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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를 통해 올해 우리 집 <10대 뉴스>를 선정해 보았다. 각 언론사에서 매년 연말이면 국내외 <10대 뉴스>를 선정 발표하는 것과는 달리, 한 집안의 가장 자격으로 1년을 회고하면서 작고 소박하지만 한 해 <집안뉴스>를 정리하는 것도 1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정한 <10대 뉴스> 제목은 <한 해를 뒤돌아봄, 혹은 그 어리석고 송구스러움>.

수필 형식으로 쓴 이 글 속에는 "스무살 대학생 큰 아들이 담배 피우는 것을 발견하고 아버지로서 충격 받았으나, 인터넷을 통한 자신의 간곡한 당부의 글이 계기가 되어 곧바로 담배를 끊게 되어, 그 기념으로 아들이 좋아하는 숯불갈비를 사주었더니 만족해 하더라"는 뉴스가 첫 번째 <10대 뉴스>로 선정되었고, "문화대전 시상식장에 수상자 가족으로 함께 참석한 아내에게 선물 하나 사주지 못하고, 오히려 사진을 잘못 찍었다고 핀잔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 두번째 큰 뉴스로 선정되었다.

이밖에도 "20년을 주기로 펴내는 가문의 족보(대동보)에 온 가족의 이름이 등재된 것을 자축"하는 뉴스, "미 테러 사건 발생시 야간 숙직근무를 하면서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는 조카의 안부를 인터넷 메일로 확인하고 안도했다"는 뉴스도 올해 개인적인 큰 뉴스로 꼽았다.

그러나 필자는 <그저 아이들 건강하게 공부 잘하고 집안 화목했던 것 밖에는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는 어느 시골 아주머니의 소박하면서도 인간적인 한 해 회고담에 비교하면, 이런 <10대 뉴스> 선정은 어쩐지 화려하기만 한 듯하여 송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이 10대뉴스를 이미 홈페이지를 통해 읽은 어느 경찰관 아내는 <10대 뉴스> 중 "소주 잘 마시는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 <10대 뉴스>에 선정된 것을 보고 씁쓸했다면서, 이런 뉴스를 <개인 10대뉴스>에 선정한 것도 의미있고 공감이 가지만, 갑작스런 죽음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니 연말에 특히 음주 조심하라"는 당부의 글도 올렸다.

필자의 이 글은 홈페이지인 '청촌수필'과 대전문협 게시판에 게시되기도 했다. 다름은 올해 우리집 <10대 뉴스> 전문이다.



◈ 다음은 평범한 한 가장이 선정한 올해<10대 뉴스> 전문 ◈

한 해를 뒤 돌아 봄, 혹은 그 어리석고 송구스러움

평범한 한 가장의 2001 <10대 뉴스>

연로하신 어느 시인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 주말 조촐한 문학회의 송년모임에서였다. 그 말씀은 "과거"를 즐겨 이야기하며 술잔을 호기롭게 치켜드는 젊은 문인들에게 던지는, 80을 바라보는 원로다운 가르침이었다.

그 한 마디이면 평생을 '짧은 말 짓기'로 살아오신 시인으로서 굳이 해석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분은 혹여 건성으로 듣는 이가 있는가 싶어 이런 군더더기로 시인답지 않은 노파심을 드러냈다. "앞만 보고 살아도 모자랄 여생인데, 왜 뒤를 돌아다보느냐?"는 거였다. 그렇다. '뒤돌아봄은 정녕 시간낭비'라는 생각을 나도 평소 하고 있던 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열어보는 직장의 책상서랍도 퇴근할 때는 삐뚤게 놓인 연필 한 자루라도 반듯하게 놓고 잠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처럼 무언가 정리를 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 이런 시간에 이르러, 나를 돌아 보지 않음은 등짝이 까닭 없이 근질거리는 것이다.

아니, 이 엄청난 수량의 초침(秒針)들이 째각째각 숨가쁘게 포개지고 있는 속절 없는 세월의 무상함을 바라보면서,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달려 나간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일말의 무책임으로까지 느껴지기도 하여 마음이 썩 개운치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잠시, '과거 읽기는 미래를 여는 나침반'이라는 깊은 뜻도 있음을 동시에 상기하며 자신의 1년을 회고해 보는데, 나는 참으로 그릇이 작은 사람이다. 그리고 마음이 여린 사람이다. 보라! 한 해를 돌이켜 보면 가족들에게 또는 동료들에게 나름대로 떠벌이고 싶은 '꺼리'도 적잖이 있을 터이나, 이렇게 시시하고 보잘 것 없는 작은 이야기들을 한 가장의 <10대 뉴스>로 꼽고 있으니 참으로 딱도 하다.

스무 살 큰아들의 '담배 배우기'
우연히 발견하고 충격 받아/12. 1


그토록 굳게 믿었던 아들이 담배를 배운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배신자! 그러나 담배를 끊는다니… 고맙다 아들아!" 제목의 간곡한 당부의 글을 써서 오마이뉴스와 개인 홈페이지 등에 발표,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뜻하지 않은 위로와 격려 받다. 이 당부의 글이 계기가 되어 곧바로 '단연작심斷煙作心'을 한 아들에게 그 기념으로 녀석이 원하던 '숯불갈비'를 사주었더니, 크게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 다행으로 여겼다.


