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패배하는 '정의의 역사',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후원회서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강한 나라' 역설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정치권이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여야 구분 없이 차기 대권을 꿈꾸는 주자들은 저마다의 경쟁력을 자랑하며,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정치인들이 자신을 홍보하는 방법은 물론 여러가지.

지식정보화시대를 맞아 인터넷을 이용한 멜진의 운영이 급부상하고는 있지만, 역시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효과적인 것은 책을 통한 것이다. 대선 주자들이 최근 앞다퉈 출판기념회를 갖고 자신의 저서를 알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 지지자와 독자 입장에서도 한 정치인의 숨겨진 모습까지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

물론, 정치인들의 저서는 가볍게는 일반 에세이에서부터 무겁게는 자신의 정책적 비젼을 다룬 책들까지 실로 다양하다. 내년 대선정국의 중심으로 다가서고 있는 대권주자들의 책을 모아 매주 소개한다.

한국의 '링컨'을 꿈꾸는가

민주당 노무현 고문은 지난 10일 힐튼호텔에서 가진 자신의 후원회에서 대선 경선 도전을 공식선언함과 동시에 <노무현이 만난 링컨> 출판 기념회를 가졌다.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강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는 표어를 내세운 노고문의 후원회는 3천여 명이 참석,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됐다.

노 고문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분열을 반대하고 통합을 위해 정치생명을 걸고 노력해 왔다"면서 "현재의 민주당이 정계개편을 통해 전국정당으로 거듭난 후, 대선 승리를 통해 본격적인 남북정국을 주도하는 새로운 집권여당이 출발 할 수 있을 것이다"고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지난 94년 에세이집 <여보, 나 좀 도와줘>를 발간하며,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숨김없이 밝혔던 노고문이 이번에 선택한 대상은 다름아닌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이다.

이에 대해 축사를 맡은 김병준 자치경영연구원 이사장은 "링컨이 통합정신과 겸손함을 바탕으로 강한 국가를 건설한 것처럼 노고문의 철학이 완성됐으면 좋겠다"며 기대를 표시하기도 했다.

왜 링컨인가?

노 고문이 이번에 발간한 <노무현이 만난 링컨>(학고재)은 자신의 인생 역정을 소개하거나, 정책 비전을 제시하는데 초점을 맞춘 다른 정치인들과의 그것과는 뚜렷한 차별성을 보여준다.

국내에선, 이미 지난 76년 당시 대학교수였던 김동길 전의원이 <링컨의 일생>(샘터)을 펴내 많은 사랑을 받아왔지만 정치인이 본격적으로 다룬 경우는 드물다. 더욱이 경선 출마 선언과 동시에 출판기념회를 가졌다는 점에서 이번 저서는 노고문의 전략이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그럼 그는 많고 많은 동서양의 쟁쟁한 정치인 중 하필이면 왜 '링컨'을 선택했을까. 서문에서 밝힌 다음 대목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정치에 입문한 뒤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어왔다. 이 때마다 나의 답은 생을 마칠 때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분단에 맞서며 지조를 지킨 김구 선생이었다. 누구나 존경하고 나 역시 그랬다"

그러면서도, 노 고문은 "김구 선생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은 왜 패배자 밖에 없는가?", "역사에서 올바른 뜻을 가진 사람은 왜 패배하게 되는가하는 의문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패배하는 정의의 역사'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는 것.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평가를 들으면서도, 92년 총선과 95년 부산시장 선거, 15·16대 총선에서 연이어 낙선했던 자신의 쓰디쓴 과거가 그 속에 투영되었기 때문일까. 그는 '아이들에게 옳은 길을 가라고 말하고 정의는 승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을 찾았고, 결국 찾았던 인물이 바로 링컨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결론적으로 노 고문은 "링컨에게서 훌륭한 역사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얻는다"며 "이상이 현실에 굴복하고 현실이 이상을 구박하는 시대를 극복하자면 김구 선생을 뛰어넘는 대안이 나와야 한다"고 발간 의의를 설명했다.

노 고문이 링컨을 새롭게 만난 것은 지난해 4·13, 선거개표일. 링컨이 남북전쟁의 승리를 목전에 두고 행한 한 취임사에서 남부를 적으로 몰아 세우지도 않고, '정의/불의' '선/악'과 같은 말로 남과 북을 가르지도 않으면서 '화해'와 '사랑'을 이야기 한 것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것.

그는 여기서 "링컨이 단지 좀 뛰어난 정치인이 아니라 고귀하고도 위대한 사상가이자 정치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여기에 링컨이 실패와 약점도 많았다는 점도 노고문의 마음을 잡아당겼을지 모른다.

스물 두 살 주의원 도전 실패를 시작으로 오랫동안 무수한 실패를 반복됐던 링컨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은 노 고문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됐음직하다. 여기에 민족이 남북과 동서로 분열돼 쟁투가 끊이지 않는 오늘의 시대는 링컨이 직면했던 시대와도 유사하다는 점에서 발간을 준비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노 고문은 이 책을 준비하면서 ▲정치에 대해 가볍게 논평하는 사람 ▲정치를 가볍게 생각하고 덤비는 사람 ▲정치를 대강 대강 하는 사람 ▲개혁이 잘 안 되고 있다고 비평하는 사람 ▲정치를 바르게 이해하고 정치를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들을 특히 유념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부족한 한계를 느끼면서도 자신의 관점을 링컨의 삶에 투사하며 스스로의 숙제를 풀어나갔다는 노 고문의 이번 저서는 보기에 따라 모든 대선 주자들을 비교할 수 있는 하나의 단초를 제공해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비교에 있어 노 고문은 가장 큰 책임을 떠안는 위치에 스스로가 섰다.

한해가 저물어 가는 추운 겨울, 미국 역대 대통령 1위로 평가받고 있는 '링컨'의 젊은 날과 역량, 시련과 영광을 다루고 있는 <노무현이 만난 링컨>을 읽으며 현재 나서고 있는 대선주자들을 하나 하나 비교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시대 지도자의 이상형을 제시한 것은 노 고문이지만, 그 해답이 반드시 동일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아있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민주신문 244호에도 실려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