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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4호선 종점 당고개. 선배의 작은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는 출퇴근할 때마다,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야만 한다. 마주 오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옆으로 몸을 비켜야만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다.

아직까지 연탄 보일러로 겨울을 나고 있는 그 골목길 모퉁이 집, 등이 굽은 할머니는 오늘도 지난 밤 아랫목을 뜨끈뜨끈하게 덥히느라 생명을 잃고 하얗게 바랜 연탄재를 문 앞 한구석에 곱게 쌓아 놓았다. 바로 옆집에서는 빛에 들지 않아 마르지 않은 알록달록한 양말을 아침햇살에 조금이라도 말리기 위해 창틀에 매달아 놓았다.

조만간 맛있는 국거리가 될 노랗고 바삭하게 마른 시래기도 좁은 골목길 처마에 매달려 있고, 양치질하고 세수 소리, 이부자리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 아이들을 깨우는 소리, 밥이 익는 냄새, 밤새 굶어 지쳐버린 도둑괭이가 손살같이 지붕을 타고 넘는 모습까지 이 골목길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있다.

골목길이라고 하면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테고, 지긋지긋한 가난과 지저분함이 먼저 생각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골목길' 이제는 재개발로 인해 사라져가고 있는 그곳에 터전잡고 사는 사람이 아니기에,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선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어 골목길의 '낭만적'인 풍경만 가슴에 담아두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후 느지막이 골목길에 모여 앉아 햇볕을 쬐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할머니들, 한손에 먹거리를 들고 이웃집에 마실가는 아주머니, 깔깔대며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골목길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아이들을 볼 때면 썰렁한 아파트촌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잘살고 못살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정이 흐르는 공간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는 결론을 나름대로 내려보았다. 물론 정이 흐르는 공간이란 골목길을 말하는 것이다.

한사람이 양보해야만 지나갈 수 있는 상계동 골목길은 사람 사는 곳이라면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사는 맛에 대하여 생각하게끔 만든다. 그것이 골목길이 있는 곳이건 없는 곳이건 사람들은 하나같이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이 정을 나눌 수 있는 골목길과 같은 공간을 필요로 한다. 낡은 것은 모두 부숴 버리고 무조건 높고 큰 것만 들어서고 있는 도시는 삭막하기만 하다.

그 삭막함에 지쳐 밤늦게 퇴근할 때면 가로등 모퉁이마다 켜져 있는 가로등 불빛을 따라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리며 어설픈 '소설가 구보씨'나 '플라뇌르(flaneur)'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미로 같은 골목길에서 낮 동안 엉켜버린 생각들을 풀어가며, 언뜻언뜻 보이는 수락산을 나침반 삼아 잠자리를 찾아가는 나는 언젠가 사라져버릴 상계동의 골목길을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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