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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민주당 <당 발전과 쇄신을 위한 워크숍>의 조별 분임토의에 쇄신파 신기남 의원은 두툼한 봉투를 들고 토론에 임했다. 그리고 종합토론에서 신 의원은 한 여론조사 결과를 거론하며 "과도기가 길면 안된다. 1월 전당대회를 열어 정상적 지도체제를 갖추고 그 후에 후보문제를 논의하자. 몇가지 상징적 조치를 확실히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워크숍을 통해 3월 전당대회 우세로 정리된 당 대세론과는 확연히 다른 입장을 보여준 그가 근거로 제시한<새시대전략연구소>의 여론조사 보고서는 과연 무슨 내용을 담고 있을까. 민주당의 외곽 연구단체로 평가받고 있는 연구소의 리서치 보고서를 긴급 입수했다.

<민주당의 변화 및 대선후보 선출제도 등에 대한 여론조사 보고서>라는 긴 제목의 이 문건은 표지 포함 모두 9매로 구성돼 있다.
여론조사는 새시대전략연구소(이사장 천용택 의원, 소장 이재정 의원)가 ARS 전화설문조사를 통해 지난 11월 18일부터 19일까지 양일간 전국 20세 이상 성인남녀(제주 제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95%신뢰수준에 오차범위는 ±3.1%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 결과보고서는 지난주 초 79명의 회원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민주당 쇄신 활동이 특대위와 당 내외부에 의해서만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 총재직 사퇴 및 민주당 영향력 변화 인식 ▲인적쇄신 정도 및 민주당 우선 해결 문제 ▲대선후보 선출제도 개선 및 예비선거제도 도입 인식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시기 ▲민주적 정당 및 지지정당 등 중요사안을 담은 이번 보고서의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일부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정치적인 의도로 조사한 것은 절대 아니다.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인 만큼 공정하게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와 객관적인 분석 내용을 회원들에게 보냈을 뿐이다"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이어 그는 "ARS 여론조사는 신속하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경험적으로 볼 때 다른 여론조사와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며 "국민 여론을 좀 더 분명히 알기 위해서라도 쇄신 대책을 논의함과 동시에 좀 더 공정한 여론기관에 의뢰해 의견을 수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음은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가 담고 있는 각 항목들에 대한 조사 결과와 분석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에 대해

김 대통령의 당 총재직 사퇴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선 잘했다는 응답이 46.1%로 가장 높았으며, 그저 그렇다(28.4%), 잘못한 일이다(10.0%)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50대 이상에서 55.4%가 '잘했다'고 응답해 연령이 높을수록 총재직 사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역별로는 '잘했다'는 응답이 서울에서 55.1%로 가장 높았으며, '잘못했다'는 응답은 광주·전라(17.8%)와 대구·경북(14.4%)이 평균보다 높았다.

한편, 총재직 사퇴 이후 김 대통령의 민주당 영향력을 묻는 응답에는 '오히려 강화될 것'(14.1%)과 그대로일 것(30.4%)이라는 응답이 '떨어질 것'(36.7%)과 '완전히 잃을 것'(6.6%)이라는 응답과 엇비슷하게 조사됐다.

지지정당별로는 한나라당 지지자의 48.8%가 '영향력이 강화, 유지될 것'으로 평균보다 높게 응답한 반면, 민주당 지지자의 47.2%는 '영향력이 떨어지거나 잃을 것'이라고 답했다.

여권 인적쇄신에 대한 평가

박지원 전 청와대 수석의 사직과 민주당 최고위원 사퇴 및 주요당직자 교체 단행으로 인적쇄신이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긍정 평가가 25.6%에 그친 것에 반해 '그저그렇다'(39.4%)와 부족한 편(16.8%), 전혀 안이루어짐(8.5%) 등 부정적인 평가가 64.7%로 나타났다.

민주당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당내문제는?

응답자들은 민주당이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당내 문제로 지도체제 정비(34.8%)와 민주적 당운영 방법 마련(26.3%)을 꼽았다. 반면 대선후보 선출시기 결정과 후보 선출방법 개선을 지적한 응답자는 각각 11.0%와 10.9%에 그쳤다. 특히, 민주당 지지자들은 지도체제 정비(40.4%)와 후보선출시기 결정(16.0%)을 평균보다 높게 꼽았으며 민주적 당운영 방안마련(21.5%)은 평균보다 낮게 나왔다.

대통령 후보 선출방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대선후보 선출제도 개선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에 대해선 '동의하는 편'(31.7%), '매우 동의'(29.7%), 보통이다(19.5%), 동의안함(7.4%), 전혀 동의 안함(3.0%) 순으로 나타나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매우 깊게 인식하고 있는 것(동의 61.7%)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20대(66.7%)와 30대(68.7%), 학력별로는 대학이상(69.0%), 직업별로는 사무전문직(71.2%), 지역별로는 서울(67.8%)에서 동의하는 비율이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다.

