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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박원순 변호사가 참여연대 내에서 보직 발령을 새로 받았다. 상임집행위원장. 그러나 단순한 승진 발령 이상이다. 사무를 다른 곳에서 보기 때문이다. '속살거리는 봄비'를 맞으며 그의 새로운 거처인 가회동을 찾았다. 앞으로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 <아름다운 재단(www.beautifulfund.org)>과 <대안사회>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모던하게 개조된 건물의 분위기가 참신하다.

박 변호사의 변화를 이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 분위기로 읽어도 될 듯 싶었다. 온돌방에 낮은 탁자가 놓여 있다. 통짜 유리로 하늘도 훤하게 보인다. 푸근한 서재 분위기다.
"사무실이 이렇게 좋을 줄 저도 몰랐어요. 탁자를 이렇게 놓은 것은 제가 원래 앉아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장거리 버스여행할 때도 다리를 의자 위에 올려놓고 가요. 비행기 탈 때도 이렇게 하고요."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까닭인지 그전보다 덜 바쁘게 보인다.

"이곳으로 출근한 지 아직 며칠 되지 않았습니다. 한 이틀 조용한가 싶었는데 벌써 전화나 약속이 끊이지 않는군요.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그만두면 제가 시간이 많은 줄 아시는가 봐요. 그렇지가 못한데. 좀 전에도 한 단체에서 공동대표를 맡아달라고 오셨는데 참…."

그의 분위기와 열정을 함께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는 징표다. 사회각계각층. 그렇지만 그는 자신에게는 오직 한길만 있다고 주장한다.

"제가 할 일이 시민운동 말고 달리 무엇이 있겠어요?"

다시 변호사 개업? 아니란다. 이맘때쯤 정치권으로 걸음을 내딛지 않을까 의심을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정치권 행보 운운'에서 강력한 부정은 강한 긍정과 같다는 것을 다른 이들이 행동으로 많이 보여주었다. 그는 간단하게 말한다.

"아닙니다."

그럼 학계? 그는 이미 여러 대학에서 자신의 현장경험을 강의하고 있는 중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는 이미 우리 사회 시민운동에 밑거름이 되기로 오래 전에 작정했고 지금까지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해왔다. 그에게서 다른 모습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그는 먼저 <재단>과 <대안사회>이야기로 시작한다.

"<재단>활동은 이미 1% 나누기 운동으로 시작한 지 벌써 두 해 되어 갑니다. 정말 할 일이 많아요. <재단>은 제가 미국에서 공익 재단활동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것입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2년 동안 벌써 전체 모금액이 25억 원이 되었고 회원 분들도 1500여 명입니다. 올해 안으로 1만 명 정도 만들자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1퍼센트 나눔운동 회원 중에는 울산에서 좌판으로 장사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일은 정말이지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가능한 일입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자선단체 기부는 그런 대로 활발한데 공익재단에 대한 기부는 자리가 잡히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대안사회>는 본격적인 활동을 위한 준비 중에 있다. 이것은 생활 속의 실천을 지향하는 운동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지역주민들의 교류의 장' 같은 것, 영국의 옥스팜이 하는 것 같은 일을 하려 합니다. 참여연대 운동과는 좀 다르지요. 참여연대 운동은 집중적인 중앙집권 사회를 견제하는 주창활동(advocacy)이고 이 운동은 지역생활 운동입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정치적인 이슈보다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더욱 인간적인 향취를 배게 하는 운동을 전개하자는 말 같다. 그의 운동노선의 강도가 부드러워진 것인가?

"참여연대 운동도 상대방을 적대적으로 몰겠다고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 사회의 공동선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거든요. 저는 우리 운동이 과격하거나 분노를 과잉 표출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늘 말해 왔습니다. 낙천낙선 운동할 때도 그 사람들이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그 동안 '참여연대와 박원순'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해왔다. 상임집행위원장이라는 직함으로 여전히 관계를 맺고 있다고 재삼 강조하지만 이제 그의 활동무게는 확실히 이쪽으로 옮겨진 것 같다. 앞으로 참여연대 활동에 끼치는 영향이 없을까요?

"저는 제가 대표인물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동안 저는 참여연대가 특정 인물 중심의 단체가 되지 않도록 노력을 해왔다고 자부합니다. 간사들 모두 자기 사업을 책임지고 해온 중심인물들 아닙니까? 지금 처장급 간사도 있습니다. 하하하…."

