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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렸습니다. 저녁 무렵부터 조금씩 돋기 시작하더니 자정 무렵에는 제법 많은 비가 쏟아졌습니다. 저는 그 비를 경찰서를 나오면서 맞았습니다. 택시를 잡기 위해 기다린 20여 분 동안 맞고 있는 비처럼 울었습니다. 서럽게 울었습니다.

제가 경찰서를 간 것은 저의 친구들이 저의 선배들이,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저와 같은 장애인들이 연행되어왔기 때문입니다. 장애인도 버스를 탈 수 있게 해달라고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타며 힘겹게, 힘겹게 호소한 것이 죄가 되어 경찰서로 들려왔습니다.

그렇게 열두 번째로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싶다'는 버스타기 행사는, 지하철을 제대로 이용하고자 했던 장애인들의 바람은, 시민의 발인 지하철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불편을 초래했기 때문에 전원 연행이란 것으로 그 끝을 장식해야 했습니다.

저는 그 화려한 피날레가 너무나도 서러워 울었습니다. 만물이 소생하고 예쁜 개나리의 만발을 이야기하는 말 그대로 촉촉하기 그지없는 봄비가 내리는 그 시간에 제 친구들, 장애인들은 많은 비장애인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했다고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럼 장애인들은 시민이 아니란 말입니까? 장애인들은 자신에게 맞는 이동 수단을 가질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그런 권리를 표현할 수조차 없단 말인가요?

제가 이렇게 따지고 들면 수많은 착한 일반시민들은 그렇게들 말하시겠지요. 정당하고 합리적인 법과 행정절차를 밟아 요구하면 안들어줄리 없다고!

그러나, 제 친구들, 대학생들 장애인들, 분명 지난 반세기 동안 국가가 요구하는 대로 일반 다수 시민의 바람처럼 그렇게 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순진하고 착한 요구에 대한 대답은 많은 장애인들의 사고로 인한 죽음과 크고 작은 부상뿐이었습니다. 국가와 다수의 선량한 시민이 장애인들의 '불쌍한'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저와 같은 장애인들이 피를 흘려야 하며 다쳐야 하며 갇혀 있어야 합니까?

돈이 없다구요? 그러면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지는 공적 자금과 천문학적인 차세대 공군 사업 의혹, 수십억, 억억하는 뇌물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오랜 가뭄끝에 내리는 이런 봄비마저도 경찰서에 와서야 맞아볼 수 있는 이 현실을 나는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연행된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한 휠체어를 탄 장애 여성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1급 뇌성마비로 올래 서른 살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남자친구도 연행되어 갔다면서 무척이나 초조해했습니다. 이유인즉슨 남자친구가 제대를 3개월 앞둔 상근 예비역인데 오늘 자신을 보호하러 왔다가 오자마자 경찰서로 잡혀왔다는 것입니다. 경찰서로 잡혀 왔다가 방금 소속 군대인 구파발 제 56사단으로 이송되었다면서 군법에 회부되지 않을까, 영창이나 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내일(22일)이 그 장애 여성분 생일이었습니다. 남자친구와 싸우고 화해해서 만나러오는 길이었답니다. '여자친구가 나중에 임신한 몸으로라도 혼자서 충분히 이동할 수 있어야 자신이 편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여자친구의 이동권 투쟁을 지지한다'는 그 상근 예비역.

정말 별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행여 남자친구가 영창이라도 갈라치면 도와줄 사람이 없어 그녀는 당장 외출 금지 가택구금 상태에 놓이니까요.

누가 이들의 이 마음 저린 사랑을 방해하고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사랑하는 연인들이 봄비를 나눠맞으며 사랑을 속삭여도 아까울 이 시간에 경찰서에서 마음을 아파하고 이별을 당해야 합니까?

아무도 저에게 대답해주지 않습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장애인 문제가, 장애인 이동권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되뇌이지만 누구 하나 해결해주지 않듯이, 그렇게 봄비는 야속하게만 내리고 눈물은 속절없이 흐릅니다. 다른 사람보다 느리게 지하철을 타는 것이 업무 방해가 되는 한국 사회, 테러 방지법으로 테러범으로 몰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일까요?

우리 장애인들에게 진정 희망의 노란 개나리는 언제쯤이나 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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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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