② '좋은 날' 아내에게 핀잔한 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려/10. 10

'문화대전'에서 졸고 "내 안에 스승을 찾아서"가 영예의 금상을 수상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수상자 가족으로 시상식장인 서울까지 새벽 밥 지어먹고 따라와 준 아내에게 선물 하나 사주지 못하고, 사진 잘못 찍었다고 - 카메라에 넣어 둔 지 오래된 필름이라, 헛 폼만 잡은 결과가 되었다 - 핀잔한 것이 두고두고 가슴에 걸린다.

③ 새로운 '족보[大同譜]'에 가족 모두의 이름 올라/12. 10

20년 주기로 펴내는 '경진보(庚辰譜: 올해 펴낸 윤씨 족보)'에 아내의 성명 삼자는 물론, 두 아들의 이름이 올랐고, 내 이름 자 밑에는 벼슬(?) 대신 '작가'라는 칭호와 함께 졸저 작품집명까지 덧붙여 주신 문중 어르신들의 정보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르신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더 좋은 작품을 써야하다는 각오를 새롭게 했으나, 과연 그럴만한 능력 발휘를 할 수 잇을까 의문이 들어 장차 후손들에게는 심히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20년 후, 또 다시 족보를 펴낼 때에는 내 이름은 사라져도 좋으니, 모쪼록 두 아들의 이름 자 밑에 이 아비가 이루지 못한 자랑스런 칭호와 업적들이 붙었으면 하는 장래 소망을 가져 보았다.


④ 직장의 문집 발간에 따른 직장가족들의 따뜻한 격려메일 잊을 수 없어/10. 21

공휴일도 반납한 채 '직장문집' 편집과 교정을 위하여 교통 불편한 출판사를 수 십여 차례 오가며, 때로는 원고뭉치를 집으로 싸들고 와 남 모르는 2중고를 겪다가 마침내 '아빠, 엄마 힘내세요'라는 제목의 문집을 한달 여만에 펴내자, 직장가족들이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면서 축하 전화와 함께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따뜻한 격려 말씀 주심에 다소 고생한 보람 느끼다.


⑤ 개인 홈에 둘째 아들의 삽화, 집안 형님들로부터 과분한 찬사 받아/8. 10

지난 여름, 모 예술잡지의 청탁으로 쓴 나의 원고에 둘째 아들(고2)이 삽화를 그려주어 지면 게재 및 개인 홈페이지 '청촌수필'(http://my.dreamwiz.com/ysw2350)에 올렸더니, 옥천의 큰 형님과 이웃에 사시는 누님이 아낌없는 찬사 전화 주시고, 동해의 셋째 형님은 둘째 아들에게 커서 큰 화가가 되라는 뜻으로 '운봉雲峰'이라는 아직 어울리지 않는 멋진 아호까지 지어 주시다.


⑥ 미 테러 발생 시 미국의 조카에게 인터넷 메일로 안부 확인하고 안도/9. 12

9.11 야간 숙직근무를 하다가 전 세계적으로 충격적인 대형 뉴스를 접하고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는 조카에게 급히 인터넷 안부 메일 발송하자, 곧바로 "걱정해 주셔서 고맙다"는 답장 메일을 보내주어 안도하다. 이같은 큰 사건 발생하면 국제전화 대신 인터넷 메일 교환도 매우 신속하고 뜻깊다는 사실을 새삼 경험.


⑦ 인터뷰 소식 및 신작발표 대전문협 인터넷 공간 활용 /11.3

방송 리포터가 직장에 찾아와 인터뷰한 내용이 문자로 지방문협 사이트에 게시되자, 석파(시인, 문학평론가)선생께서는 "좋은 내용을 보여 주어 고맙다."(다소 썰렁한 게시판을 긴 글로 채워 주어 고맙다는 뜻도 포함?)는 답글을 올려 주었고, 소설가 천강 선생께서는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짧지만 분에 넘치는 메시지를 게시판에 올려 주어 몸 둘 바를 몰랐다.


⑧ 소주 즐겨 마시던 친구의 죽음에 큰 충격 받아/10. 15

평소 자주 만나 허물 없이 술 잔 나누던 친구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고, 그 원인이 과도한 음주와 스트레스로 분석하면서, '술 조심'을 마음 속으로 수없이 외치며 다짐하다.

⑨ 생략
⑩ 생략

※ 개인 사정상 공개하기 어려운 이른 바 "대외비?" 성격의 두 가지 뉴스는 "2001 한 가장의 10대 뉴스"에 꼭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으나, 직장에서 다소 불편할 지도 모른다는 판단하에 부득이 비공개로 했음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굳이 알고 싶어하시는 분께는 염치 불구하고 알려 드림

여기까지 글을 써 오다가 문득 조금 전 운전 중에 우연히 라디오를 통해 들었던 어느 시골 아주머니의 소박한 말 한 마디가 뇌리를 스친다.

진행자가 "아주머니는 금년 한해를 돌이켜 보면서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하고 물으니까, "저는 기억에 남는 것이 별루 웁내요, 그저 아이들 건강하게 공부 잘하고, 집안 화목했던 것 밖에는 유…"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 아주머니의 소박하면서 인간미 넘치는 대답과 비교하면 나의 이와 같은 개인적인 "10대 뉴스"는 어쩐지 화려한 듯하여 심히 송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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