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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월 15일 안기부가 주도한 기자회견을 통해 대중에게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낸 김현희. 이날 기자회견을 계기로 '살인마' 김현희는 뭇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미의 여신'(?)으로 재탄생했다.
지난 11월 29일은 '대한항공(KAL) 858기 실종사건' 14주기였다.

매년 그 날이 올 때마다, KAL 858기 실종사건 유가족들이 반드시 악몽처럼 떠올리는 여인이 있다. '마유미'로도 불리는 김현희(40) 씨가 바로 그 주인공임은 물론이다.

김현희(이하 존칭 생략)는 '두 얼굴을 가진 묘한 여인'이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실종사건 유가족들처럼 그녀를 '희대의 악녀(惡女)'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녀를 단정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지닌 '고대의 미녀(美女)'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조갑제 <월간조선> 사장(편집장 겸임)이 후자의 대표적 인물인데, 실제로 그는 <월간조선> 2000년 10월호 권두언에서 '미녀 공작원' 김현희와 직접 만났던 '묘한 체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한 바 있다.

"저는 1989년 봄 김현희를 서울 시내 모처에서 5일간 연속 인터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사진보다 실물이 못하군'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저는 묘한 체험을 했습니다. 김현희의 얼굴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고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45도 각도로 바라본 김현희의 얼굴이 아름다웠습니다. 앗시리아의 부조 같은 단정하고 신비한 분위기."

나는 조갑제 사장의 증언을 들으면서, 특히 "45도 각도로 바라본 아름다운 김현희의 얼굴" "앗시리아의 부조 같은 단정하고 신비한 분위기" 등의 진술에서 문득 그리이스 신화의 어느 한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미(美)의 여신(女神)' 아프로디테가 신들의 향연이 열리고 있던 올림포스로 안내됐을 때의 바로 그 장면이거니와, 신화연구가인 유재원(한국외대 언어학과) 교수는 <그리스 신화의 세계>(현대문학) 1권에서 그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계절을 주관하는 호라이 여신들이 새 여신을 맞아 보석으로 장식한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곧바로 신들의 향연이 있는 올림포스로 안내했다. 제우스를 비롯한 모든 신들이 아프로디테의 요염한 자태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금발에 갈색 눈을 가진 여신의 피부는 상아빛으로 빛났다. 완벽한 조화를 이룬 육체는 아름다움의 표본이었다. 바라보는 이들은 모두 숨을 죽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막연한 그리움과 노곤한 기대감과 욕망이 온몸에 스며든다."

그리스 신화의 그 장면에서 1988년 1월 15일 안기부가 주관한 기자회견장에 안내된 '미모의 테러리스트' 김현희의 얼굴에 넋을 잃은 대한민국 대다수의 성인 남성들을 연상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상상일까.

그러나 오죽하면 '반공투사' 조갑제 사장마저 '항공기 폭탄 테러'를 규탄하기 위해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그 본연의 임무를 잠시 잊고 폭파의 원흉인 테러리스트의 얼굴에서 '앗시리아의 미녀'를 떠올렸겠는가.

때로는 '신화'가 '현실'이 된다. 안기부의 발표대로라면 항공기 폭탄 테러로 무고한 115명의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을 앗아간 '살인마'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전격적인 특별사면을 받고 '여자'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김현희 수기 <이제 여자로 살고 싶어요> 참조)

그리고 1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 사건의 진위를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김현희 신화'는 정녕 '거품'이었던 말인가.

