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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를 읽으면서 로자 룩셈부르크와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중도 좌파의 좌장인 베른슈타인의 사회 개혁 이론에 진정한 좌파의 적자로 부각될만큼 강인한 혁명의 논리로 유럽의 사회주의 사상계를 침묵시켰던 여인. 그래서 그랬는지 그녀의 사상에 대한 지성적 관심은 그녀의 존재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그 때 그녀의 평전이 번역되어 나와주었다.

막스 갈로의 세심한 글쓰기와 그녀의 붉은 삶이 어우러진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을 보자마자 난 좌판대에 서서 거침 없이 페이지를 넘겨갔다. 저자는 "여자, 절름발이, 유대인"이라는 세 가지 악재를 극복한 한 여인의 관점에서 그녀의 인간됨과 혁명가 됨의 범주를 넘나들며 로자의 삶을 기술했다. 어린 시절의 성장부터 폴란드에서의 활동, 스위스에서의 외로움, 독일에서의 새로운 삶과 혁명가로서의 위치 에너지는 그녀가 이러한 자신의 신분적 한계를 뛰어넘는 진정한 사상가로서의 삶을 살았음을 넉넉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그녀가 소녀시절 유대인으로서 러시아 학교에 다니면서 그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늘 책을 읽고 공부했다는 대목과 그 당시 '사회주의'라는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의 일생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곧 그 길로 들어선 후 한 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은 채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사회주의 혁명을 부르짖었던 모습에 있다.

누가 여자를 약하다 하는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 세상을 살았던 그 어떤 사람보다도 자신의 신념의 가치를 지켜낸 진정한 지성인이었다. 이제는 이미 낡은 이데올로기 취급을 받는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이토록 철저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의아하기까지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금 그 어떤 자본주의자가 그녀만큼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지켜갈 수 있을까? 마르크스와 그의 이념은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에 묻혀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이 냉담한 사회에서도 로자의 신념은 사회주의의 정신을 더욱 더 아름답게 승화시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당시 레닌이나 베른슈타인과 같은 좌파 내 중심 인물들에게서 나타난 이념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 사회주의의 근본 이념인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녀가 한낮 이데올로기적 연극이 아닌 진정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막스 갈로는 그녀의 인간적인 삶도 애써 그리기 위해 가족들간의 관계, 혹은 그의 연인이었던 레오와의 사랑과 갈등도 이 책에서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그래서 사상가로서의 그녀와 한 여인으로서의 그녀가 책 전편에서 오버랩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까지 그녀의 삶을 가볍게 보지 못하고 시종일관 진지하게 대했던 것은 아마도 그녀의 삶에 선연히 뿌려져 있는 붉은 핏자국에 대한 경배 때문이었을까? 이 땅에서 독립만세가 외쳐지기 불과 얼마전 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란트베르카날의 강물 위에서 떠오른 그녀의 시체는 그녀의 삶 전체를 대변하는 퍼포먼스였다. 그렇다면 그 퍼포먼스의 마지막 장면까지 읽는 나는 하나의 관객이었을까? 그 점을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그래서 책을 덮으면서 박수 대신에 감사의 묵념을 드려본다.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막스 갈로 지음, 임헌 옮김, 푸른숲(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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