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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寸鐵殺人)

그야말로 단 하나의 장면으로, 혹은 4개의 그림으로 본질을 꿰뚫고 보는 이에게 통렬함을 줄 수 있다면….

신문의 1면 머릿기사보다도, 스포츠면의 화려한 컬러기사보다도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기사는 단연 만평이나 네 컷짜리 시사만화이다. 기사를 읽고도 뭔가 답답함을 느끼는 독자들은 만평이나 4단 만화를 읽으시라. 오랜 체증이 한꺼번에 뚫리는 시원한 느낌이 올 것이다. 때로는 저절로 터져나오는 웃음에, 때로는 빙그레 짓게 되는 미소에 그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지역 신문들의 만평은 멀쩡하던 속도 체하게 만들고, 없던 스트레스도 만들어 내는 역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고질적 병폐인 지역감정 조장은 단골 메뉴이고 허구적 대립구도 형성에, 흑색선전 유포, 허위사실 적시, 나아가 형편없는 현실인식까지 보여주고 있다.

대전충남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언론모니터위원회가 지난 3월 21일부터 27일까지의 실시한 주간모니터 결과에 따르면 만평이나 4단만화를 통한 지역감정 유발행위가 심각한 수준이었으며 심지어 수준 이하의 내용이 실리는 경우도 여러 번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민주당의 대선경선이 시작되면서 일부 후보가 제기한 음모론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어떤 음모론이든 외양과 내용이 다 그럴 듯하다는 특징이 있지만 사실 이번 음모론의 내용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그 음모론이 지금처럼 확산된 데에는 언론의 만평이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지역신문의 만평은 음모론을 크게 유포시킨 주범인데 대전일보의 경우가 유별나다.

3월 23일자 대전일보 대일만평은 노무현 후보의 정계개편을 '혹'으로 표현하고 이인제 후보의 음모론을 '뿔'로 표현해 양측의 대립관계를 부각시키고 있고 25일자 대일만평 역시 노무현 후보의 정계개편론에 대해 이인제 후보가 음모론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5일자 4단만화 꼬툴씨에서는 아예 은행강도들이 순찰하던 경찰에 "음모중"이라고 하자 경찰이 "정계개편 음모중이시군요"하며 경례를 하고 돌아가는 장면을 그려 정계개편을 아예 음모라고 단정하고 있다.

▲ 대전일보 22일자 3면에 실린 대일만평. "충청표 다 먹으라고?
중도일보는 27일 15면 4단만화 뜸부기에서 노무현 후보의 패가 나쁘면 다른 후보들이 광을 팔게 해주고, 패가 좋으면 알아서 죽어준다는 표현을 함으로써 마치 최근 경선후보들의 포기선언에 모종의 음모가 있는 듯 그림을 그렸다.

만평에서는 허구적인 대립구도를 형성해 유권자들에게 정치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데도 일등공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대전매일은 3월 23일자 2면 투데이만평에서 이 후보와 노 후보가 치고 받고 싸우는 장면을 그리고 'X싸움 됐다'고 표현해 언론이 어거지로 양측의 대립관계를 부각시킨 뒤 이를 개싸움으로 비하시켜 화백의 자질을 의심스럽게 했다.

고질적인 지역감정 자극 만화는 여전히 선거국면에 있어 핵심이다.

대전일보 22일자 3면에 실린 대일만평은 노무현 후보가 이인제 후보에게 "충청표 다 먹어라. 나는 영남표 다 먹을테니"라는 내용의 만화를 그려 그렇지 않아도 민주당 경선이 지역선거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음에도 앞장서서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만화를 그렸다.

중도일보는 22일자 15면에서도 4단컷 만화를 통해 지역감정을 노골적으로 조장하고 있다. 이날 만화는 서쪽 하늘에서 사상 최악의 황사가 오고 있음을 표현하고 남쪽 하늘에서는 사상 최악의 돌풍까지 오고 있다면서 부산에서 불고 있는 회오리바람(盧風)을 그리고 있다. 이 만화는 노무현 후보의 인기 상승을 '최악의 돌풍'이라고 표현해 노 후보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고 부산에서 바람이 불고 있다고 그려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했다.

더 나아가 부산에서 노무현 후보의 돌풍이 불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마저 없음에도 이러한 그림을 그린 것은 언론으로써 사실관계마저 왜곡한 것이다.

▲ 중도일보는 22일자 15면에서도 4단컷 만화를 통해 지역감정을 노골적으로 조장하고 있다.
화백의 저급한 현실인식은 보다 심각한 문제이다. 대전일보 3월 23일자 4단만화 꼬툴씨의 경우가 한 예이다. 예전에는 선거철이 되면 선심용 관광버스가 누비고 다녔는데, 요즘엔 세상이 바뀌어 선심용 금강산 관광 여객선이 누비고 다닌다는 그림이다.

남북간 화해의 물꼬를 트기 위해 지속적인 금강산 사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대의를 외면하고 이를 선거와 연결시킨 꼬툴씨의 만화는 대북사업을 정치와 연결시켜 비판하는 야당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조하는 만화로서 수준 이하라는 지적이 높았다.

현실인식이 저급할 뿐만 아니라 만화자체가 내용 없이 저급한 수준인 것도 부지기수이다. 대전매일의 4단만화나 만평의 경우, 일방적으로 지방자치단체를 칭송하는 내용들이 많아 촌철살인, 역설, 풍자 등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며 어이없어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내용이 많았다.

이에 대해 대전충남민언련 한 모니터위원은 "만평은 단순한 만화가 아니며 하나의 기사이다. 사실을 근거로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시의성 있는 사안을 만화적인 기법으로 풍자해야만 만평으로서 가치가 있다"며 "지방신문의 만평은 본질을 오도하고 왜곡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나마 명쾌하게 풍자하지 못하는 수준 이하의 만평도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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