이와 관련,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탄생을 둘러싼 다음과 같은 사연은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시사적이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가 흘린 피가 망망한 바다 위에 떨어져 거품이 되었고, 그 거품 속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신이 태어났으니, 그녀가 바로 아프로디테였던 것이다.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기 전에 우선 'KAL 858기 실종사건'(일명 마유미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 간단한 설명을 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 대통령 선거일 하루 전인 1987년 11월 15일 김포공항으로 압송되던 당시의 김현희. 그녀의 극적인 등장은 대통령 선거에서 '북한의 의지와는 정반대로' 여당 후보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1987년 11월 29일 여의도에서 한 야당 대선후보가 대규모 유세를 하고 있던 그 시간, 승무원과 승객 115명을 태운 바그다드발 서울행 KAL 858기가 미얀마(당시 버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며칠 후 바레인을 탈출하려던 폭파범 용의자 중 한 명인 김현희가 체포되었으며, 대선 하루 전인 12월 15일 김포공항을 통해 압송된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당국은 가족의 시신만이라도 찾아달라는 유가족들의 몸부림과 울부짖음을 뒤로 한 채 비행기 잔해와 블랙박스 추적을 열흘만에 중단하고 만다. 그리고 수사를 주도한 안기부는 이듬해인 1988년 1월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의 김정일이 88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북한 공작원 김현희에게 친필지령을 내려 KAL 858기를 폭파시킨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우리는 '마유미 사건'의 개요를 살펴보면서, 이 사건이 지난 번에 다뤘던 '수지김 사건'과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거니와, 두 사건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이 5가지로 정리된다.

(1) 6월항쟁과 대통령 선거가 있던 격동의 시기인 1987년에 발생했다. 수지김 사건은 상반기인 1월에, 마유미 사건은 후반기인 11월에 일어나면서 나란히 여론의 주목을 끌었다.

(2) 사건의 주인공이 여자, 그 중에서도 '미모의 여자'였다. 언론에 의해 수지김은 '미모의 여간첩', 김현희는 '미모의 테러리스트'로 불리어졌다.

(3) 정국의 흐름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수지김 사건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마유미 사건은 대통령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4) 각종 조작과 의혹의 논란 대상이 되었다. 다만 수지김 사건이 최근 조작의 진상이 드러난 '과거완료형'이라면, 마유미 사건은 아직도 논란이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5) (정부가 아닌) 개인의 진상규명을 위한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수지김 사건에 대해서는 이정훈 <신동아> 기자가 7년 동안, 마유미 사건에 대해서는 전직 감사원 직원 현준희 씨가 14년 동안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왔다.

그렇다면 김현희는 어떤 인물인가. 1988년 1월 15일 안기부 발표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김현희(하치야 마유미)는 1962년 1월 27일 평양에서 북한 외교관 김원석의 세 딸 중 장녀로 태어났다. 당시 김원석의 직책은 앙골라 주재 북한무역대표부 수산대표. 김현희의 당시 직책은 북한 노동당 조사부 직원으로, 김옥화(북한), 마유미(일본), 백취혜(중국) 등의 가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발표됐다.

김현희는 인민학교 시절 <딸의 심정> 등 두 편의 영화에 아역배우로 출연했으며, 평양중신중 1학년 때인 1972년 11월 2일 평양을 방문한 남북조절위원회 남한대표 장기영에게 화환을 증정한 화동(花童)이었다고 발표됐다.

김현희는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던 중 8일만에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모든 범죄사실을 자백하고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특출난 미모에다 때론 수줍은 듯 때론 울먹이면서 증언해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115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살인마'는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슈퍼스타'로 부상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건 발생 2년 4개월만인 1990년 3월 대법원이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 살인 등 6개 항의 무시무시한 죄목을 적용해 사형선고를 확정했지만 그것은 의례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김현희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한 달만에 특별사면을 받은 것이다.

그후 김현희는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라는 3권짜리 수기를 써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으며, 한 남성과 결혼해서 자식까지 낳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안기부 발표 당시 김현희의 인적사항은 곧바로 진위 논란에 빠지고 말았다. 우선 김현희의 아버지가 앙골라 주재 외교관이라고 했지만, 당시 일본 <아사히신문>이 곧바로 확인한 결과 그런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도 앙골라에는 북한 무역대표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수산대표라는 직책도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사건의 중대성과 민감성에 어울리지 않게 이밖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의혹이 제기됐지만, 국내외에서 나온 이러한 의혹 제기는 정부 당국과 국내 언론에 의해 철저히 묵살당했다.

