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흘째 아침이 되었다. 간밤에는 처음으로 깊은 잠을 잤다. 뭉쳤던 다리 근육도 풀려 걷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아침 108 배 때는 땀을 많이 흘렸다.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 순간 그들을 향해 가볍게 내뱉은 말들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부끄러움을 모면하려고 나는 더 빨리 바닥으로 몸을 던졌다. 질투와 욕심이 번개처럼 일어났을 때 내가 다른 사람을 향해 모질게 던진 마음의 돌팔매를 생각했다. 나 자신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때 떠오른 얼굴들은 살아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윤곽만 남은 얼굴이었다. 갖가지 마음의 화신인 것 같기도 했다. 몸통이나 옷차림, 목소리나 얼굴색과 연관되지 않는 얼굴들은 허깨비처럼 나를 따라 다니며 괴롭혔다.

108 배가 끝나자 지도법사가 뭔가를 말했는 것 같은 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른 도반들을 따라나섰다. 어둠 속에서 앞 도반의 등을 바라보며 그냥 걸었다. '처억칙 처억칙' 고무신 끄는 소리가 새벽 정적을 깨었다. 약수터 앞에서 줄을 서서 물을 마셨고, 앞 도반이 화장실로 가길래 따라가서 소변을 보았다. 그리고 계속 걸어갔다. 전나무 숲 위로 새벽달이 보였다. 그제서야 우리가 걸어가는 방향을 알 것 같았다. 우리는 산문을 지나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새벽산책'을 나온 것이었다.

주차장이 나타났다. 타고 온 차들이 새벽 이슬에 젖어 있었다. 참선 중 창문 깨어진 내 차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 기억났다. 차는 아무 탈이 없었다. 차들은 그 주인이 다시 세속으로 돌아갈 순간을 기다리며 머리 숙인 말처럼 서 있었다. 주차장을 지나 팔각정으로 갔다. 팔각정을 올라가니 지도법사가 한 모퉁이에 앉아 있었다. 우리도 그 주위로 흩어져 앉았다. 정적이 감돌았다. 지도법사의 어깨가 축 늘어진 것 같았다. 어떤 비원을 간직한 것일까. 그 어깨 너머 아득한 아래 쪽에서 불빛 몇 개가 반짝였다. 나흘만에 세속은 반짝이는 몇 개의 불빛으로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세속은 그 사이 멀리도 물러나 있었다.

청년시절 나는 술에 취하면 불빛 쪽을 향해 달려가곤 했다. 먼 곳에서 명멸하는 가로등불이나 한적한 도로로 달려가는 자동차 헤트라이트는 으레 나를 그쪽으로 돌진하게 만들었다. 불빛은 저곳의 존재를 알려주어 저곳으로의 탈주를 부추겼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나에게 전날 밤 골목 어귀 판잣집의 불켜진 방을 훔쳐본 기억이 되살아 났다. 단칸방에는 가난에 고단해진 가족들이 뒤엉켜 자고 있었다. 그들은 여기저기 널브려져 있는 오래된 가재도구와 다를 바 없었다. 그때 나를 소름끼치게 하여 도망치게 한 것은 거세게 불규칙적으로 들려오던 숨소리였다. 지난 밤의 광경은 이렇게 환상인 양 아스라이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불빛을 훔치려는 사람처럼
문이 아닌 창 쪽으로 가서 집 안을
들여다 본다

남편과 큰 아이는 장기를 두고 있고
접시에 남은 과일은 아직 물기 마르지 않았고
주전자에서 김이 오르고 있다
작은 아이는 자는가

나는 한 마리 나방인 듯이
창문에 부대껴 서서 생각한다
그 익숙한 살림살이들의 낯섦에 대하여
부르면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의
아득함에 대하여
내가 없는 세상의 온기 또는 평화에 대하여
(나희덕, '불켜진 창' 중에서)

내 아이와 아내, 부모형제들은 다만 한때 나와 가까운 곳에 있으며 내 마음의 표적이 되었다는 까닭으로 자주 떠올랐겠지만, 어느새 나는 그들을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었지 그들과 더불어 있지 않았다. 나는 내가 그 구성원이 된 가족과 세속의 모습을 더 이상 떠올리지 않았다. 나와 일상의 관계를 가지지 않는 아이와 아내는, 그리고 부모 형제들은 나와의 그 거리를 어떤 것으로 느낄 것인가. 내가 없는 저 세상에도 나의 체취와 온기가 남아 있을까.

새벽 불빛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가 가족과 세속으로부터 며칠간 멀어져 있었음을 비로소 자각할 수 있었다. 속세를 심정적으로도 떠나는 것이 한 순간의 일이듯 떠나온 속세를 잊는 것도 순식간에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았다. 스님들의 초연함이 이루어지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나의 생각은 비약하기 시작했다. 내가 세속의 한 구성원이었다는 것도 한 순간의 착각인 것은 아니었던가. 세속 속의 내가 가상이었다면 나의 존재도 가상이었던 것이 아닐까.

내일 저녁이면 나는 몇 개의 희미한 불빛으로만 존재하는 저 세상 속을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그곳의 일들이 가상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내일이면 이곳의 일들도 꿈결처럼 느껴질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남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재직하고 있으며, <<젖병을 든 아빠, 아이와 함께 크는 이야기>>(돌베개), <<한국야담연구>>(돌베개), <<조선시대 일화 연구>>(태학사), <<보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세상>>(보림), <<말이 없으면 닭을 타고 가지>>(학고재) 등을 썼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