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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기억해 보면 어디서, 어떻게 마라톤 소식을 알았는지 모르겠다. 보자마자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자리에 일어나서 회사 사람들에게 마라톤대회에 같이 참가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 물음은 소리 없는 메아리처럼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서 네모난 모니터 화면에 네모난 자판을 두들기면서 사는 사람들에게 내가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다시 전체 메일을 보냈다. 물론 반응은 없었지만 프로그램 팀장이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6명의 완주는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처음에 말을 꺼낸 나조차도 달리기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운동회때 달리기를 하면 순위는 뒤에서부터 세는 게 빨랐다. 하루는 어머니가 운동회에 오셔서 막 출발선에 서는 나에게 요쿠르트를 건네주셨는데 이상하게도 그 요쿠르트를 먹고 힘이 생겼는지, 내 초등학교 생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3등으로 결승점을 통과했고 자랑스럽게 나는 3등 상품인 8칸짜리 공책 한 권을 탔다.

나에게 있어서는 아주 소중한 기억인데 한동안 내 머리 속에 묻혀 있다가 이번에 대회에 참가하면서 내가 그토록 못하는 달리기를 하기로 결심한 후로 다시 머리 속에 떠올랐다.

대회 접수 마감 일자가 가까워오자 회사 사람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해서 젊음도 팔아보고 의지, 성취감 등등을 나열하면서 회유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한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몰라도 마음은 더욱 더 잘 안 움직이는 것 같았다.

결국에는 대회 접수 마감일 날 거의 반 강제적으로 나를 포함한 회사 사람 6명을 등록시켰다.

이제 사회생활 100일을 넘기고 어느 정도 회사 생활에 적응도 했다.

봄이 오면서 회사 사람들도 많이 나른해 하고 있었기에 우리에게는 새로운 전기가 필요했다.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등록을 하긴 했지만 모두들 내심 필승을 다짐하고 있었다.

대학교 다닐 때 마라톤을 좀 했다는 프로그램팀장을 주축으로 야식을 먹을 때마다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의지만 항상 다졌을 뿐 함께 운동장 한 바퀴를 돌면서 연습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의지 하나는 이미 완주를 한 사람들 같았다.

가끔 야식 자리에서 작전 회의가 벌어지기도 했다. 왕년에 조금 뛰었던 프로그램 팀장은 순위권 안에 들어서 회사에 이름을 널리 알려야 하는 막중한 사명도 어깨에 짊어지기도 했으며, 그냥 다 같이 여섯명이 한꺼번에 결승점에 어깨동무를 하고 멋있게 들어가자는 의견도 있었다. 역시나 연습은 없이 작전만 무수했다.

연습은 한번도 없이 자리에서 엉덩이를 뗄 줄 모르던 사람들이 드디어 대회에 참가하는 날.

평소 일요일이면 점심 시간이 가까울 때까지 잠을 자는데 대회 때문에 새벽 같이 일어나서는 대회장으로 향했다.

여섯 명이서 옷을 갈아입고 모여서 준비 운동을 하면서 또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우승을 한 다음에 방송용 멘트도 연습해 보고 멋있는 골인 장면도 연출을 하자는 회의였다.

5km 선수들이 출발을 하고 하프 선수들이 출발을 하고, 드디어 우리 여섯 명이 참가한 10km 선수들에 출발 총성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출발~!

처음 어느 정도는 서로 말도 주고 받으면서 잘 가는가 싶더니 제일 젊은 우리 프로그램 팀원이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 여섯 명의 대열은 흐트러지고 각자 나뉘어서 뛰기 시작했다.

대회에 참가하기 전에 나는 나름에 목표가 있었다. 한 가지는 완주가 목표였고, 또 한가지는 "내 두 발을 한꺼번에 땅에 두지 않겠다, 절대 걷지 않겠다"였다.

