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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고질병 중 하나를 꼽으라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게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달콤한 말로 유혹도 해 보고, 최근에는 각 방송사마다 책 관련 프로그램을 마련해 극성을 떨어보지만 이 또한 그리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듯 하다. 점점 현대인에게 책이란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 돼 가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을 극복코자 얼마 전부터 엠비씨는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는 한 권의 책을 선정해 거리로 나가 이 책을 읽은 사람을 찾고, 문제를 내, 맞춘 이에게 가지고 갈 수 있는 만큼의 책을 선물로 준다.

하지만 몇 주째 이어진 방송이건만 읽었다고 나서는 이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궁여지책으로 개중에 책을 많이 읽은 이에게 선물을 주거나 즉석에서 다 읽은 사람에게 그 영광을 안겨줄 뿐. 그러나 그들이 내미는 책은 솔직히 생경해 '저런 책이 있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이 책은 바로 김중미 작가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괭이부리말은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빈민가이다. 원래 땅보다 갯벌이 더 많은 바닷가였던 이곳은 근처에 '고양이 섬'이라는 작은 섬이 있었다. 점차 세월이 흘러 이 섬은 없어졌지만 이 때문에 '괭이부리말'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셈이다. 하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마을 이름의 기원을 잘 모른다. 하루하루 삶에 찌들려 '이런 돈도 안 되는 일'에는 관심을 두기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농촌에서 살다 일자리를 잃거나, 오갈 곳 없어 정착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록 각자가 온 이유는 다를지언정 가난하고 힘없다는 공통점을 지녀 서로 형제처럼 지내게 하는 끈이 돼 준다.

쌍둥이 숙자와 숙희도 이 마을의 일원이다. 15분 차이로 언니 동생이 됐지만 성격이며, 행동거지는 한치도 닮은 구석이 없다. 아버지의 술버릇 때문에 집 나간 어머니가 다시 왔을 때 기쁜 마음에 얼싸 안고 싶었지만 귀찮게 하면 엄마가 다시 나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언니 숙자와 달리, 동생 숙희는 마냥 좋아라 엄마에게 매달린다.

또 언제나 집안 일은 도맡아 하던 숙자는 운동회 때도 부채춤을 추려면 필요한 한복을 형편상 구하지 못해 이런저런 핑계로 그만 뒀건만, 숙희는 집안 일이라면 치를 떨고 운동회 때는 응원 단장을 하겠다면서 팔을 걷어 부치는 등 여러 모로 두 자매를 판이하게 달랐다.

이런 숙희와 숙자의 친구 동준이. 동준이의 유일한 식구는 형 동수다. 아이엠에프 이후 돈 벌러 간 아버지는 한번 나가면 집에 들어 올 생각을 하지 않고, 어머니는 집 나간 지 오래다. 게다가 형 동수는 학교는 그만 둔 채 본드를 흡입하거나, 나쁜 무리들과 어울려 지내기 일쑤다.

아이들에게 '유도 아저씨'로 통하는 영호도 이 마을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는 얼마 전 유일한 살붙이인 어머니와 이별했다. 이제야 겨우 변변하게 돈을 벌며 살 수 있겠다 싶었건만 어머니가 떠나 그 부푼 꿈은 온데간데 없다. 하지만 어느 날 공사장을 지나다 본드에 취한 동수와 명환이를 발견, 이들이 그다지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이날부터 동수, 동준, 명환, 영호는 새로운 가정을 일궜다.

때로는 동수가 경찰서에 가 없는 돈에 변호사비까지 마련하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하등의 관계도 없는 이들을 먹여 살릴 걱정으로 한시도 쉴 틈 없는 영호. 하지만 영호는 이렇게 같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다.

본드에 빠져 헤어날 줄 몰랐던 동수는 점차로 영호가 하는 행동들이 간섭이 아니라 관심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는 다시 학교를 다니고 직장도 얻어 가며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또 늘 자신 없어 하던 명환이도 이제는 제빵업을 배워 새삶을 꾸려가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다. 또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더 힘들어졌지만 숙자와 숙희는 동생을 얻어 이제 어엿한 언니로 자란다.

한편 숙자의 담임 겸 영호의 동창인 명희는 어릴 적 괭이부리말에서 부끄러워 이 곳은 혐오의 대상이며, 수치 그 자체였다. 하지만 우연한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이 삶에 합류하게 된다. 처음의 서먹함은 온데 없고 나중에는 숫제 숙자네 다락방에서 살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일말의 희망도 보이지 않던 그들의 삶에 시나브로 서로 간의 사랑을 꽃피워 가며 괭이부리말에도 나름의 희망의 싹을 틔운다. 자신의 꿈인 기술자가 되기 위해 첫 출근을 한 동수가 불러 젖뜨린 "봄, 봄, 봄, 봄, 봄이 왔어요"라는 노랫말처럼.

싸늘하기만 한, 한없이 상처만 안고 있던 이 곳 괭이부리말 아이들에게 이제는 봄의 햇살처럼 따스함이 찾아 올 것이라고 암시하듯 말이다.

연탄재가 이제는 추억거리로 변하고 끼니, 걱정을 잊은 지 오래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괭이부리말 사람들의 삶은 참으로 생경할 뿐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고 더불어 사는 삶을 지켜내는 그 모습은 언제 어디서든 낯설지 않았음 좋겠다. 이를 위해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때 소중한 이에게 이 책을 선물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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