그는 누구나 다 아는 안 모 간사의 예를 들며 유쾌하게 웃었다.

"적은 월급도 마다 않고 열심히 일하는 간사들, 대가없이 일하시는 임원들, 열성적인 회원들, 모두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참여연대는 이 모든 분들의 노력으로 함께 모여 만든 공동체이며 그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마음놓고 '떠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그에게 안국동에 그대로 머물러 달라고 했지만 그는 나왔다. 서운해하는 이들이 많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변화를 하려면 확실하게 해야지요.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 사자후를 토하면서 일을 해야 하는 거지요. 상근을 하면 변화에 의미가 없지요. 제 나름의 원칙이나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사무처장직에서 물러난 것인데 거기 그대로 남아 있으면 그다지 다를 게 없지요. 새로운 생각,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하는데 제한이 될지도 모르고요. 사실 짐을 싸고 나온다는 것은 서운하게 느껴질 만한 일이지만 헤어질 때는 냉정해야지요. 그렇지요?"

'냉정하다'는 말이 과연 어울리는 사람인지 그를 다시 살펴보았다. 하늘은 연회색 빛, 때는 오후, 그의 마음의 현을 심하게 퉁겨보기로 했다.

8여 년간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일했다. '떠나는' 심정이 어찌 아리지 않으랴. 그에게 참여연대는 단 한시도 잊을 수 없는 '그대' 아니었던가. 아마 첫사랑이라도 그리 오랜 시간, 한결같은 열정으로 섬기진 못했을 것이다.

'맞습니다. 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어요. 앉으나 서나,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무언가를 끄적거리곤 했거든요. 그 동안 그만두겠다, 그만두겠다 하면서도 사실 그만둘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석 달 전쯤 진짜 그만둬야겠다고 생각을 굳혔는데, 갑자기 심리적 공황이 오더군요. 제가 참여연대와 수만 개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모세혈관까지 그는 참여연대화 되어 있었을 것이다.

"며칠 동안 헤맸습니다. 생의 의욕을 잃은 듯했을 정도입니다. 일상적인 상근직에서 물러난다는 게 그렇게 고통스러웠지요."

내 마음이 아파지는 듯했다. 그렇게 힘들면서 왜 그만두셨나요?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 당위니까요. 참여연대는 젊어야 합니다. 건강한 샘물 역할을 해야 하니까요. 제가 처음 시작할 때 마흔이었나요? 나이와 경력에 따라 생각이 바뀌잖아요. 참여연대는 세상살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거지요. 용감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하는 사람들이 사회에 의로운 소리를 낼 수 있게 끊임없이 젊음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하는 시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그는 자신의 '떠남'을, '대과 없이'와 '시원섭섭하다'는 두 가지 의례적인 말로 표현하고 싶어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항상 도덕적인 긴장 속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는 입장이니 그러지 않을 수 없지요. 다행히 있는 동안 대과 없이, 조직에 누를 끼치는 일없이 제 일을 마치게 되어 정말 큰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자신이 그런 '강도 높은 긴장'을 즐기면서 일했다고 고백한다.

"이거 악취미인지 아니면 기인열전에 들어갈 만한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전 사실 너무 즐겼어요. 얼마나 좋습니까, 세상에, 그런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거, 역할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 아닙니까? 그런 일을 떠난다는 것은 서운하지요. 시원섭섭하다고 하지만 섭섭한 것이 더 많지요.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만 이제 섭섭한 것도 즐길 만합니다."

그의 얼굴에 순한 미소가 퍼진다. 한 시민은 TV에 나온 박 변호사의 얼굴을 보고 '저런 인상의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분명히 좋은 일일 것'이라며 바로 참여연대 회원으로 가입했다고 한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독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맞을 거라고 한다.

"사람들이 질리도록 까지 일을 시키거든요. 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요. 문제는 그런 걸로 질리면 돼나 하는 생각을 한다는 데 있지만요."

일의 성취도 기준을 아주 높이 둔다. 본인조차도 그 기준에는 못 미친다고 여긴단다. 그러니 간사들한테 '못살게 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미안한 점도 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어느 조직이나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 있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사무처장으로 일하면서 1999 도전, 희망 2000, 비젼 2001, 전망2002, 등등 해마다 두툼한 계획서를 만들었다. <동경구상>, <바르샤바 구상> 등등 외국출장만 가면 새로운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산처럼 만들어 왔다.