한참을 뛰다 보니 자연히 경쟁자도 생겼다. 파란색 셔츠를 입은 참가자는 나와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경쟁자였다. 나는 걷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꾸준히 달렸고, 그 참가자는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했다. 내 앞을 휙하고 지나갔다가 내가 어느 정도 뛰다 보면 내 앞에서 걷고 있었다. 걷고 있는 그 경쟁자를 뒤로 하고 한참 달리다 보면 그 파란색 셔츠에 참가자는 또 내 앞을 앞질러갔다. 그렇게 몇 번을 앞지르고 쫓아가고 한 것 같았다.

경쟁자들은 그 분만이 아니었다. 헉헉 거리면서 뛰고 있는 나를 앞질러서 휙하고 지나가는 여자분들, 그래도 남자라고 여자한테 지면 안되지 하는 생각을 하고 힘을 쓸려고 해봤지만 내 다리는 내 맘 같지 움직여주지 않았고 여자분들은 나를 훨씬 앞질러 가면서 박수까지 치면서 지나갔다.

내 옆에서 뛰던 여자 참가자 분은 갑자기 나한테 시간을 물어왔었고, 헉헉거리면서 시간을 대답해 줬더니 갑자기 속력을 내면서 내 앞을 성큼 성큼 앞질러 가버렸다.

눈에 보이는 경쟁자들에게는 뒤처졌지만 그래도 걷지 않겠다는 약속은 끝까지 지켜가면서 이제 골인 지점이 눈 앞에 보이기 시작했는데 앞에 우리 프로그램 팀장이 보였다.

약간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달리고 있었는데 발목을 다친 것 같다고 했다.

골인 지점을 바로 앞둔 직선 주로에서 힘은 들어도 쇼맨쉽은 살아있어서 두 팔을 번쩍 든 채로 우리는 서로 어깨 동무를 하고 나란히 골인 지점을 자랑스럽게 통과했다.

어깨동무를 하고 골인하는 우리 둘을 보고 사회사자 "서로 사귀는 거 아니냐고 했다" 둘이 나란히 들어왔는데 기록 상에는 우리 둘 가운데 한 명이 더 있었다. 2초 차이로 회사에서는 프로그램 팀장이 1등 내가 2등이었다.

우리가 골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 서버 팀원이 들어왔고, 대회 신청 사실도 잘 모르고 있다가 참가한 우리의 사장님. 야식 회의때 오래 달리기 하는 걸 제일 싫어한다면서 이야기를 하곤 해서 제일 걱정이 되었는데 그래도 우리 여섯 명 중에 4등으로 들어왔다.

처음 출발 후에 걸었던 제일 막내 프로그램팀원과 디자인팀장님은 내가 반환점을 돌고 한참을 가는데 그때서야 나란히 반환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이 도착했을 때 갑자기 주위에서 박수와 환호가 있었는데 자랑스러운 그 두 사람을 반기는 게 아니라 하프 코스 1위가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 여섯 명이 다 골인을 해서 우리는 여섯 명 모두 완주의 기록을 달성했다.

경기가 끝나고 자리를 깔아놓고 프로그램팀 여직원이 아침까지 고생하면서 싼 김밥과 초밥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마라톤이 끝난 지금 운동이라곤 모르던 사람들이 하루동안 무리를 했으니 그 여파는 여실히 드러났다.

자리에서 앉고 일어나기가 불편하고 계단을 어기적 어기적 기어 오르고 종아리와 허벅지에 주먹만한 알이 배겨서 움직일 때마다 욱신욱신 한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자랑스럽게 내 배번호표를 회사에 방문하는 사람들에 눈에 띄는 자리에 걸어 두었고 내 배번호표를 볼 때마다 끝까지 약속을 지킨 나에게 내 마음 속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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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만들기 수업을 거친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입니다. IT/인터넷 업계에서 기획자로 일했고, 코워킹 스페이스를 창업하고,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활동하다가 현재는 삶을 위한 자유학교 운영자이기도 합니다. 쉼과 전환을 위한 안전한 실험실 - 자유학교 https://www.jayuskol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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