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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LG정유노동자 특수검진 축소·조작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연 광주전남 민주노총.
ⓒ 오마이뉴스 조호진
검진기관의 축소·조작에 의해 노동자의 건강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전남 여천산단 LG정유 노동자 특수건강검진 판정 과정에서 직업병 요관찰자로 판정 받은 노동자가 병원의 조작에 의해 정상으로 둔갑된 사실이 적발됐다.

또 병원에서 분실된 검진원본 수십 장이 사건은폐를 위해 고의로 폐기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마저 제기되는 등 특수검진을 둘러싼 의혹이 계속 증폭되고 있다.

이와 함께 회사가 병원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된 가운데 이같은 축소·조작행위가 지속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노동계의 의혹제기가 일고 있어 사실여부에 따라 총체적인 의료비리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동자 특수검진 축소·조작행위 일부 사실로 드러나

회사로부터 압력을 받은 병원이 3차례에 걸쳐 직업병 관련 판정을 받은 노동자 수를 축소·조작했다는 LG정유노동조합의 의혹 제기가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LG정유 노조는 지난 2000년 4월부터 광주 김병원에서 실시된 특수검진(대상 834명) 1차 판정결과 130∼140명(추정)이 직업병 요관찰자(C1) 등의 판정을 받은 뒤 2차에서 100명으로 줄었고, 판정의사가 바뀌면서 83명으로 다시 줄어 회사에 최종 통보됐다며 이 과정에서 회사에 압력을 받은 병원이 축소·은폐를 했다고 계속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 같은 노조의 주장에 따라 광주지방노동청이 조사한 결과 병원이 직업병 판정 노동자를 정상으로 둔갑시킨 사실이 일부 적발됐다.

광주노동청 조사결과 김병원이 '직업병 요관찰자'로 판정 받은 LG정유 노동자 전아무개(42) 씨 등 4명의 판정결과를 정상으로 고친 것을 비롯해 '일반질병 요관찰자(C2)' 2명, '일반질병 유소견자(B2)' 2명 등 모두 8명을 정상으로 둔갑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광주노동청은 김병원에 대해 업무정지 4개월의 행정처분을 내렸으나 불법의료행위를 지도감독해야 할 광주시 보건당국은 이에 대한 진상조사를 게을리해 직무유기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분실된 검진원본, 사건 은폐하기 위해 없앴을 가능성

LG정유 노동자 특수건강검진원본 수십 장이 병원에서 없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노동계에서는 축소·조작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누군가 고의로 폐기 처분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에 대한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김병원이 분실한 LG정유 노동자의 검진원본은 모두 25장으로 밝혀졌다. 이 가운데 병원이 노조에 제공한 10장은 노조가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나머지 15장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원장 김아무개 씨는 17일 "노조관계자가 병원을 방문해(지난해 11월 초순) 검진원본 3부를 요구해 제공했고 나머지 22부는 없어진 것을 그때 알았다"고 밝혔다. 노조가 보관하고 있는 10부 가운데 7부는 병원측 관계자가 노조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 관계자는 16일 "특수검진을 축소·조작한 사실이 일부 드러나자 문제 확산을 막기 위해 나머지 검진원본을 누군가 폐기 처분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검진원본과 전산에 기록된 사본을 비교하면 조작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며 "사건이 커지자 조작행위가 들통날까봐 의도적으로 원본을 없앴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특수검진의 문제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선 LG정유 특검대상 834명 전체에 대한 원본과 사본의 대조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 놓았다.

▲검진조작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검진원본을 들고 있는 노동자들. ⓒ 오마이뉴스 조호진



특수검진 축소·조작행위는 관행으로 묵인된 의료범죄?

노동계와 의료계 관계자들은 특수검진 의료기관들이 회사와의 지속적인 계약을 위해 직업병 판정이 적게 내려지길 원하는 회사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한결 같이 입을 모으고 있다.

특수검진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LG정유뿐 아니라 다른 회사 노동자들의 특수검진도 축소·조작됐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광주·전남의 노동자 특수검진 의료기관은 김병원을 비롯해 모두 7곳으로 알려졌다.

지난 97년 특수검진센터 문을 연 김병원의 경우 그 동안 광주와 곡성의 금호타이어를 비롯해 여천산단에 있는 LG정유, 한화종합화학, YNCC, 대림산업 등의 특수검진을 맡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문제가 된 LG정유의 2000년 상반기 특검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들의 특검도 문제가 나타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어 노동부와 검찰의 수사확대에 따라 상당한 의료비리로 불거질 가능성이 예상된다.

