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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장난감 바구니에서 삐삐를 보자 4년 전 이맘 때가 생각났다. 그때 나는 일 년여에 걸쳐 본 24번의 맞선에 지쳐 있었다. 맞선에서 '필'이 꽂히기란 남북대화 만큼이나 어렵고도 지난한 일이었다.

매번 이번엔 정말 잘해 보자 맹서하지만 그게 맘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마음에 들면 상대방이 반응이 없고, 상대방이 통사정을 하면 내가 마음이 없고. 그러다 보니 어느 새 스물 하고도 네 번 씩이나 공치게 되고 말았다.

한 지인은 내가 '이번에는 몇 번째의 맞선'이라면서 세곤 하면 '니도 참, 선본 횟수를 그리 말짱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또 뭐람' 하며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나름대로는 중요했다. 내가 몇 번의 선을 보고 결혼을 하게 되는지 정말 나도 궁금했으므로. 설마 백 번이야 하는 마음도 있었고.

아니 한 50회 정도 채우면 결혼에 골인 할 수 있겠지 하는 희망에 부지런히 횟수를 헤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반갑게도 그런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50회의 딱 절반인 25번째의 만남에서 인연이 닿았다. 그것은 어쩌면 스쳐지나갈 뻔한 인연이었는지도 모르는데 잘못 온 삐삐 한 통 때문에 일이 진전된 것이다.

25번째의 맞선. 25번째의 파트너를 만나던 날은 일요일 오후였다. 그 날 상대방은 선을 두 번 보는 바람에 그러니까, 나는 '25번 남자'의 2차 맞선 상대였다. 중매 할머니가 25번 남자에게 하루에 두 명의 여자를 소개했는데 나는 그의 두 번째 상대였던 것이다.

25번 남자가 첫 번째 상대와 너무도 화기애애하게 얘기하는 것을 보고 온 중매할머니는 그 남자가 " 할매. 두 번 볼 것 없이 이 첫 번째 여자와 결혼하겠습니다" 하고 말할까 전전긍긍한 나머지 몇 번이나 전화해서 "아무리 그 색시가 맘에 들더라도 다음으로 약속하고 시간 늦기 전에 두 번째 색시도 마저 보라"고 통사정을 하였다.

그러한 양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처량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잘될 것 같은 '본능적인 예감'이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 시간 넉넉히 줘요, 그 여자가 아무리 괜찮기로서니 저만할까요 호호" 해가면서 농담까지 했다.

할머니는 "괜찮아서 결혼이 되고 덜 괜찮아서 결혼이 안 되고 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의 인연이란 묘하다. 어쨌든 니가 이런 상황을 기분 나빠하지 않고 웃어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할머니와는 말하자면 '나포'가 형성된 상태였기에 이해 못할 일이 없었다.

아무튼 첫 번째 여자와 너무 화기애애하다 보니 다소 시간이 늦어져서 25번 남자는 약속시간보다 늦은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사라질 무렵 헐레벌떡 할머니의 집 부근에 와서 전화를 하였다. 할머니는 그 남자와 접선시켜주고 돌아서다가 그래도 못 미더운지 한 번 더 나를 구석으로 불러 다짐을 받았다.
" 니 우짜든지 스물 아홉이라 캐래이. 스물 아홉도 많다고 하는 것을 내가 억지로 꼬셨다. "

걱정 말라고 대답을 했지만 나는 그를 만난 지 5분도 안 되어 서른 하나라고 불었다. 당시 TV에서는 할머니 역을 맡은 어느 탤런트가 '서른 넘은 여자는 지나가는 개도 안 쳐다본다'는 말을 유행시키고 있었다. 그만큼 맞선 '시장'에서 여자 나이 서른은 쥐약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자고로 서른은 되어봐야 결혼을 해도 지장 없는 됨됨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기에 서른을 넘었거나 말거나 나는 내 나이가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그도 처음에는 우시! 속았다 하는 기분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동갑이 주는 친근함에 자연스러워 진 듯했다. 그래서 보지는 못했지만 첫 번째 상대와의 만남 못지 않게 분위기가 화기애애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보통 키에다 조금 마른 체형에 웃음이 훤한 남자였다. 몇 마디 주고 받는데 할머니가 얘기한대로 꽁하지 않고 화통한 것이 나랑 맞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남자랑 결혼 하게될 것 같은 예의 그 본능적인 예감이 또 다시 들었다. 그래서 마음을 들킬 수 있는 말들도 해대며 희희낙락했다.

헤어질 때, 그 남자가 " 다음에, 술이라도 한잔하지요? " 라고 했을 때 단순히 인사치레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이, 웬만하면 우리 결혼합시다 하는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무슨 이런 여자가 다 있나 하며 도망이라도 칠까봐 가까스로(?) 참았다.

