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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은 65세, 공무원은 57세, 기성회노동자는 45세, 아~ 열받는다."

서울시립대 본관 7층 총장실 앞 좁은 복도에는 붉은 띠를 동여맨 대학노조 노동자들의 힘찬 구호소리가 메아리친다. 이동 시립대 총장은 일찌감치 자리를 비웠고 비서관들만이 남아서 노조원들의 우렁찬 함성소리에 갇혀있다.

전국대학노동조합 김용백 위원장은 비서관에게 "1년 3개월이나 끌어온 단체교섭을 책임지고 해라. 이제는 명확한 답변을 달라"며 항의 질의서를 전달한다. "다들 고생하시는데 저희들도…." 애써 난감한 표정을 짓는 비서관은 연락 드리겠다며 김용백 위원장으로부터 명함 한 장을 건네받을 뿐이다.

돌아서 나가는 길에 보인 총장실 미닫이 정문의 한 쪽은 아예 열리지도 않게 고정되어있고 빗장마저 칠 수 있게 되어 있다. 분을 삭이지 못한 한 노동자는 '총장실'이라고 적힌 문패를 가리키며 "요 밑에 도망자라고 써야겠구만"하고 일갈한다.

빗장마저 구비된 주인 없는 총장실

지난 28일 서울시립대 본관 앞에서 열린 시립대, 고려대, 덕성여대 대학 노조원 공동집회의 총장실 항의방문은 이렇게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서울시립대 기성회계노조는 지난 1년 6개월이 넘게 단체협약 체결을 거부하는 학교측의 불성실한 대응에 맞서 파업을 단행했다. 오늘로 파업 37일째를 맞은 시립대 대학본관 앞에는 평소와는 달리 300여명의 노동자들이 운집해 평소와는 달리 활기를 띠고 있었다. 덩달아 민중가요도 더 우렁차게 울려 퍼졌고 치켜든 주먹은 차가운 겨울의 냉기를 가르고 있었다. 한 연사의 발언이 학교 전체를 가득 메웠다.

"타 대학의 절반 이상이 공무원 기능직 대비 90%이상의 임금을 받고 있는데 반해 시립대 기성회계노조는 83%의 임금밖에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직원에게 57세에서 60세의 정년을 보장하는 타 대학에 비해 우리 시립대 사무관리직 노동자들은 45세의 정년밖에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노동조건을 강요하는 이 학교가 진정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공립 서울시립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특히 총장의 여비서직원의 정년이 32세까지만 보장받고 있다는 사실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준다. 시립대 총여학생회 선거 자료집에서 이 학교 부지부장 서성민 씨는 "시설관리직의 정년이 57세인데 반해 19명의 여성 행정사무관리직의 정년이 45세인 것은 남녀고용평등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나이 많은 여성은 쓰기에 부담스럽다'는 것이 어떻게 21세기를 맞은 대학의 학교측에서 할 수 있는 말인가"라고 밝히며 "이것은 전체 여성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공정치 못한 시립대 기성회계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한 규탄 발언이 이어진 후 시립대 대학노조 위원장 김길용 씨의 삭발식이 열렸다. '이미 37일 동안 파업을 끌어 왔지만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는 결의를 드러내며 그의 머리카락은 바람결에 날아갔다. 을씨년스러운 날씨 속에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강고한 투쟁의지'를 천명하고 집회대오로 걸어오는 그를 노조원들이 하나 둘 다가가 뜨겁게 껴안아 주었다.

덕성여대 학내민주화, 개교 100주년 미래 없는 고려대, 사립보다 못한 시립대

대학 내에서의 이러한 파업의 물결은 덕성여대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지난 번 교육부(정부종합청사) 앞을 대신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 소공원에서 학생들과 함께 삭발을 한 덕성여대 노조위원장 문성은 씨의 머리는 그날 파릇파릇 머리카락이 조금씩 자라 있었다. 그는 아직도 덕성여대의 학내 민주화가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지난 10월 26일 관선이사가 4명 파견되었지만 아직 이사회를 결성하지 못해 학교를 정상화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체교섭에 학교측은 의지도 없고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잔류이사 3명을 몰아내고 학원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49일 째 파업을 하고 있고 학생들은 지금 본관을 점거하고 천막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고려대의 사정 또한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15일 째 파업을 벌이고 있는 고려대 한재호 지부장은 '임금과 징계위원회, 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서창 캠퍼스의 노조 전임자 문제가 파업의 쟁점'이라고 말했다.

