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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금요일 '자유·평등·연대를 위한 인권운동센터'가 여는 '함께하는 인권이야기 6'이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주민등록과 지문날인제도가 인권을 위협한다'라는 주제로 열렸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참여했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진다" 는 말을 믿는 편이다. 사람들이 동원된 행사는 겉보기에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왠지 썰렁하다. 하지만 열 명 남짓 참여한 이런 작은 행사들은 질문이 활발하게 오고 간다. '자율성'은 힘이 있는 법이다.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라는 이 도발적인 제목은 얼마 전 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작품 이름이다. 감독이 자신의 개인정보공개를 요청하러 관청들을 찾아다니면서 지문날인과 주민등록제의 문제를 느끼게 되어 이를 영상으로 담은 다큐멘터리다.

인권영화를 보고, 강좌를 들으면서 언젠가는 이루고 싶은 꿈 -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 -을 또 떠올려보았다.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상영 때도 관람객은 스무 명 남짓이었다. 상영이 끝난 후 지문날인반환청구서에 서명하긴 했지만 확신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주민등록번호를 아주 당연하게 여겨왔기에 의문을 제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지문날인에 대해서도 그랬다.

강의를 맡았던 윤현식 씨는 지문날인반대연대의 대표를 맡고 있다. 법학을 전공하던 그는 99년 말경 인터넷 상에 있던 지문날인반대 동호회에 가입자가 갈수록 느는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지문날인반대연대에 뛰어들었다. 그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무서운 건 세상을 달리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는 말을 던졌다.

중요한 것들은 우리에게 공개되어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예를 들자면, 주민등록번호의 조합체계나,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개인의 정보가 왜 기관들 사이에 연동되어 있는지, 몇 가지인지 등… 윤 씨도 그렇다고 한다. 국가의 정보를 개인이 보기는 어렵지만 개인의 정보를 국가가 보는 건 쉽고, 개인정보는 전산망을 통해 관청들끼리 연동되어 있다.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주민등록정보 항목 수는 그가 세어본 바에 의하면 143개라고 한다. 자격증여부에서 군 기록, 호적상의 기록까지… '왜 그 많은 정보가 필요한 것인가'. 도시계획이나 도로 개설, 취학아동이 몇 명인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구 수나 연령별 수와 같은 정보들이 필요하겠지만, 입양기록과 같은 호적상기록이나, 자격증 여부까지 알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것들은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은 별로 없지만 막상 주민등록증과 번호가 없으면 사는 데 지장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열 손가락 지문을 찍는데 특히 양손 엄지는 회전지문(엄지손가락을 돌려 전면지문을 찍는 것을 말한다)을 찍는다. 이것을 불쾌해하는 사람은 많이 있다. 나는 대부분의 나라가 지문을 요구하지 않으며 더군다나 회전지문을 요구하는 나라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90년대 전까지는 주민등록법의 목적에 관한 조항에 '주민의 편익'을 위해서라는 문구는 없었고 단지 '행정편의를 위해서'라는 문구만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전자주민카드로 바뀌기 전엔 주민등록법령에나 시행령에나 날인의무가 명시되어 있지 않았고, 단지 별지서식에 지문을 찍도록 란이 있었을 뿐이란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정보관리는 호적법과 인감증명법, 그리고 주민등록법 세 개가 서로 연동되면서 운행되고 있다. 거주지 이전 등을 관리하며, 호적법은 혈연관계를 근거로 하여, 자녀·결혼 여부등 개인의 가족사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정부는 주민의 편의와 행정상의 편의를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고, 지문을 찍도록 한다.

범죄자와 간첩을 잡고, 사고가 났을 때 신원확인을 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문으로 범인을 잡는 경우는 미미하고, 지문이 없는 경우에도 유류품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하물며 간첩을 지문으로 잡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행정상의 편의란 사실 '국민을 얼마나 편리하게 통제할 수 있는가'일지도 모른다.

그는 지문날인반대운동이 서울의, 혹은 메이저급의 시민단체에서 의제로 내걸어 운동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시민들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희망적이라고 보고 있다.

역시 자율의 힘이다.

그는 "사람들이 주민번호를 통해 얻는 작은 편리함은 좋아하지만 그것이 인권침해소지가 있다고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것을 안타까워했고 "많은 법률에서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그렇지만, 보호하는 법률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할때도 학력에서 취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적어야 한다. 기업체들에게 개인정보는 궁극적으로 돈이 된다. 회사들끼리 거래하는 경우도 있고.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선배가 "가장 무서운 건 자기가 자기를 검열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각자에게 부여된 주민등록번호와 등록되어 있는 자신의 지문 때문에 스스로도 자기 마음을 검열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솔직히, 모든 것이 의문스럽고 혼란스럽다. 과연 국가가 정말 개인을 검열하는지, 지문날인은 반대해야 할 것인지…

개인정보보호와 관련해서 최근에 두 가지 뉴스를 접했다. 첫번째, 경기도 한 도시에서 주민등록번호 등이 적힌 폐기문서를 위탁업체에게 맡겼는데, 폐기되지 않고 붕어빵봉지로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두번째는 "최근 지문날인반대연대에서 행정자치부에 열손가락 지문을 반환요청하였으나 행정자치부는 거부하였다"라는 소식이다.

외국은 어떠한가. 독일의 경우에는 개인식별번호만 부여되며 여기엔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지 않고, 이것을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개인의 정보가 관청 간에 연동되어 있지도 않다. 프랑스도 개인식별번호를 부여하고 우리처럼 주소를 옮길 때마다 전출입신고를 하는 것 같은 주거등록제도는 없다.

정부는 앞으로 아동지문도 수집할 계획이고 2003-5년엔 전국민의 지문을 전산화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전자주민건강카드도 도입될 것이다. 꼭 그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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