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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의 정보유출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소비자들의 개인정보 유출 피해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정보유출이 최근 생보사 등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더욱 심각성을 띠고 있지만 관련 금융기관을 비롯한 보험감독원과 보험사들이 서로 책임전가 시키기에만 급급해 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실례로 대한생명, 삼성생명, 교보생명, SK생명 등 국내 보험사들이 가입자들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계약서의 약관을 이용, 개인신용정보의 활용안을 법규로 위장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빈축을 사고 있다.

특히 이같은 보험사들이 가입자들의 정보활용을 법적으로 합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피해가 발생했을 때에도 제대로 된 보상이나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관련 당국의 조치가 시급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보험사들은 보험감독원이 규정한 법규대로 이행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법규대로 했다는 입장이다.

보험감독원은 '강제법규'가 아닌 '선택형 법규'라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보험감독원도 보험사들의 이러한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 어떠한 규제·관리도 하지 않고 있는 입장이다. 보험감독원은 단지 법규에 따르면 약관규정이 강제적이지는 않지만 보험사 자체적인 판단으로 약관을 실행해야 하는 부분도 인정해야 한다며 책임을 회피할 뿐이다.

한편, 일선에서 활동하는 보험모집인들에 따르면 보험지점별 고객 한 명에 해당하는 ‘세대정보관리리스트’를 작성하도록 해 보험사들이 가입고객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한해 1조가 넘는 가입자 정보가 암암리에 거래되는 등 악용될 소지가 높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가입청약서는 정보유출동의서?

서울시 구로구 개봉동에 사는 박아무개(46) 씨는 얼마전 대한생명 암보험을 가입하려다가 이상한 문구를 읽고 멈칫했다. 보험계약청약서를 작성하면서 “안 읽어도 그만”이라며 설계사가 덮어두려는 ‘계약전 알릴 의무 사항’등의 뒷면을 읽다가 하단의 작은 박스에 기입된 내용을 읽었기 때문이다.

박씨가 읽은 보험계약청약서의 이상한 기입내용은 바로 ‘신용정보의 제공·활용에 대해 동의한다’는 서명란이었다. 박씨 자신이 이곳에 서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입된 내용에는 【이 계약과 관련 …중략… 다음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23조의 규정에 따라, 본인은 귀사가 다음의 신용정보를 다른 보험회사 및 보험관계단체에 제공하여 본인의 신용을 판단하기 위한 자료로서 활용하거나 또는 공공기관에서 정책자료로서 활용하도록 하는데는 동의합니다】라는 것으로, 보험가입자인 박씨 스스로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데 동의하겠다는 서약서인 셈이다.

충격을 받은 박씨는 보험은 가입하겠지만 이곳에는 서명할 의사가 없다고 거절했고 박씨는 며칠 뒤 이 보험회사로부터 보험가입에 대한 반송처리를 받았다.

박씨의 담당 보험모집인은 이와 관련 “신용정보 활용에 동의를 해야 보험계약을 성사시켜 줄 수 있다”며 “형식적인 것이니 염려할 것 없다”고 설명했다. 이 설계사는 또 “신용정보 제공 및 활용 동의서에 사인을 받아오지 못하면 대리점측이 보험가입을 허가해 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동의서 사인 강요에 대해 최근 당혹스러워 하는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안내문처럼 기재돼 있던 것이 자필 사인을 요구하면서 고객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어떨결에 보험모집인의 설명만 듣고 사인을 해버린 고객의 경우는 아예 이러한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한생명 강북지점의 한 보험모집인은 이에 대해“실적을 올리려면 고객이 민감해 하는 ‘동의서’내용은 상세히 알려주지 않고 가입자들에게 대충 둘러대고 사인을 받아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SK생명의 한 설계사도 이와 관련 “동의서에 계약자가 사인을 하는 것은 회사의 의무조항이니 설계사들도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보험계약을 했더라도 ‘신용정보 제공 및 활용에 대한 동의서’에 가입자의 서명을 받아오지 못하면 본사 계약심사팀에서 반송이 되기 때문에 실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가입청약계약서 약관에 함정이?

그렇다면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동의서는 강제조항일까?
보험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98년부터 보험계약청약서에 개인신용정보 활용에 대한 공시를 하기 시작했으며 지난해인 2000년 5월부터는 신용정보법 규정에 따라 계약자가 자필로 동의란에 서명을 하도록 약관을 변경시켰다.

생명보험사들의 주장과는 달리 보험감독원측은 이 신용정보 제공 및 활용에 대한 고객 동의서가 약관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선택형 조항’이라고 알렸다.

