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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3월 2일자 1면 사이드톱 기사. 수년전에 이미 밝혀진 사실을 새로 발굴한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회장 김희선 민주당 의원)에서 친일반민족 행위자 명단 708명을 1차로 공개한 이후 연일 자사지면을 통해 이를 성토해온 <조선일보>가 급기야 수 년전에 이미 논문, TV 다큐프로 등을 통해 공개된 내용을 마치 최근에 새로 발굴한 내용인 것처럼 보도해 언론계 안팎의 빈축을 사고 있다.

<조선일보>는 2일자 1면 사이드톱 기사로 동요 '고향의 봄’작사가인 아동문학가 이원수(1911~1981) 선생의 일제하 항일활동 내용을 보도했다. 이 선생의 항일활동 기록은 조선일보를 비롯해 동아일보 등 당시 신문과 경찰 자료 등을 통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조선일보>가 2일자 기사에서 "'고향의 봄’ 이원수 선생 항일활동 당시 조선일보 통해 뒤늦게 확인”이란 제목으로 보도한 것은 엄밀히 따지면 사실 왜곡인 셈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조선일보>가 최근 국회의원들이 <조선일보> 사주(방응모)를 친일파 명단에 포함시키자 '조선일보도 항일활동을 보도했다’는 사실을 부각시켜 '민족지’로 보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 2일자 1면에 크게 보도

<조선일보>는 2일자 기사에서 "이원수 선생이 일제시대 청년문인비밀결사를 조직해 항일문학운동을 하다가 수개월 옥고를 치른 것이 밝혀져 그의 민족운동가적 삶이 재조명돼야 한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마산보훈지청은 1일 '이 지역 독립운동가를 찾던 중 부산대 도서관에 보관된 1935년 당시 조선일보 마이크로 필름에서 이원수 선생 등 마산과 함안지역의 문인 다섯명이 저항문학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른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원수 선생의 문학세계와 항일운동을 조명한 93년 인하대 석사학위 논문 표지.
그러나 이원수 선생의 항일활동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로 새삼스러울 게 하나도 없는 사안이다. 이원수 선생의 삶과 문학 업적을 기리거나 연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이원수 선생의 항일 활동과 수감기록, 그리고 이를 보도한 당시 신문기록은 학계 뿐만 아니라 이미 언론에도 여러차례 알려졌기 때문이다.


93년 인하대 석사학위 논문에서도 언급

이원수 선생의 항일활동을 학문적으로 밝힌 논문까지 나와 있다. 인하대 대학원(국어국문학과)에서 1993년 일본인(나카무라 오사무)이 석사학위로 쓴 '이원수 동화/소년소설 연구' 논문이 그것이다.

이 논문에 의하면, "'함안독서회’는 치안유지법 위반의 혐의를 받고 1935년 2월 27일과 28일 회원 6명이 모두 경찰에 체포 당했다“라고 밝혀 놓았다. 그러면서 "3월 3일과 3월 6일자 조선일보는 이 경남문청동맹사건을 마산발로 보도하고 있다“고, 분명히 밝혀 놓았다.

논문은 또 "(1935년) 3월 3일 마산발 동아일보의 기사에서 이원수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면서, 관련기사까지 실어 놓았다. 뿐만 아니라 이원수 선생은 살아 생전에 갖가지 항일활동과 관련한 기록들을 남겨 놓았기 때문에, 이들 신문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마산문화방송, 95년 다큐멘터리 방영 때도 알려져

▲인하대에서 이원수 선생에 대해 석사학위 논문을 쓴 일본인 나까무라 오사무씨가 마산문화방송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선생의 항일문학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이원수 선생의 항일활동을 당시 신문들이 이에 대한 보도를 했다는 사실은 이미 언론을 통해서도 알려진 지 오래다. 마산문화방송은 7년전인 지난 1995년 5월 26일 <아동문학의 거목 이원수>(담당PD 김사숙)를 제작, 방영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은 그해 5월 방송위원회에서 '이 달의 좋은 프로그램’까지 선정되었고, 그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난 날 저녁 8~9시 사이에 전국 방영되었다.

마산문화방송의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이원수 선생의 항일활동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김사숙 PD가 이와 관련한 기록을 찾는 모습도 생생히 그려 놓았으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마이크로 필름을 찾아낸 장면까지 담고 있다.

김사숙 PD는 "이원수 선생의 항일활동과 수감기록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해 전에 알려진 사실이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마산보훈지청, "이미 알려졌다는 사실 몰랐다" 시인

▲95년 마산문화방송 다큐멘터리에서 마이크로필름을 통해 이원수 선생 관련 기록을 찾고 있는 모습.
<조선일보>는 2일자 기사에서 마산보훈지청측이 최근 관련 자료를 찾아 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이는 삼일절을 앞두고 마산과 함안지역 저항문학 활동 관련 자료 발굴 작업을 벌이던 마산보훈지청측이 공개여부에 대해 제대로 확인작업을 거치지 않고 일부 언론에 흘린 탓으로 보인다.

2일 <조선일보> 보도 이후 지역사회에서 논란이 되자 마산보훈지청 관계자도 이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산문화방송 김사숙 PD는 2일 저녁 "조선일보에서 2일자 1면에 크게 보도되자 한 시청자가 전화를 걸어 알려 왔다. 조선일보에 난 기사는 이미 다 알려진 사실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문 기사를 살펴보고 마산보훈지청에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잠시 뒤 마산보훈지청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 와 마산문화방송에서 95년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알려왔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언론계의 한 인사는 "최근 국회의원들이 발표한 친일파 명단 가운데 전 사주가 포함되자 궁지에 몰린 <조선일보>가 무리해서 방어적인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빚어진 촌극 같다"며 "<조선일보>가 친일파 문제를 이런 식으로 풀아나간다면 결국 자사에 돌이킬 수 없는 해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원수 선생은 누구인가

이원수 선생은 동요 ‘고향의 봄’을 만든 사람으로 잘 알려져있다. 양산에서 태어나 청년기를 창원과 마산에서 보냈다. 1926년부터 문학 작품을 발표했고, 1935년에는 옥중시 “두부장수”를 썼지만 발표는 1981년에 이루어졌다. 이원수 선생은 900여편의 작품을 남겼다.

이원수 선생은 1935년 프로렐타리아 문예회 활동을 하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거되어 10개월간 수형생활을 했다. 1970년대 초 전태일의 삶과 죽음을 다룬 동화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의 대표적 아동문학 작가이자 서민문학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원수 선생은 한국문학상(1978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78년), 예술원상(문학부문, 1978년), 대한민국문학상 아동문학본상(1980년), 금관문화훈장(1984년 추서) 등을 받았다. 동요 ‘고향의 봄’ 노래비가 마산 산호공원, 양산 춘추공원, 수원 팔달공원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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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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