"긴 비행시간은 참여연대만 생각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거든요."

간사들은 맹렬하게 일을 재촉하는 사무처장이 없어졌으니 한결 시원할까? 그들도 섭섭한 쪽이 더 큰 것 같다. '갑자기 외따로 떨어진 섬'이 된 듯하고 '여름햇빛을 가려줄 나무가 없어진' 자리에 남은 듯하단다.

"우리도 우리지만 처장님 심정이 오죽하겠느냐. 아마 팔 다리 하나가 떨어진 느낌이 들 것"이라고 자신의 서운함을 둘러 표현한 최모 간사도 있었다.

그간의 시민단체 활동에 대한 소감을 물어 보았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저는 늘 우리는 잘하고 있는가? 그런 자문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시민들에게 신뢰를 줘야 합니다. 일반시민들이 운동에 인색한 게 아니거든요. 참여연대가 그것을 증명하는 거 아닙니까. 회원의 회비로 단체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참여를 쉽게 만드는 방법을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지요. 최근 사회가 보수화 되는 경향에 재벌의 음해나 홍위병 발언 등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지요. 여러 가지 제한과 한계, 절망은 있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발전하고 있고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봅니다. 외국을 가봐도 시민사회가 이 정도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잘 없습니다. 집단적 헌신과 희생을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의 시민사회의 전망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 달라고 했다.

"도전과 희망이 교차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심각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의지, 열정 이런 것에서 그 방향이 좌우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근본적으로 낙관적입니다. 시민사회가 건강해지고 풍성해지고 성숙해야 우리 사회의 모든 희망이 살아나는 거 아닙니까. 정치도 경제도 건강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지배하는 그런 사회,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믿습니다."

그는 바로 오전에 있었던 참여연대 신입간사 교육에서 말한 내용을 덧붙였다.

"60명이 모여 있는 조직력 못지 않게 한사람의 상상력이 중요하다. 앞서 일한 선배들한테서 배워야겠지만 동시에 개혁의 힘도 갖춰야 한다. 참여연대를 혁신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시민운동 전반에 대한 말이 되기도 하겠지요."

이야기하는 동안 전화가 왔다. 어느 언론사의 전화였다.

"…예, 예, 그게 상당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게 저희가 후보들한테 구체적으로 약속을 받아 놓은 것인데… 그렇지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겁니다. 예…."

<선거자금 시민옴부즈만>의 의견을 묻는 내용이었다. 그의 역할은 별 변화가 없어 보였다.

최근 그는 요시카 피셔의 <나는 달린다>를 감동 깊게 읽었다. 친구들과 같이 달리기로 약속했다.

"한 친구는 아주 대단해요. 하루에 달리는 거리가 상당해요. 아무래도 마라톤에 중독이 된 듯해요. 사실 모든 일이 중독이 안 되면 안 되잖지 않습니까?"

4월 초 마라톤 대회에 나갈 예정으로 매일 아침 달린다. 박 변호사가 새벽을 가르며 동네를 달리는 장면을 떠올렸다.

"집에서 러닝머신으로 달려요. 밖에 나가면 창피할 것 같아서요."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동네 달리기는 자신이 없다는 말이다. 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 앞에서 그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 사람들 앞에 서기가 쑥스럽다니? 아마 그는 대의를 위해 자신의 원래 성격표현을 무기한 보류해두는가 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저희 재단(02-730-1235)과 대안사회(02-3676-5353) 활동을 기대해 보십시오. 아이디어가 많거든요."

벌써 그는 두툼한 기획안을 슬쩍 보여주었다. 그의 태도가 다시 활발하다.

"처음 시작은 언제나 힘들고 걱정 돼지요. 사실 막막한 점도 있습니다. 이제까지 여러분의 도움으로 일을 해왔으니 앞으로도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그는 봄 흙 같은 남자다. 언제나 일구고 가꿀 준비가 되어 있는 땅.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그 흙은 한없이 부드럽지만 씨앗을 품으면 이내 탄탄한 터전이 된다. 그를 만나고 나오니 밖에는 여전히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비 그치면' 그의 땅에 또 푸르른 빛이 짙어올 것이다.

▲박원순 변호사가 시민들이 <아름다운재단>에 기증한 물건을 살펴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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