고객의 서명유무와 상관없이 보험가입은 언제나 가능하다는 것.
보험감독원측은 보험사들이 보험감독원측의 변경된 약관을 그대로 이행하는 것일뿐이라는 변명에 대해 말도 안된다는 입장이다.

보험감독원 상품1팀의 강길만 팀장은 “고객들이 동의서에 서명을 하는 것은 선택사항이며 보험사들은 이러한 동의서 양식을 강제로 고객에게 종용할 수 없다”며 “생명보험 약관에 나와 있는 ‘개인의 신용정보…활용 동의서’는 절대 강제조항이 아닌 만큼 고객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으며, 보험사는 고객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 팀장은 이어 “약관의 동의란에 고객이 서명을 하지 않은 경우, 보험사는 그 고객의 신용정보를 어떠한 방법이나 동기에 의해서라도 활용해서는 안된다”며 “동의란에 서명한 고객에 한해서 기관 등으로 고객의 신용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 국내의 보험사들 사이에서는 동의서와 보험계약의 관계는 불문율처럼 의무조항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에 대해 대부분의 보험사들은 동의서의 서명란은 약관상에 나타나 있는 의무적인 조항이라는 입장이다.

대한생명 측은 한결같이 “보험감독원이 약관을 개정했고 그 개정한 약관에 따를 뿐”이라는 것이다. SK생명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보험범죄 등을 사전에 예방하고, 가입자들의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한 합법적인 조치"라며 "청약서 계약 심사팀에서 동의서에 서명이 없을 경우 보험계약을 반송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보생명 관계자도 "보험감독원이 정해놓은 약관개정에 따라 서명을 해야만 보험가입이 가능하다"며 "우리도 보험감독원의 개정 약관으로 절차만 더 복잡해졌다"고 강조했다.

삼성생명은 이에 대해 "의무적인 조항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며 "고객이 거부할 경우에는 보험가입을 성립시킬 수 없다"며 보험감독원의 개정약관을 핑개댔다.

신용정보 활용동의서 … 보험사 회원정보 유출 은폐 방법으로 악용 가능성 커져

더욱이 이 동의서가 최근 불거지고 있는 정보유출 위험으로부터 보험사들의 범죄를 은폐시켜주는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보험사들이 보험감독원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가입자로부터 지나치게 의무적으로 동의서를 받아내려는 까닭을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보험모집인 노동조합측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고객의 정보를 약관이상으로 유출시키거나 활용하다가 적발되더라도 보험사들이 법적인 조치를 피해 보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을 것”이라고 의문을 제시했다.

교보 생명 보험모집인 최씨는 “계약자가 개인신상정보 활용 동의서에 서명한 서류만 있으면 보험사들이 이러한 규정을 악용해 고객의 정보를 활용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다”며 “계약자의 서명이 있으니 만약의 경우 유출이 생겨도 보험사들이 이에 대한 법적인 제재는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보험감독원도 '보험사로 책임전가'

보험감독원도 ‘신용정보에 관한 이용에 관한 법률’동의서의 취지에 대해 보험에 가입하려는 고객이 역선택을 하거나 보험범죄에 악용되거나 악용할 소지가 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험감독원은 보험사들의 강제적인 동의서 요구 행위에 대해 규제하거나 의무화 시킬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보험감독원 강 팀장은 이와 관련 “동의서 작성이 강제조항은 아니다”며 “하지만 보험사들이 고객의 개인 신용정보를 바탕으로 계약 인수를 결정하는 것은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보험감독원이 그것까지는 규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보험사 자체적으로 고객의 신용정보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이 동의서에 가입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

이에 대해 S보험을 가입한 한 고객은 “강제조항이 아닌데도 의무적으로 정보 활용에 동의를 시키는 보험사들의 횡포를 규제하기는 커녕 보험사들의 부정한 태도를 덮어주고 있다”며 “고객들은 보험사와 보험감독원 어느 쪽의 규정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보험모집인노동조합의 김미숙 교선부장은 “고객이 정보를 보호하려는 것은 기본적인 행동임에도 불구, 보험사들이 개개인의 신용을 강제적으로 활용하려는 수법을 보험감독원의 약관을 이용해 의무화시키고 있다”며 “보험감독원의 각 보험사별 행태에 대한 각별한 조치나 규제가 필요하다” 꼬집었다.

한편, 보험사들은 동의서 서명은 보험감독원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약관을 이행하는 것일뿐이라고만 설명하고 있다. 대한생명을 비롯한 SK생명, 삼성생명, 교보생명 관계자들은 “보험감독원이 지난해 5월 약관을 변경하면서 동의서 서명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만 해명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주신문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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