그렇다면 KAL 858기 실종사건의 유가족들의 심정과 주장은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이들은 현재까지도 '유족'이라는 말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실종된 가족들의 시신 하나, 유품 하나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폭파'의 물증이 없으니 '실종'된 것이고, 가족들이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유족'이라는 말은 쓸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한맺힌 주장이다.

'수지김 사건'에서도 그 가족들이 힘없는 서민이었기에 일방적 희생을 강요당했듯이, 이 사건의 희생자들도 공교롭게 승무원을 제외하곤 대다수가 중동에서 근무하다 귀국하던 노동자들이었다. 그 동안 이들 희생자 가족들의 억장은 무너졌지만, 반공이념이 지배하던 시대적 상황에서 침묵을 강요당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가족들이 최근 11월 23일 천주교인권위원회(위원장 김형태 변호사)를 통해 기자회견을 갖고, '대한항공 858기 실종사건에 대한 7대 의혹'을 제기하면서 정부와 국회 차원의 재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KAL기 실종사건 가족들이 이제야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에 기자회견장에 나온 가족들은 안기부의 방해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그들은 심지어 "안기부 직원들에게 멱살을 잡히고 욕설을 들어가며 일체의 집단행동을 방해받았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가족들은 "최근 검찰의 조사로 내막이 드러난 '여간첩 수지김 사건'을 보면서 더욱 의혹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최근 김현희의 진위를 둘러싼 <내외저널>과 <월간조선>의 공방 등 언론보도를 보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많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무엇보다 김현희의 진술 말고는 이렇다할 물증이 없고, 의혹 제기에 대해 안기부의 해명이나 대응도 궁색하기 짝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역 세모꼴(▽)의 '칼귀'가 선명한 기자회견 당시의 김현희(좌). 조선일보 1988년 3월 5일자에 소개된 '꽃다발을 든 소녀'의 귓볼이 두터운 둥근 모양(○)의 귀(우)와 대조적이다. 1988년 당시 김현희는 이 사진의 소녀가 자신이 분명하다면서 "어떻게 이 사진을 찾았냐"고 묻기도 했다.

김현희의 진위를 둘러싼 논란은 수없이 많지만, 여기선 <내외저널>과 <월간조선> 공방에서 핵심이 된 '김현희의 귀 모양을 둘러싼 논쟁'만 잠시 짚고 넘어가자.

1988년 당시 안기부는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증거로 김현희의 어릴 적 사진을 몇 장 내놓았다. 1972년 11월 2일 평양 남북조절위원회 환영행사 때 당시 11살이던 김현희가 남측의 장기영 대표에게 꽃을 전달하는 사진이었다. 때마침 일본 공산당 기관지 <적기> 하기와라 기자가 찍었다는 '꽃다발을 든 소녀' 사진도 공개됐다.

안기부의 발표에 따르면, 김현희는 "이 사진의 소녀는 내 모습이 분명하다"면서 "어떻게 이 사진을 구했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나 안기부, 하기와라, 김현희가 모두 김현희가 맞다며 지목했던 사진 속의 '꽃다발을 든 소녀'는 김현희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북한의 여성이 있었다. 정희선이라는 여성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사람의 얼굴에서 귀는 성장해도 거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사진을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한 결과 사진 속의 소녀들은 귓불이 도톰하지만,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김현희는 귓불이 거의 없는 속칭 '칼귀'라는 것이었다. 컴퓨터 분석 결과에서도 사진 속의 두 소녀는 정희선에 가깝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최근 <월간조선>과 하기와라 기자가 당시의 그 소녀는 김현희가 아니고 사실은 그 옆의 소녀가 김현희라는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김현희는 당시의 주장을 전혀 바꾼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데, '제3자'들이 새로운 알리바이를 제시하고 있는 기이한 형국이다.

그렇다면 왜 안기부는 이런 오래된 사진까지, 그것도 나중에 진위 논란에 빠진 사진까지 동원하여 김현희를 북한 공작원이라고 주장해야 했었던 것일까.

