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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관광이란 단순히 보고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자연을 배려하고 배우는 태도로 자연을 만나는 여행이다. 월드컵을 맞아 환경운동연합에서는 광주의 문화와 자연을 체험할 수 있도록 생태관광 코스를 개발하였다.

이경희(광주환경운동연합 교육홍보팀장), 전고필(동강대 관광과 겸임교수), 김영선(숲 해설가) 씨가 머리를 맞대고 개발한 코스들 중 ‘의재로’코스를 12월 9일 내국인 대상으로 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참가했다.

광주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넘어봤을 이 길을 사람들은 잘 안다고 자부하겠지만, 의재의 예술정신, 차밭의 유래, 증심사의 유적들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진 못할 것이다.

'어디 볼 것이 있을까?'싶었지만, 이내 그 생각이 무색해졌다.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것들일수록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전고필 교수님의 말이 꼭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첫 코스는 1수원지와, 수원지 주변의 나무와 숲이었다. 10년을 광주에 살았지만 이 숲을 처음 보았다. 곧게 뻗어 있는 편백나무숲과 삼나무숲, 굴참나무, 소나무숲을 만났다.

김영선 씨는 “잎이 어떻게 생겼고, 키가 크거나 작다는 것으로 나무를 기억하면 금방 잊어버려요. 하나하나를 애정을 가지고 보면서 그 느낌을 기억해야 금방 잊어버리지 않아요”라며 숲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가르쳐주었다. 더불어 "보는 위치마다 숲도 다르게 보이니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했다.

편백 숲엔 다른 나무와 풀들이 거의 없었다. 왜 그럴까? ‘키가 커서 햇빛을 가리기 때문에’, 혹은 ‘자기가 클려고 양분을 다 섭취해버려서’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답은 편백이 독특한 향을 내뿜기 때문이었다. 사람들 입장에선 삼림욕을 하기 좋은 숲이지만, 자연의 눈으로 보면 건강하지 않은 숲이다. 다양한 나무가 자라지 못하므로….

굴참나무와 소나무가 주를 이룬 숲에는 다른 나무와 풀들도 많이 자라고 있었다. 이런 숲이 건강한 숲이란다. 사람들은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조용한 숲을 찾는데, 평화롭게만 보이는 숲에도 생존의 법칙은 어김없이 살아 있다.

우리로치면 젊은이에 해당하는 나이의 숲에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주로 자라는데, 결국은 잎이 넓은 참나무가 이겨 산을 점령하게 된다고 한다. 솔방울을 많이 단 소나무는 “나 너무 살기 힘들어!”라고 호소하고 있는 나무란다. 그러니까 종족을 퍼뜨리기 위해 기를 쓰고 방울을 만들어내는 건가보다.

1수원지는 1920년 일본인들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지금은 사유지이다. 현상황은 온천으로 개발하겠다는 회사와 환경단체가 맞서 있는 상태이다. 온천으로 개발할 만한 조건이 갖춰진 땅이 아닌데도 억지를 부리는 인간의 모습이 안쓰럽다. 갈수기라 물이 빠진 저수지바닥에 새 발자국이 촘촘히 나 있었다. 새가 물을 먹으러 걸어오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난다.

증심사로 오르는 길목에는 솟대가 서 있었고 끝에는 벼를 물고 있는 오리가 앉아 있었다. 하늘과 뭍과 물을 오갈 수 있기 때문에 조상들은 이 동물을 통해 신에게 사람의 소망을 전달하고, 비를 내려달라고 빌었다. 풍년을 기원한 것인지 입엔 벼이삭을 물고 있다.

오래된 절, 증심사로 향했다. 증심사는 많은 유물과 오래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절이다. 대웅전 처마에는 용머리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 녀석이 이 절을 불국정토로 끌고 간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니 조상들의 그 마음 씀에 입가에 웃음이 돌았다.

입구에는 범종이 있고, 종머리에는 용이 떡 앉아 있다. “이 용은 소리지르기 좋아하는 용인데, 고래를 무서워한답니다. 그래서 종을 치는 나무를 고래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더 크게 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라는 맛깔난 설명을 들으니 종이 더욱 친숙하게 느껴졌다. 이 외에도 삼층석탑, 부도 등의 유적이 있다.

주지스님은 "비구와 비구니는 성직자가 아니라, 나를 살피는 수행자들입니다"라 하신다. 스님은 상다리가 휘도록 차려놓는 음식, 후끈후끈할 만큼 보일러를 트는 모습들을 안타까워하셨다. 향내 좋은 구절초차까지 대접받고 절을 나왔다. 대웅전 처마 아래에 풍경이 달랑거린다. 잘 때도 눈을 뜨고 자는 물고기처럼 수도승들도 ‘항상 깨어 있으라’는 뜻이다.

증심사 뒤쪽으로 산길을 10여분 가면 삼애다원이라는 차밭이 있다. 오래 전부터 있었으며 해방 후에는 의재 선생께서 관리하였다. 그는 농업기술고등학교를 세웠고, 실습용으로 차밭을 가꾸어왔다. 여기서 나오는 ‘춘설차’는 광주의 특산품이다.

내려오는 길에 얼마 전 완공된 의재미술관을 들렀다. 의재의 예술정신을 기리고, 작품을 알리기 위해 지었고 한국건축대상을 받은 멋있는 건물이지만, 산과 그다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의재는 화가였을 뿐 아니라, 농업기술고등학교를 세워 후학을 양성했던, 실천적인 사람이었다. 나이가 든 후에는 의재산인, 의도인이라는 호를 써서, 나이에 따른 그림의 변화를 볼 수 있었다. 그가 후학을 양성하고, 여생을 보낸 춘설헌과, 전에는 무료로 차를 시음하는 공간이었던 관풍대를 들렀다.

춘설헌이란 ‘차꽃이 봄눈을 머금고 있는 모습’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바람을 바라보는 곳’, 이라는 관풍대도, 춘설헌도 어쩜 그렇게 이름을 멋있게 지었을까? 봄이 되면 여기엔 매화가 꽃을 피운다고 한다. 아름답겠다!

마지막으로 학운초등학교 석장승들을 만났다. 코가 베어져 있는 것을 보니 한 쪽은 할아버지다. 할머니와 동자장승도 있었다. “장승은 그 시대 사람들의 표정을 담고 있어요” 그리고, “액을 막고,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라는 설명 없이는 장승도 그저 지나쳐버릴 돌조각이었을게다. 이들도 본래 마을에 있던 것이었으나 도망치듯 쫓겨나 초등학교에 다시 터를 잡아 초라해보인다.

그저 보았던 것들이 전과는 다르게 보였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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