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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악머구리 소리 귀를 찌르고
집들이 물에 잠기고 세상이 떠내려 가는 장면을 목격하는 순간,
눈을 떴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천둥 소리가 들리고 창으로
강한 섬광이 벅득거리며 창문 밖에서 노려보는 게 어이구 …, 이거…,
이 '엄동(이어야 할 계절)'에 번개천둥이라니…….

겨울비라 하기엔 상당히 많이 내리고
꿈 때문도 아니요, 비를 맞은 것도 아닌데 몸이 후줄근하게 젖어 있습니다.
뒤집어 쓴 이불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켜 불을 켭니다.
새벽 2시가 채 안 됐습니다.
열네 평짜리 궁전의 손바닥만한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잠이 든 거였습니다.
서너 시간은 잤던 모양입니다.

양력 새해 첫날 밤새도록 진눈깨비에 비가 섞여 내려
이번 겨울도 그렇게 춥고 눈 많이 내릴 것 같더니만,
요 며칠 봄이 온 듯 착각할 정도로 별스럽게 따뜻하더니만, 급기야
번개천둥에 비를 뿌리는군요. 지난 해엔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려
겨우내 눈과 얼음이 깔려 있었는데….

컴퓨터를 켜고 책상머리에 앉았는데
케이블 모뎀의 On line 신호가 꺼져 있습니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아마도 번개를 맞아 끊긴 걸까요? '흐음…….'
나는 천둥 소리에 깼는데 통신 케이블은 번개에 잠들었나 봅니다. 허허, 참.
보리차를 한 잔 들이키고는 (아마도 예전같아서는 이 대목에서 담배연기를 길게 들이켰다가 내뿜었을 테지요.) 답답한 마음에
작은 창문을 여니 훅, 하고 비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다시 책상 위에 앉아 '기왕 켠 컴퓨터니까 뭔가는 해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해서 당신께 두 번째 노래 엽신을 띄웁니다.



= 듣고 계신 MIDI 음악은 【반성, 2002(가제)】라는 소품입니다. 가사는 아직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12월 31일 구상해서 1월 2일에 갈무리한 것이라 거칩니다. 양해 바랍니다.
= 종소리로 열리던 새벽, 혹 총성으로 열리던 어느 해 아침의 기억을 곱씹어 보고 싶었습니다.

= 지난 회에서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단순하게 PC에 의존해서 만든 MIDI 음악은 그 자체로 표현상의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는 만든 사람의 역량상의 한계가 우선입니다.) 그리고 컴퓨터에 내장된 사운드 카드의 질에 따라서 상이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 하루 빨리 mp3 등의 보다 안정적인 매체로 만들어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양력 신사년 정초에 홀로 되물었던 적 있습니다.

'새해는 어떻게 열릴까?'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술자리에서 실없이, 뜬금없이 당신께 이런 질문 던지기도 했지요.

"(새해는) 말발굽 소리로 열릴까?
보신각 종 치는 소리로 열릴까?
바다에서 솟아오를까,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올까.
한반도의 가장 동편에 있는 독도의 벼랑이 떠오르는 해에 벌겋게 물들면 열리는 걸까,
아니면 대통령과 삼부요인, 정치 '지도자'들의 신년사로 열리는 걸까?"



동문서답이라 해야 할지, 남문북문이라 해야 할지…. 당신의 되물음이 더 걸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올해에 붙여진 이름이 그렇게 많은 거야?
'선거의 해' '월드컵의 해' '아시안 게임의 해'에 심지어 '전쟁의 해'…."

'…….'

질문을 한 내가 미워졌지요.

환청일까요? 이명(耳鳴)일까요.
내 귀엔 이 새벽 들리는 천둥소리가 고함소리인 듯,
혹 당신의 악다구니 소리인 양 귀를 울립니다.
본격적으로 새해가 시작되기도 전에,
채 양력 정월이 채워지기도 전에
어느새 연말에서 연초에 늘어놨던 호사스런 전망ㅡ주술에 가까운 예언ㅡ들이
당신의 고단한 일상 속에서 잊혀지고 묻혀가고 있습니다.
예제서 들려 오는 고함소리, 악다구니 소리에 묻혀가고 있습니다.

직선으로 늘어놓은 시간의 연속으로서의 1년과
그 1년마다 맞이하는 새해를 믿지 않는다는 당신.
당신은 언젠가 내게 말한 적 있지요.

"차라리 반복되는 일상, 순환하는 절망을 믿겠다", 고.

이 한겨울에 들리는 천둥소리, 빗소리에
후줄근하게 몸을 적신 땀을 식히며 생각합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더 이상은 저 악다구니와 아우성을 바라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을.
저 악다구니와 아우성, 고함소리과 쟁투로 얼룩진 길밖으로 나서야 함을.
해서 스스로 인간됨과 존엄함으로 어우러져
더불어 악다구니가 되고 아우성이 되고
고함이 되고 싸움이 되어야 함을.

덧붙이는 글 | ※ 인터넷 케이블 모뎀이 번개를 맞아서 이제서야 복구가 됐습니다. 새벽에 쓴 엽신을 이제야 부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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