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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하는 것은 미국의 모든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대해 균형 있고 사실에 기초한 비판적 포용의 자세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중앙일보 1월 21일자 칼럼에서 김경원 씨는 "한국에서 반미주의가 문제되는 이유는 한국이 놓여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반미주의가 문제가 된다는 사실은 거꾸로 말해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반미주의가 나타났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은 구한말부터 위로는 러시아와 중국, 아래로는 일본 그리고 멀리 미국, 프랑스 등 구미열강의 침략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었고 결국엔 일본군국주의 발에 짓밟히는 민족사적 상처를 받게 되었다. 그것은 김경원 씨 말한 바와 같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중화사상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현실과 부동항을 얻기 위한 러시아의 이해관계, 대륙진출의 교두보로써 한반도를 취하고자 한 일본의 이해관계가 구한말 한반도의 정세였다.

그럼 21세기 세계 유일의 이데올로기적 분단상태에 놓여있는 한반도의 현실은 구한말의 현실과 다른가?

냉전시대 미국의 세계지배 전략의 일환인 필립핀, 대만, 한반도와 일본을 잇는 반공기지로서의 한반도와 아직도 민족화해와 협력을 통한 통일의 길이 요원한 한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미국이다.

소련을 위시한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후 세계유일의 패권국가로 떠오른 미국,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내세우며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 미국의 핵우산 아래서 군사력을 미국에 의탁한 채 급격한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이제는 군사대국화하고 있는 일본, 현실사회주의 종주국이었던 러시아(구 소련)도 그들의 막강한 군사력은 매우 위협적이라면에서 한반도는 구한말 한반도가 위치한 상황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다.

또 김 씨는 반미주의의 문제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한면만을 확대 왜곡하는 데 있다"며 "우선 미국을 좀더 정확히 알아야겠다"고 말한다.

그가 반미주의 문제로 든 근거를 연세대 유영익 교수의 말을 빌려 대략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전통적인 화이(華夷)양분론에 따라 미국이 야만의 나라라는 견해
둘째, 영토가 광활하며 부유하고 정의로운 나라이므로 우리가 의지할만한 ‘문명 부강국’이라는 견해
셋째,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침략국가라는 마르크스주의의 견해
넷째, 말로는 평등을 외치나 유색인종을 차별하고 탄압하는 사회라는 견해
다섯째, 황금만능주의 ․관능적 쾌락주의 등 도덕적 타락과 정치적 부패로 몰락할 수 밖에 없는 서양문명에 속한다는 견해

그는 위의 다섯가지 견해를 근거로 "미국은 예의를 모르는 야만인의 나라,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해 제국주의 정책이 불가피한 나라, 말로는 평등을 내세우면서도 소수민족을 차별하는 나라, 그리고 도덕적으로 타락해 결국은 몰락할 수 밖에 없는 서양의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라는 선입견이 지난 1세기 반동안 우리 민족의 대미인식을 지배해 왔다"고 결론 짓고 있다. 물론 이런 의식 속에 과연 반미의식이 공통 분모로 흐르는 지에 대해서는 이해할 길이 없다.

지난 1세기 반동안 우리 민족의 대미인식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여부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러한 대미인식 변화의 배경이 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국내외적 정치정세의 변화일 것이다.

신미양요를 통해 무력으로 조선을 개방하려 했던 미국, 36년 간의 지난한 일제강점에서 해방을 건네주고 가난한 민족에게 막대한 경제원조를 통해 우리의 목숨을 부지시켜주었던 미국이며, 또 노근리 양민학살 등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조직적인 민간인 학살과 한국현대사 중심에서 적극적 개입을 통한 미국의 동아시아 반공기지화 전략을 수행해왔다.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인을 포함한 유색인종에 대한 높은 인종차별의 벽, 극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강대국 미국이 보여준 자본주의적 부패현상 등은 우리가 "대미(對美)인식을 너무 단편적이고 단순하게 하였다"기보다 미국의 실체를 확연히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인식확장의 계기였던 것이다.

왜 반미를 외치는가?

김경원 씨가 말하듯 "미국의 어느 한 면만 보고 그렇게 드러난 결점 하나 또는 둘을 보고 미국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정국, 이승만정권, 박정희군사정권, 광주민주화운동, 군사쿠데타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고비 고비마다 드리워진 미국의 역할을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의 전체적인 조망을 통해 나타난 민족자주의 문제인 것이다.

김경원 씨는 "한국에서 반미주의가 문제되는 이유는 한국이 놓여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라면서 그 해법을 미국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사대주의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필요한 나라다. 강대국 틈에서 숨쉴 공간을 확보하기 하기 위해서는 지역 밖의 강대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왜 하필이면 강대국 틈에서 숨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동맹관계가 필요한 나라가 미국인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상 한반도는 미국 중심 혹 구 소련 중심의 이념으로 통합되기에는 위험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중립화 논의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역사에서 민족 생존의 문제를 나라 밖 강대국과의 동맹관계에서 찾을 경우 민족이 겪어야만 했던 대외종속의 역사를 뼈아프게 기억하고 있다. 물론 다양한 이해와 요구가 분출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여러나라들과 협조 및 경쟁하는 것은 생존적 차원에서 중차대한 일이나 그것이 자국의 이익을 버린 해바라기식 동맹관계라면 문제는 자멸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미국이 일제강점기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준 것, 한국전쟁에 개입하여 남한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만들어준 것이 순수하게 한국의 발전과 이익을 위한 것인가를 곱씹어 보아야 한다. 미국이 세계 유일의 강대국으로 자리매김 위한 세계전략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한국이 강대국 틈에서 숨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동맹관계와 이를 위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적자생존의 세계흐름 속에서 민족자주의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주체적인 민족발전전략이 필요한 시기이다. 오늘의 우방이 내일의 적으로 변하는 급박한 세계정세 속에서 분단조국의 통일과 21세기 한반도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자주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발전전략 그것이 우리에겐 '반미(反美)'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임도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반미를 외치는 것은 미국의 일면만을 근거로 하여 외치는 것이 아닌 한국 근현대사에 드리워진 미국의 역할을 통해 자각한 민족 자주의식의 발로인 것이다.

즉, 김경원 씨가 당부하듯 "우리가 원하는 것은 미국의 모든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대해 균형 있고 사실에 기초한 비판적 포용의 자세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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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2002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위원 2002년 3월~12월 인터넷시민의신문 편집위원 겸 객원기자 2003년 1월~9월 장애인인터넷신문 위드뉴스 창립멤버 및 취재기자 2003년 9월~2006년 8월 시민의신문 취재기자 2005년초록정치연대 초대 운영위원회 (간사) 역임. 2004년~ 현재 문화유산연대 비상근 정책팀장 2006년 용산기지 생태공원화 시민연대 정책위원 2006년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 재협상 촉구를 위한 긴급행동 2004년~현재 열린우리당 정청래의원(문화관광위)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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