"2001년에는 5%의 임금인상을 하기로 임금협약서를 체결했음에도 실제론 5% 미만밖에 인상하지 않았다. 명백히 학교가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라고 학교측을 비난한 그는 "의결 정족수를 3/4에서 과반수로 일방적으로 개정한 것에 대해서도 정실과 파행인사를 막기 위해선 원상회복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정규직 250여명을 명예퇴직 시킨 후 전원 계약직으로 뽑았던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학교측의 경영정책을 비난했다. 서창 캠퍼스 의료원이 독립채산제로 바뀜에 따라 기존 대학 노조원을 대표할 노조전임자 1명을 요구한 문제도 한 지부장은 빼놓지 않았다.

모든 공식 집회를 마치고 들어간 본관 안 로비에는 넓게 스티로폼을 대고 장판을 씌워 만든 자리가 깔려 있었고 옆에는 작은 텐트가 쳐져 있었다. 로비 안쪽 안내 데스크 뒤에는 가스통에 각종 야채와 먹을거리들, 한 집 살림이 차려져 있었다.

그 곳에서 만난 전국대학노조 김용백 위원장은 오늘 연대투쟁의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건 연대하기 위한 그런 투쟁이 아니라 모두의 생존권이 걸린 대학노조 차원의 단일투쟁이다"는 점을 먼저 강조했다. 그는 "시립대의 파업이 장기화 될 것이다"고 예상했다.

"총장은 집회하고 나면 끝나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 우리는 학교측의 생각을 안다. 오래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 대학노조 차원에서 시립대의 파업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생각이다. 생계를 책임지고 보전해서 대학노조 전체 싸움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는 "학교측이 지금의 파업투쟁을 작년 학생들의 점거농성처럼 보는 것 같다"며 "우리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인 만큼 승리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학교측의 안일한 자세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시립대 노조 김길용 위원장이 한 번도 총장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총장이 단체교섭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수 차례의 면담 요청을 거부하고 기성회 이사회에 책임을 떠넘기고 방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삭발까지 한 오늘 투쟁에 대해 김 위원장은 "이제 시작이라는 각오로 싸울 겁니다. 1년 6개월간의 학교측의 모습은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말이 안되고 창피스럽습니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어제 14차 교섭에서 올해 인금인상 9.5%와 50세 정년을 학교측이 내놓았는데요, 이건 파업하기 전보다 못한 것입니다. 앞으로 이런 교섭은 안 할 겁니다"고 말해 신뢰할 수 없는 학교측의 대응 자세를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이동 총장은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하면 얼마 못 갈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번 파업은 장기화 될 겁니다"라고 말하며 "총 32명의 기성회계노조원 중 현재 20명이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고 밝혔다.

"쌀과 먹을 것은 걱정 마십시오, 투쟁"

고려대, 덕성여대 노조원들이 떠나 휑하니 한산해진 오후 5시쯤. 오늘의 집회를 평가하기 위해 본관 로비에 모인 시립대 노조원들 앞에서 김용백 대학노조 위원장은 김길용 시립대 지부장에게 투쟁기금을 전달했다.

전달식에서 김용백 위원장은 "쌀과 먹을 것은 걱정 말라"는 격려의 말을 전해 노조원들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았다.

지금 세 곳의 학교는 파업중이다. 그러나 학사일정은 그대로 진행 중이어서 학교의 한 주체라는 대학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전면에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은 선거에 바쁘고 교섭담당 교직원들은 멀게만 느껴질 뿐이다. 학교 곳곳에 붙여진 파업딱지는 갈기갈기 찢어져 있어 장기화를 예고하는 파업이 외롭고 힘든 싸움일 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 시립대에 남은 몇몇 노조원들은 본관을 떠나는 길에 배가 고프다며 뼈있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어이 이동 막걸리나 먹자", "아냐 이동 갈비나 먹으러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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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꿈을 해몽한다" 작가 김훈은 "언어의 순결은 사실에 바탕한 진술과 의견에 바탕한 진술을 구별하고 사실을 묻는 질문과 의견을 질문을 구별하는 데 있다. 언어의 순결은 민주적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말은 질펀하게 넘쳐났고 삶의 하중을 통과하지 않은 웃자란 말들이 바람처럼 이리저리 불어갔다"고 부끄럽게 회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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