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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호진 / 사진 노순택 기자

150만의 인구가 살아가는 전남 동부권은 비극의 여순사건에 의해 초토화가 됐던 도시다. 초죽음의 피해를 입고도 오히려 반란의 도시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살아온 이 곳 사람들은 묵묵히 잿더미에서 꽃을 피웠다.

그 꽃을 피운 이들은 알곡을 키우고 고기를 잡으며 이 땅을 기름지게 한 아버지이고 어머니였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의 힘겨운 노동에도 흥을 잃지 않은 그들의 저력에 의해 이 땅의 역사는 면면히 흘러온 것이다.

▲ 전라남도 순천 역전 시장의 새벽
ⓒ 오마이뉴스 노순택

<오마이뉴스 전남동부>는 창간에 맞춰 이 땅을 일궈낸 사람들의 새벽을 찾았다. 그 새벽 사람들의 힘이 오마이뉴스 전남동부의 근간이 될 것으로 믿으며 그 힘을 토대로 일하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날이 분명 도래할 것임을 믿는다.

전남 동부권의 자랑 '순천역전 새벽시장'

삼백예순날마다 새벽 사람들에 의해 순천 역전시장(일명 새벽시장)은 깨어난다. 그 새벽 사람들은 마치 게릴라와도 같이 정오 무렵이면 파장을 한 뒤 쏜살같이 빠져나간다. 그런 세월이 어느덧 삼십여 년이 흘렀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순천 인근의 여수, 광양, 고흥, 벌교, 구례 등지에서 야채며 생선을 이고 지고 모이는 수 백 명의 장꾼들은 한해가 오고가는 지난해 12월 29일과 올 1월 2일에도 어김없이 어둠을 뚫고 모여 새벽장을 장악했다.

두툼한 옷과 털목도리로 중무장한 이들은 해장 막걸리로 추위를 떨치거나 화톳불을 피우며 새벽을 연다. 간밤의 안부를 묻거나 쇠락해가는 재래시장의 운세를 염려하며 작전회의를 펴듯 하루 매상을 점친다.

화톳불에 얹혀진 저 위대한 갈퀴손은, 뻘 밭 수천리 길을 헤치며 꼬막을 캐고 바지락 종패를 뿌리던 그 손은, 푸른 땅의 대지를 살찌게 하면서도 세상으로부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그 손은 열 자식을 낳고 키워 대처로 떠나보낸 허전한 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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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여명이 한참 이른 시각에 모여든 이유는 목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어둠에 웅성거리던 시장이 잠을 깬 것은 순식간이었다. 해장술에 몸이 풀린 그들이 고함과 욕설을 어둠의 정수리에 꽂으면서 장바닥은 날랜 몸짓으로 활개치기 시작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생선궤짝을 실어나르는 인부는 증기기관차처럼 하얀 입김을 토하며 장바닥을 누볐다. 벌교 여자만에서 막 잡아온 선어(鮮魚)며 바지락 등 싱싱한 어패류와 미나리 등 야채가 좌판을 차지하면서 어둠에 헝클어졌던 새벽장은 누구의 명령도 없이 순식간에 대오를 갖추었다.

서울발 열차가 부려놓은 승객들로 잠시 소란스럽던 길 건너 순천역은 택시들이 승객들을 싣고 쏜살같이 내빼면서 다시 고요해졌다. 청과물도매시장은 아예 밤을 샜는지 불빛 환하고 과일과 야채를 실은 화물차들이 짐을 풀면서 역전시장은 북새통 난장판이 됐다.

아비, 어미의 터전인 재래시장을 죽이지 마라

역전시장이 시작된 것은 지난 68년, 판자촌이었던 시장은 88올림픽 당시 상가번영회가 법인을 만들어 현대식 건물을 지으면서 현재의 역전시장이 형성됐다.

일년 사철 새벽마다 열리는 역전시장은 하루 최고 1500여 명이 이용할 정도로 활발하다. 주요 고객은 일식집 등 식당주인들로 이들은 싱싱한 생선과 야채를 값싸게 구하기 위해 새벽장을 찾는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역전시장은 노점상이나 뜨내기 장꾼들에게 텃세나 자릿세를 요구하지 않는다. 상가 주인보다 노점상과 장꾼들의 매상이 월등하게 많음에도 오히려 자리를 비우면 대신 물건을 팔아주는 등 후한 인심을 베푼다. 다만 오물세로 하루 400∼600원을 받는데 그친다.

사통팔달의 도시로 활기찼던 순천 재래시장이 위기를 맞은 것은 뉴코아, 까르푸 등 대형유통점이 지역경제를 잠식하면서부터였다. 거기다 작년에는 다국적 유통기업인 삼성 홈플러스까지 입점 계획을 세우면서 영세상인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재래시장의 위기감을 보여주듯 역전시장 건물에는 빛바랜 삼성 홈플러스 입점반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역전시장 대표 김용일(60·칠팔건어물상회 주인) 씨는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시장사람들은 몸으로 때워 자식들을 키우고 가르쳐왔다"며 "우리가 이 만큼 먹고 산 것은 밤잠도 제대로 못 자며 일한 상인들 덕분 아니냐, 그런데 행정당국과 외지 자본이 이제 상인들을 죽이려 하고 있다"며 절박하게 하소연했다.