문제의 검진기관들은 검진수치는 그대로 놔둔 채 전산사본의 판정결과만 정상(A) 등으로 바꾸는 수법으로 직업병 질병자의 수를 줄여 의뢰 회사와 산업안전관리공단, 해당 노동자 등 3곳에 통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또 검진기관이 최종 판정을 내리기 전에 검진결과를 회사에 사전 통보한 뒤 회사의 요구에 따라 판정결과를 조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전산실 관계자가 검진의사 몰래 전산사본을 조작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병원의 경우 검진수치를 그대로 놔둔 채 판정결과만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 이 같은 개연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번 LG정유 특검 축소·조작의 발단은 병원 관계자가 회사에 판정결과를 사전에 통보하고 이를 안 회사가 유무형의 압력을 행사해 판정 숫자를 줄였다는 주장과 의혹이 불거진 상태다.

이들은 또 검진원본이 통째로 바뀔 가능성도 제기했다. LG정유노조는 지난해 상반기 특검 당시 검진원본 조작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특검 노동자의 자필 서명을 원본에 기입하도록 수 차례 회사에 요구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래 검진원본 기록부에는 검진의사, 회사 보건관리자, 노동자 본인 등 3명이 각각 서명하도록 되어 있으나 LG정유는 노조요구를 묵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과거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경우 검진원본을 확인하기 위해 원본에 몰래 점을 찍어 표시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했던 적도 있어 특검에 대한 불신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자필 서명이 요구되고 있다.

원진녹색병원 종합검진센터 양길승 대표는 18일 "오진한 것이 아니라 판정결과를 바꾸었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부도덕한 의료범죄 행위"라고 강도 높게 지적하면서 "특수검진 축소·조작여부를 확인하는 방법 가운데 병원에 보관된 검진원본과 회사와 노동자에게 보낸 사본을 비교하면 된다"고 방법을 제시했다.


특수검진 판정의사, "병원과 회사로부터 간접적인 압력"

▲기자회견장에서 간접 압력 사실을 밝히고 있는 김양옥 씨.
ⓒ 오마이뉴스 조호진
지난 2000년 LG정유 노동자 특수검진 판정의사였던 김양옥(68·전 조선대 산업의학과 교수) 씨가 지난 15일 민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병원과 회사로부터 간접적인 압력을 받고 판정 도중에 병원을 그만두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날 "병원장이 타 검진기관의 사례를 참고하여 판정해달라는 요청을 수차례 한 것이 압박이 되었다"며 "사임하기 전날(2000년 6월 28일) 병원 직원회의에서 'LG회사에 흠집을 내기 위하여 C1(직업병 요관찰자) 판정을 많이 내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는 회사 담당자로부터 항의를 받았다고 말하는 병원장의 말에 불쾌한 압력을 느꼈다"고 판정과정의 압력사실을 털어놓았다.

김씨는 또 "병원을 그만두면서 판정한 C1소견(직업병 유소견자 등 포함 100여 명)은 그대로 회사에 보고될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병원과 LG정유가 C1등급 판정을 노동자 건강관리 측면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잘못된 거부반응을 나타낸 것에 대해 실망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특히 LG정유 공장을 2회에 걸쳐 방문해 건강이상을 호소한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증상을 확인하는 등의 신중한 절차를 거쳐 추적관찰과 작업전환이 필요한 노동자들을 직업병 요관찰자(C1)로 판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병원과 회사의 유착에 의해 노동자 건강 무시한 사건

▲LG정유 김정곤 위원장
ⓒ 오마이뉴스 조호진
LG정유노조와 민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는 15일 기자회견을 갖고 특수검진 축소·은폐관련 책임자 처벌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주장했다.

이날 LG정유노동조합 김정곤 위원장은 광주 김병원에서 실시한 2000년 상반기 특수검진 당시, 이 병원 부적격 의사가 종이를 오려붙여 판정을 바꾸는 방식으로 질병 유소견자 100여 명을 83명으로 축소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소음성 난청 직업병 유소견자(D1)를 직업병 요관찰자로 하향 조정하고 작업전환 소견을 변조해 보호구 착용 등으로 바꾸었다며 이 사건은 병원과 회사의 유착에 의해 노동자 건강이 무시된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는 이날 성명서에서 "검진 의사가 진찰하는 시간은 1분에서 3분밖에 되지 않는 형식적인 진찰을 하고 있다"며 "건강검진에 대한 문제를 줄곧 제기해온 노동계의 입장을 무시한 결과 이런 사태가 초래됐다"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지역본부는 ▲정부는 LG정유 특수검진결과 축소·조작 은폐한 회사, 병원 관계자 및 관계기관 책임자 처벌 ▲노동청은 노동조합이 추천한 검진기관에서 재검진 실시 지도감독 ▲건강검진제도 및 작업환경측정 전반에 대한 노동자 감사권 보장 ▲작업환경측정과 검진기관 선정에 노동조합 참여보장,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권한과 위상강화와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 등 4개항을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22일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특수검진결과 축소조작 규탄과 건강검진제도 개혁촉구를 위한 결의대회'를 갖는다. 또, 김병원 앞에서 특검 조작에 대한 항의시위를 계획하고 있어 특검 사태는 계속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LG정유는 병원에 대한 압력여부 일체를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4일 광주지검 순천지청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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