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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이 2학년으로 올라가고 저는 3학년 여자 반 담임을 맡게 되어 2층 복도나 계단에서 작년 아이들과 자주 마주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저를 바라보는 눈빛하며 제게 건네는 말이 서로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수상쩍습니다.

"선생님, 너무 그리워요."
그런 아이들에게 저는 이런 식으로 말을 해버립니다.
"야, 그만 바람 피우고 네 담임 선생님한테 가."

제가 그렇게 매몰차게 말을 해버리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루라도 빨리 새 담임 선생님과 정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마음 저 편에는 아이들이 새 담임과 너무 빨리 친해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 그런 못된 마음도 없지는 않습니다. 만약 제가 지금 여자 반 담임을 맡고 있지 않다면 그런 마음이 더 했겠지요.

어제는 한 아이가 교무실에서 저를 보더니 이렇게 큰 소리로 말합니다.
"왜 선생님은 올해도 여학생 담임이에요? 저희들 졸업이라도 하면 맡지 않고."
그래서 저도 이렇게 응수를 했습니다.
"너희들 새 담임 선생님하고 지지고 볶는 거 보면 질투날 것 같아서 그랬다, 왜?"

그러자 미진이가 애교를 떨면서 이런 말로 저를 유혹합니다.
"선생님, 우리 찜질방 가요."
저는 여전히 고자세입니다.
"나, 너희들하고 바람 피우기 싫어."

여학생을 담임하다보면 아이들과 연애를 하고 있는 듯한 묘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작년에 반 아이들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그날은 참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 무렵 아이들에게 쓴 편지를 뒤져보니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아침 자율학습 시간에 너무 떠든다 싶어 방법을 찾다가 이런 편지를 쓴 것 같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희망이 없어진 탓인지 아이들의 눈망울에 초점이 사라진 것이 제 마음을 아프게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
아직은 밖이 어둑한 이른 새벽 아침이다. 이 고요한 시간에 어제가 비워진 새로운 하루의 시작 앞에서 나는 무엇보다도 너희들을 만날 수 있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는 이 아침이 참 좋단다. 월요일 아침은 그 기쁨이 두 배가 되곤 했었지. 가끔은 그 두 배의 기쁨이 두 배의 슬픔으로 바뀌어지기도 했지만…

어제가 바로 월요일이었구나. 두 배의 기쁨으로 너희들을 만나는 월요일 아침 자율학습 시간! 그 시간에 선생님이 가장 하고 싶지 않은 말이 무엇인지 아니?
"조용히 해라!" "떠들지 마라!"

선생님은 너희들이 잔잔하게 떠들면 조용히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돌아와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면서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란다. 너희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데…, 정말 해주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은데…, 사랑하고 싶은데…, 깊이 바라봐 주고 싶은데…

너희들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그 다음날, 선생님은 잠에서 깨어나 마치 처음 사랑에 눈뜨던 그 시절처럼 마음이 허전한 듯도 하고, 충만한 듯도 하고, 아픈 듯도 하고, 기쁜 듯도 하고 그랬단다. 그 사랑의 주인공들인 너희들을 만날 수 있는 월요일 아침이 얼마나 기다려졌는지 모른단다. 그런데 그 월요일이 선생님에겐 가장 힘든 날이 되고 말았지...

물론 사랑은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란다. 너희들을 사랑한다는 말은 곧 너희들로 인한 고통을 달게 받아들이겠다는 다른 표현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너희들로 인한 아픔을 선생님이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야. 두려운 것은 너희들에게 아무 것도 해줄 것이 없다는 것이지. 너희들의 그 눈부신 발랄함을 되돌려 놓을 수 없다면 내가 너희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랑 없는 교사가 되라'는 말은 어쩌면 교사에게 가장 큰 저주일지도 모릅니다. 교사의 사랑은 그 수혜자인 아이들보다도 교사 자신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잘 하는 편입니다. 제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저의 축복이지 자랑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물 흐르듯이 쉽고 자연스럽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여학생을 담임 맡다보면 마음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교사의 편애는 금물이지만 그래도 어느 한 순간이나마 긴급한 사랑의 수혈이 필요한 아이가 있기 마련인데, 그때마다 다른 아이들의 눈치를 보아야만 합니다.