대신 하느님께 빌었다. 하느님 제발 이 남자 제게 삐삐(그 당시에는 삐삐가 연락 수단이었다) 좀 치게 해주십쇼 하며. 그리고 할머니에게는 내 의사를 확실히 전했다. " 할머니 나 그 남자가 좋다면 결혼하고 싶어요. " " 그래 생각 잘했다. 갸아, 진짜 괜찮은 얘다. 이번에는 정말 결혼하는 기이다." 할머니는 당연히 그 남자도 내가 마음에 들었으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그 다음 날 저녁 나는 대구와는 극과 극이라 할 수 있는 인천 월미도에서 그의 삐삐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 5년 된 한 친구부부의 여행에 나와 처지가 같은 또 다른 노처녀랑 동행이 되어 월미도의 밤바람을 맞으며 맛있는 횟집을 고르다가 전망 좋은 3층의 어느 횟집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밤이라 바다는 보이지 않았고 시각은 마악 아홉 시를 향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남의 집에 전화를 걸 경우 저녁에는 아홉 시 이전에 하는 것이 예의로 통용되고 있다. 때문에 삐삐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치려면 마찬가지로, 아홉 시 이전에 쳐야 하는 것이렸다. 그렇거늘 어찌된 일인가, 이 남자는. 내가 김칫국을 마시나 하고 있는데 띨띨띨 삐삐가 울렸다. 번호를 확인해보니 웬걸 전화를 걸 수 없는 숫자가 몇 개 나열되어 있었다. 아, 이. 실. 망.

그러나 아전인수의 내 생각은 이 남자가 삐삐를 치다가 용기가 부족해서 번호를 누르다 말았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한 착각은 그에게 전화를 걸 빌미를 주었다. 자기 도취도 때로는 쓸모가 있는 겐지. 아니 왠지 내가 먼저 연락을 해야 될 것 같은 본능적인 예감을 '또 다시' 받았다. 아무튼 일주일쯤 지난 후 나는 용기 백배해서 그의 명함에 적힌 대로 다이얼을 눌렀다.

" 여보세요. 이아무개 씨 부탁합니다. "
" 지금 자리에 없거든요. 한 삼 십분 후쯤 다시 전화 하실래요? "
" 네에, 그러지요. "
큰맘 먹고 전화했는데 자리에 없다니. 그러나 내친김에 삼십 분 후에 다시 전화하기로 했다.

다행히 삼십 분 후에는 그와 통화 할 수 있었다. 그는 좀 얼떨떨한 듯 " 여보세요? " 한다. 나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자괴감을 감추느라 일부러 하하 웃으며 " 아, 네, 저 지난 주에 선본 사람입니다. 이거 뜬금없이 전화해서 죄송합니다. 용건만 간단히 하고 끊겠습니다. 주소 좀 가르쳐 주시면 제가 편지를 한 통 띄우고 싶습니다만, 괜찮겠어요? "
" 아, 네.... 그러시지요. "

그 남자는 주소를 불러주었다. 한번 더 확인하고는 "너무 부담 갖지 마십시요. 그리고 전화 죄송합니다"
" 아니요... "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하루를 생각하여 에이포 용지 두 장인가 석 장인가를 빼곡이 채워서 편지를 띄웠다. 제대로 된 연애 편지 한번 못 받아본 남자라면 필시 그 형식에 넘어 갈 것이라는 '회심'의 미소를 띄우며. 아니, 그런 마음은 일부이고 정말 나의 진심을 읽을 수 있게 고해하듯이 내용을 채웠다.

그리고 그 말미에는 나랑 결혼할 생각이 있으면 모일 아홉 시까지 연락을 주고, 그럴 마음 없으면 다른 좋은 사람 만나 잘살라며 화끈하게 끝을 맺었다.

이윽고, 그 날이 되었다. 아홉 시가 점점 가까워오는데도 그 남자, 소식이 없었다. 허참! 내가 또 이렇게 우사를 당하는구나 하며 슬슬 마음을 정리하려는데 아홉 시 정각이 되었고, 띨띨띨 띨띨띨.....삐삐가 울렸다. 번호를 확인해보니 25번 남자였다. 야호! 나는 당장 전화를 하였다. 성질 급한 나는 한 번 더 다짐을 받았다.

" 예스? 노우? 빨리빨리 얘기하시지요. "
" 성질도 급하기는. 어째 한 번 보고 예스, 노우가 됩니까? "
" 그럼 한번 더 봅시다. "
" 그럽시다. "
" 내일 어때요. "
" 좋아요. 오후 여섯 시. "
" 저희 집 가까이 있는 모 호텔 커피숍 말고 그 주차장에서 기다려요. "

그 다음 날 오후 여섯 시에 우리는 거국적으로 만났다.
이번에는 그가 한술 더 떠서 " 마아, 오래 끌 것 없이 오늘 당장 결혼합시다 "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맞선본지 두 달만에 후다닥 결혼을 하였다. 그로부터 만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는 아직도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똑같은 질문을 해서 상대방을 열 받게 만든다.

" 그때 선본 다음 날 정말 내인데 삐삐 안 쳤나? "
" 안 쳤다 안 카나."
" 정말이가? "
" 그래. "
" 솔직히 말해봐라. 치다가 용기가 없어서 대충 번호 누르다 말았제? "
" 환장을 하겠네. 정말 안 쳤다. 똑같은 말 다시 더 묻지 말라고 했을 끼인데."

" 그라면 왜 내 편지 한 통 받고 얼씨구나 결혼하자 켓노? "
" 안 그래도 억울해 죽겠구마는. 어리하이 해가지고 늙은 여우의 꾐에 빠져서... 그때 편지만 안 받았어도. 마아, 내 인생 돌리도- 돌려 달라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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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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