누가 이 아비, 어미들을 누추하다고 손가락질하는가

김용일 씨는 순천여고를 수석 입학한 큰딸이 현재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며 대견해 했다. 20년째 시장에서 2천원짜리 보리밥을 팔고 있는 샘식당 주인 서형문(67) 씨는 밤잠을 설치며 돈 벌어 자식들을 어엿한 공무원과 회사원으로 키워낸 아버지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중풍에 쓰러진 여든한 살 노모를 봉양하는 별량상회 이연수(57) 씨는 부모 모시는 것은 자식의 당연한 도리라고 못 박았다. 그의 아내는 부모를 모시는 게 무슨 자랑거리냐며 몇 가지 질문에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노점상 내동댁(67)은 아흔한 살 시아버지와 여든아홉 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노부모와 남편의 식사를 챙겨놓은 뒤밭에서 미나리를 뜯어 장에 나선 내동댁의 세상 즐거움은 시장 동료들과의 막걸리 추렴이다.

하루에 막걸리 다섯 병을 거뜬히 마시는 애주가이자 담배 3갑을 태우는 골초인 내동댁은 시장에서 효부로 칭찬이 자자하다. 하지만 딸 아들 일곱에 노부모를 봉양하면서 삭혀온 한숨이 어찌 없을 것인가. 그의 술추렴과 흡연은 넉넉한 품에 감춰진 한숨을 삭히는 위안거리다.

가난을 일으킨 시장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그 무엇도 버리지 않는다. 무 나부랭이도 시래기 두릅으로 엮는데 하물며 노부모를 모시는 일이야 물어 무엇할 것인가. 그럼에도 누가 누추한 이들의 위대한 삶을 손가락질할까? 그런 자가 있다면 그는 이 땅의 자식이 아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장바닥에서 요로콤 산다고 우릴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이여!"

도장굴댁(75) 자리는 역전철물점 주인(60·남금순)이 "짠한께 앉아서 먹고살라고 내준 자리"다.

일흔 아홉의 남편과 홀아비가 된 마흔 일곱의 아들을 돌보는 도장굴댁(75)은 "우리 집에는 보물단지와 애물단지가 셋 있다네. 허허, 허허..."라며 육자배기 흥타령을 꺼내놓는다. 장바닥에 홍합, 꼬막, 파래, 상추 등을 펼쳐놓고 담배 한 개비를 피워대는 도장굴 댁에게 말을 붙였다.

▲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청소를 하는 신발가게 아저씨
ⓒ 오마이뉴스 노순택
- 할머니 단골손님이 참 많네요.
"넘들보다 물건을 나수(많이) 중께로 오제. 글고 싹다 아는 사람인디 어째 쩍게 줘! 요것이 물 짚은 데서 나온 꼬막이여."

- 사람들한테 인심 많이 얻었겠네요.
"글면 뭐해, 돌아서면 남인디. 그냥 나 죽은 뒤 상여굿할 때 많이들 와!"

- 할머니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오래오래 사세요.
"암, 오래 살아야지. 가정 팔자가 애터져 죽것지만 몽둥이로 때려죽여도 절대 안 죽어. 자식들 손주들 입히고 갤치고 나 할 도린 다하고 죽어야지. 죽어도 자식들 피해주면 못쓴 것이여. 나는 여적껏 자식들 피해 요것도 안줬어. 그나저나 나 죽기 전에 저거(마흔 일곱 아들) 해결하고 죽어야 될 것인디 어쩔끄나 어쩔끄나... 인제 힘이 딸링께 허무해... "

- 할머니 새해 소망이 무엇이세요.
"아들 딸 잘되고 돈 많이 버는 것 이상 끝"

▲ 재래시장이라고는 하지만 역전 새벽시장은 벌거벋은 자태를 뽐내는 닭부터 '이동식 옷가게'까지 없는 것 빼고는 모두 있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도장굴댁의 장사 계산법은 독특하다. 할머니 말대로 본전은 '논 몇 마지기가 왔다갔다하는 복주머니'에 채우고 이익금은 신발 속에 넣는다. 도장굴댁 할머니는 보물단지와 애물단지로 애가 타는 집보다 '나 밥 먹고 나가 사는 장터에 나오면 속이 젤 후련하다'고 말한다.

노점 어머니들은 한끼 밥값도 아깝다. 집에서 나물과 식은 밥을 챙겨와 화톳불에 밥을 비며 해장 막걸리와 함께 속을 채운다.

그리고 설움과 흥이 섞인 장타령으로 살아온 세월의 고단함과 살아갈 날의 아득함을 까맣게 지운다.

▲ 순천 역전시장의 새벽풍경은 '역전소금집' 옥상에서 촬영한 것이다.
ⓒ 오마이뉴스 노순택
화톳불 비빕밤에 속을 채운 해창댁(65)은 얼큰한 목소리로 이렇게 큰 소리쳤다.

"우리들이 열심히 일하고 돈벌어 자식들 갤치고 뒷바라지해서 나라가 이만큼 된 것이여. 장바닥에서 요로콤 산다고 우릴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이여 알것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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