인을 동원하겠다'고 압력을 행사하고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당시에는 지하수 문제는 일절 거론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 태화광업 회장 김태순씨. ⓒ 임경환
(주) 태화광업 김태순 회장은 "'광업권 합법'이라는 판결 보도가 나간 직후인 지난해 5월 22일 꽃동네 대표 변호사인 임광규 변호사는 기존 투자비용을 줄 테니 광업권을 꽃동네에 양도하고 물러갈 것을 공문으로 정식 제의해 온 적이 있다"며 "이는 꽃동네의 후원금으로 광업권을 매입해 금광을 꽃동네 소유로 만들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 아니겠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태화광업 측에서 제기하는 의혹들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음성군 인곡리에 있는 꽃동네를 방문했다. 꽃동네는 갱입구에서 직선거리로 1.7km 떨어져 있었고 21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광산과 마주보고 있었다. 꽃동네 곳곳에는 "몰아내자 태극광산, 지키자 우리고향"과 같은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한편 '꽃동네'는 태화광업 측의 주장에 대해 "사실과 다르며 금광개발을 계속하기 위해 꾸며낸 술책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꽃동네가 태극광산 개발에 반대하는 이유는 꽃동네에 거주하고 있는 4000여명의 식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는 것이 꽃동네 측의 설명이다.

꽃동네 사무실에서 만난 신상현 수사는 22일 명동성당 앞에 뿌려진 전단을 유심히 보고는 "아무리 금광개발이 목적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한 개인을 인격적으로 무시할 수 있냐"면서 "주민과 꽃동네를 이간질시켜 금광개발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고 흥분했다.

신 수사는 "2000년 10월에 오 신부님이 태화광업소에 갔다 와서 '지금 공사를 즉시 중단해라. 지금 중단해 주면 사업투자비를 보상해 주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 적은 있다"면서도 "오 신부님이 '음성에서는 내 허락 없이는 일 못하고, 태화광업 사무실 자리는 꽃동네 정신병원 설립지로 맘에 든다, 장애인을 동원하겠다'고 말할 사람이 아니란 것은 15년 동안 옆에서 지켜본 내가 가장 잘 안다"며 김씨의 증언을 부인했다.

▲꽃동네에는 곳곳에 태극광산을 몰아내자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들이 나붙어 있었다. ⓒ 임경환

그는 이어 광업권을 꽃동네에 양도할 것을 요구한 공문에 대해 "현재 광업법은 일제가 우리 국토와 자원을 침탈하기 쉽도록 지하 50m를 넘는 지하에서는 광업권을 설정받은 자가 아무런 제한없이 굴착하여 채광할 수 있도록 한 악법중의 악법이다"면서 "이런 광업법이 존재한다면 태극광산이 물러간다고 하더라도 이번 문제는 또 발생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럴 바에야 차라리 광업권을 꽃동네가 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서 보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금광개발을 둘러싼 양측의 대립은 기자가 취재를 마치고 서울에 도착한 후에도 계속 됐다.

지난 25일 오전 10시 경 태화광업은 갱구에 설치해 놓은 컨테이너를 철거했고 이에 반발한 주민들과 꽃동네 측은 오후 3시 30분 경 컨테이너를 재반입하려고 시도했다.이 과정에서 양측은 1시간여 동안 몸싸움을 벌였고, 결국 오후 8시 경에 컨테이너는 재반입됐다.

적법한 개인사업에 이기주의를 앞세운 주민들의 텃세인가, 아니면 주민들의 생업줄을 끊고서라도 노다지만 캐겠다는 광업자의 부도덕한 처사인가. 금광개발을 놓고 16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광산회사 측과 지역주민, 꽃동네 간의 지리한 싸움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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