사실 이러한 의혹 제기는 1987년 당시부터 있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목소리는 기성 언론에 의해 철저히 묵살 당했고, 그런 주장을 제기한 사람들은 공안 당국에 의해 '불순분자'로 몰려 감옥으로 끌려가야 했다.

당시 그런 의혹을 모아 <의혹 속의 KAL기 폭파사건>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가 구속된 도서출판 힘 대표 김연인 씨가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당시에는 북한과 총련 등이 사건을 부인하는 각종 증거를 제시했고, 일본 등 해외 언론도 이 사건에 너무나 많은 의혹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당시는 안기부 발표만이 진실로 통하던 시절이었다. 김연인 씨가 냈던 책도 그런 다양한 주장을 소개한 것에 불과했지만, 공안당국이 그대로 놔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제기됐던 의혹과 현재 제기되고 있는 의혹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최근에 제기된 의혹에는 앞에서도 거론했듯이 한 전직 공무원의 끈질긴 추적으로 축적된 자료와 정보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준희 씨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1996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인 장학로 비리사건과 관련된 효산콘도 불법허가 감사은폐를 폭로했다가 해직된 인물이다. 그는 1987년 당시 우연히 일본의 감사원이라고 할 수 있는 회계검사원에서 연수중이었는데, 안기부 발표를 뒤집는 수많은 의혹이 일본에서 보도되고 있는 것을 보고 '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라면 박스 두 개 분량의 자료를 축적해가면서 계속 이 사건을 추적해 왔다.

KAL 858기 실종사건 가족들이 제기한 '7대 의혹'에도 현준희 씨의 추적 결과가 반영돼 있음은 물론인데, 이에 대한 짤막한 보도(11월 23일자 오마이뉴스 '김현희 증언 말고 다른 증거 내놔라' 참조)가 기왕에 있었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자.

이제 다시 첫 대목의 '그리스 신화'로 돌아가자.

▲우라노스가 흘린 피가 바다에 떨어져 거품이 되었고, 그 거품에서 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태어났다. 가리비 조개로부터 나오는 아프로디테. 출전: <그리스 신화의 세계>에서 인용.
운명을 관장하는 모이라이 여신들은 아프로디테에게 '아름다움과 사랑의 직분'과 '항해하는 배와 선원들을 수호하는 직분'을 맡긴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가 흘린 '핏물'이 망망한 바다 위에 떨어져 생성된 '거품'이 그녀의 '실체'였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제우스 등 올림포스의 신들마저 넋을 잃은 여신이 아닌가. 아프로디테는 이렇게 화려하게 올림포스에 등장했다.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겐 수많은 연인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명이 '전쟁과 폭력의 신' 아레스이다. 그리고 아프로디테는 아레스와 불륜을 저질러 네 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포보스(공포), 데이모스(걱정), 하르모니아(조화), 에로스(사랑)가 바로 그들이다.


이번에는 다시 '현실'로 돌아올 차례다.

안기부의 발표와 김현희의 자백에 따르면, 1987년 11월 29일 KAL 858기는 '하늘'에서 폭파되었고, 115명의 무고한 생명은 '핏물'이 되어 '바다'로 떨어졌다.

1988년 1월 15일 '정국의 계절'을 결정하던 안기부에 의해 기자회견장으로 안내된 '폭파범' 김현희는 대한민국 대다수 남성들의 동정심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슈퍼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정국의 운명'을 관장하는 언론은 김현희를 앗시리아 부조를 닮은 단정하고 신비한 '미와 사랑의 여인'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그녀에게 북한 공산집단과 김정일 도당의 폭력성을 증거하는 '반공 수호신의 직분'을 부여했다.


그렇다면 김현희 사건, 즉 KAL 858기 실종사건에서 7000만 겨레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공포와 걱정인가? 조화와 사랑인가?

그것을 결정할 권한만은 온전히 7000만 겨레의 성원인 우리 모두에게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가 11월 30일 CBS라디오 <변상욱의 시사터치>에 출연해서 방송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정리해 올린 것입니다. <변상욱의 시사터치>는 표준 FM 98.1 MHz / AM 837 KHz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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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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