예비선거제도 도입 문제

예비선거제도 도입에 대해선 '좋은 제도지만 신중을 기해 도입'(50.9%)해야 한다는 응답과 '좋은 제도이므로 내년 대선부터 실시'(22.3%)해야 한다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으며, '문제점이 많아 도입반대'라는 응답자는 전체의 16.7%에 그쳤다.

연령이 낮을수록 도입의견이 높은 반면 연령이 높을수록 도입을 반대하거나 응답을 유보하는 비율이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다. 한편 한나라당 지지자는 '도입반대'(19.8%) 의견이 평균보다 약간 높은 반면 민주당 지지자는 '내년부터 실시'(28.3%)하자는 의견이 평균보다 높게 조사됐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시기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시기에 대해선 응답자의 49.9%가 '지방선거 이후'에 동감한 반면, '지방선거 이전'은 28.7%로 조사됐다. 반면 민주당 우선해결 문제로 '후보선출시기 결정'을 꼽은 응답자는 지방선거 이전(54.5%)을 더욱 선호했으며 '후보선출제도 개선'을 꼽은 응답자는 지방선거 이후(62.5%)를 평균 이상으로 선호했다. 민주당 지지자의 '지방선거 이전 후보선출' 응답율도 36.1%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민주적 운영 정도

한나라당과 민주당 중 어느 정당이 보다 더 민주적으로 당을 운영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한나라당(28.3%), 민주당(21.4%), 별 차이 없음(44.3%)으로 조사됐다. 연령별로는 20대에서 민주당을 보다 민주적이라고 응답한 반면, 30대 이상에선 한나라당이 보다 민주적이라고 응답했다. 또 한나라당 지지자의 67.1%가 한나라당을 꼽았으며 민주당 지지의 56.2%가 민주당을 보다 민주적이라고 답했다.

직업별로는 학생층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직업군에서 한나라당이 보다 민주적이라고 응답했다. 지역별로는 서울과 경기·인천에선 비슷한 비율을 보였고 영남과 대전·충청지역에선 한나라당이, 광주·전라에서는 민주당이 보다 민주적이라고 답했다.

평소 지지하는 정당은?

지지정당을 묻는 질문엔 한나라당(32.2%), 민주당(27.8%), 자민련(2.9%), 민주노동당(2.3%) 순으로 조사됐다. 연령별로 보면 20대는 민주당을, 40대 이상에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았으며, 30대에선 비슷한 비율을 보였다.

결국 <새시대전략연구소>의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개선해야 할 문제와 방법론, 대선후보 선출시기 등에 있어 당과 일반 국민들간에 일정부분 간극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특대위의 행보와 결정에 따라 쇄신파의 반발이 일정 부분 '명분'을 내세울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민주적 운영 정도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다.
이 결과에 대해 여권의 한 관계자는 "정당지지도를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고 의미를 축소하면서도, "국민들의 시선이 한나라당보다는 집권 여당에 쏠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감시의 눈길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비선라인·게이트 등 연이어 터지고 있는 언론 보도도 여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높혔을 것이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도 "당내 민주화가 유권자들의 중요한 기준이 되기엔 이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정서다"며 "이번 쇄신 과정이 더할 수 없이 중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고 말했다.

개혁 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지난 민주화 운동 시기를 거치며 DJ·YS의 당 장악력은 거의 절대적인 것이었다. 과거에는 몰랐지만, 시대가 변한 만큼 국민들의 눈이 그만큼 깼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다"면서 "총재직 사퇴 이후 민주당의 변화가 그만큼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기에 따라서는 민주적 정당이라는 고지를 먼저 선점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적어도 우리는 경선다운 경선을 치렀고 비주류가 계속해 존재해 왔다. 지난 공천서 일정 부분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DJ중심의 독식보다는 상황이 낫다고 본다"면서 "그러나, 이번 민주당 쇄신 양상과 폭은 주의깊게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제도개선과 당 발전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지난 30일, 민주당 특대위가 국회헌정기념관에서 주최한 토론회 자리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장훈 중앙대 교수는 "개혁을 위한 내부적 결속을 어떻게 유지하는가, 그리고 개혁논의가 다수 유권자들의 기대를 어떻게 수용하는가에 따라 정당민주화의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 우리 민주당은 쇄신하고 뭉쳐서 이길 수 있습니다"라는 조세형 특대위원장의 각오도 바로 이런 조건들을 잘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볼 때 당 쇄신에 있어 국민 전체의 정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덧붙이는 글 | 2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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