저로서는 그것이 너무도 불편해서 그 곤경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다가 아이들을 '더 적극적으로 사랑해버리자'라고 마음먹은 적이 있습니다. 몇 아이에 대한 사랑의 오해를 면하기 위해서 모든 아이들을 소극적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를 하나 같이 뜨겁게 사랑하는 적극적인 방법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정공법인 셈이었는데 효과 만점이었습니다.

저는 학교 교실이나 복도, 심지어는 어느 구석진 곳에서라도 한 아이와 진한 눈빛을 주고받는다고 해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 장면을 목격하는 다른 아이들도 그런 똑같은 사랑을 받고 있기에 마치 소가 닭을 쳐다보듯이 그냥 보고 지나칩니다. 수업시간에는 아이들의 이름으로 출석을 부릅니다. 아이들은 저와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지어 보여야만 합니다. 눈을 맞추는 그 순간만큼은 그 아이가 저의 온 세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집니다. 딸을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를 둔 아이들은 제가 주는 사랑에 무척 행복해 하면서도 혼란스러움을 느끼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아주 가끔은 사랑의 질감을 혼동하여 저의 사랑을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잊고 있었던, 너무도 큰 상처여서 잠재의식 속에 묻어두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서 저를 멀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사로서 그때만큼 슬프고 절망적인 경우는 없습니다. 그때부터는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아이는 멀리 도망을 갑니다. 그래서 어느 만큼 거리를 유지하며 아이를 바라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게 됩니다. 누구보다도 사랑이 필요한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수 없을 때의 심정은 불행이나 절망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 어둠의 터널이 지나고 나면 더 푸른 해안이 눈에 보이기도 했지만.

지수(가명)와의 '사랑'도 그런 어둠의 터널을 지나온 사랑이었습니다. 지금은 2층 복도에서 만나면 하늘도 다 품을 듯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저에게 달려옵니다. 학기초의 해맑은 모습으로 되돌아온 그 아이의 뒷모습을 저는 한참을 바라보다 갑니다. 저를 많이도 아프게 했던 지수에게 저는 화를 버럭 내며 이런 말을 해버린 적이 있습니다.

"난 네 담임 선생님이잖아. 사랑을 주면 받을 줄 알아야지."
그런 일이 있을 뒤 얼마 후에 그 아이는 제가 없는 사이 이런 내용이 적인 쪽지를 교무실 책상에 남겼습니다.
"선생님, 전 애정 표현에 익숙하지 못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다행히도 그때는 아직 지수의 생일이 돌아오기 전이었습니다. 저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그 아이의 생일이 돌아오기 전까지 사랑싸움을 끝내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말입니다. 저는 지금도 지수를 볼 때마다 마음 속으로 이런 바람을 가져봅니다. 가족을 도외시하고 딸을 사랑하지 않았던 아버지로 인해 형성된 부정적인 남성관을 하루빨리 극복해주기를. 이제 곧 어른이 되면 내가 질투를 할 만큼이나 멋지고 건전한 남성을 만나 뜨거운 사랑에 퐁당 빠지기를.

너는, 종이학을 접는 앳된 아이지만

생각난다, 지난 봄 제주도 바닷가
멀미를 앓던 너를 안고
뱃전에서 바라보았던
그 넘실거리던 검푸른 파도
뱃전에 부서질수록 더 희어지던
바다의 눈부신 속살들이

너의 손을 잡고
불렀던 쇼팽의 이별의 곡
그날 밤 너희들은
몰래 마신 술 몇 잔에 취하여
혹은 슬픔이 전염되어
엄마 엄마 부르며 통곡했다지

난 너의 아빠가 되어
등을 두드려주었지
아이야, 아느냐?
태풍은 바다를 괴롭게 하지만
바다를 썩지 않게 한다는 것을
때로는 슬픔만한 약이 없다는 것을

너는 아직 철부지 아이지만
종이학을 접는 앳된 아이지만
그 아이 속에 모성이 있다는 것을
생명의 바다가 출렁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단다, 너의 눈빛만 보면

그러니 아이야,
시련이 와도 사랑은 접지 말거라
때로는 슬픔으로 환해지거라
이 세상 따뜻한 한 사람을 만나
네 안에 기어이 생명을 담고 말거라

그것이 열 일곱 너에게 바라시는
사랑이신 하나님의 뜻이려니…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올리기 전에 아이를 만나 원고를 보여주었습니다. 한 시간 뒤에 만나 제가 물었습니다.
"괜찮겠니?"
"네. 좋아요."
"이름은?"
"가명으로 하면 어때요? 지수라는 이름으로요."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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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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