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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에서 테러사건이 발생한 지도 2개월이 다 되어간다. 우려했던 미국의 보복공격이 시작되었고, 많은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테러의 배후로 이슬람권의 급진조직들이 지목되면서, 왜 그들이 이런 경악할 사건을 일으켰는지, 더 나아가 이슬람인들이 가진 감정의 응어리가 무엇인지 알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으며, 나아가 이슬람문명을 새롭게 이해보자는 시도들이 생기고 있는데 비록 늦게나마 이는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잘 알려진 바대로 이슬람교는 비잔틴제국과 현재 이란지역인 사산조 페르시아의 세력다툼이 한창이던 6세기 후반 마호메트에 의해 창시되었다.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자식이 없어 몸종인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았고,그 후 본부인인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았다. 훗날 유대인의 조상이 된 이삭의 가문에서는 예수가 태어나고, 아랍인의 조상이 된 이스마엘가문에서 마호메트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랍인과 이슬람인은 혈연적으로 같은 '셈족'이며 아브라함을 공동조상으로 한다

따라서, 이슬람교의 '알라'신은 영어로 'GOD'이며 기독교의 하나님과 동일하다. 그리고, 코란에는 성서의 노아의 방주이야기, 아담과 이브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이야기는 물론이고 성모마리아와 예수의 이야기도 나온다.

이러한 혈연적 동질성으로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유대인과 아랍인은 매우 사이가 좋았으며, 현재에도 이슬람권에서는 이슬람신자와 같은 신을 믿는 기독교도나 유대교도와의 결혼도 허용된다. 로마제국 이후 해외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가장 차별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질을 꽃피운 시기가 이슬람문명권이었던 현재 스페인의 무어제국이었으니, 가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만하다.

마호메트의 창시 이후 이슬람교는 빠른 속도로 인근지역으로 확장되었는데 이는 불교나 기독교 등 세계종교나 문명역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는-흔히 얘기되고, 심지어는 교과서에까지 잘못 나와 있는 것처럼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이 말은 코란에 나오지도 않는 말이며,이슬람인들은 이런 말이 있는지도 모른다)이란 말로 표현되는 무력과는 거리가 멀고-국가와 민족,혈연이나 지연을 초월한 형제애(기독교가 사랑의 종교이고, 불교가 자비의 종교라면 이슬람교는 형재애의 종교라 할 만하다)와 신과 인간 사이에 어떠한 매개자도 인정하지 않는 인간평등사상(이슬람에는 성직자가 없고, 예배때에도 모든 신자가 동등하게 일렬로 순서대로 예배당에서 예배하고 나온다), 노예해방, 그리고 이교도에 대한 관용과 베품(유목민 고유의 순박한 품성과 코란에서 가르치는 종교적 선행이 결합한 결과이며 초기 군사정복시에도 피정복지에 대하여 비잔틴제국 등 다른 나라보다 적은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피정복지 주민들로부터 호감을 산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등의 이슬람사상에 독특한 관용성때문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이슬람의 사상들은 현재에도 그대로 내려오고 있으며, 대다수의 이슬람국민들은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영화'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천국의 아이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착하고 소박하게 살고 있다. 또 한 가지 이슬람의 지역전파에 공헌한 사상은 남녀평등사상이다. 흔히 이슬람은 남녀차별이 횡행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예를 들어 일부다처제는 지정학적 위치상 전쟁이나 분쟁이 많았던 지역에서 과부와 고아를 보호하는 수단이었고, 또한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이었다. 현재 이슬람권에서는 95%가 일부일처이며, 일부다처일지라도 남편은 아내들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하고, 만약 동등하지 않을 경우 아내는 합법적으로 이혼을 제기할 수 있다.

그리고 흔히 차도르로 상징되는 여성억압이란 것도 서구식의 관점일 따름이며, 이것도 역시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장옷이나 영국 빅토리아제국시기에서 보이는 신체억압적인 복장 등과 같은 여성억압의 수단이 아니었고, 여성에 대한 배려와 보호관념에서 나온 전통문화였다.

프랑스에 사는 이슬람 여성들이 학교에 다닐 때 교칙을 어겨가면서 차도르입기운동을 벌이고, 현재 이란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여성운동 지도자들이 차도르입기를 비롯한 이슬람의 전통사상에 입각한 여군운동을 전개하는 데서 보듯이 이슬람 여권의 문제도 단순히 서구의 기준대로 파악해서는 곤란하다.

이슬람문명은 중세의 역사에서 중국과 함꼐 세계 최고 수준의 문명이었다.

당시 선진적인 이슬람문명은 인접 문명권으로 급속히 확산되어갔다. 중세 서양십자군이 이슬람원정에 최후로 패할 무렵 유럽의 스콜라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한손에 칼, 한손에 코란'이란 말로 이슬람의 세력확대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였다.

서구 이외의 기타문명에 대한 연구가 매우 부실하고, 특히 인도와 이슬람은 그 정도가 심하여 알려진 것이 매우 적은 상태이지만, 의료분야의 몇몇 예를 들어보도록 하자.

8세기 경에 바그다드에 최초의 개인소유약국이 생겼고 의약분업이 실시되었는데 이는 서유럽보다 4,5세기 정도 앞선 것이다.

병원시스템의 경우도 매우 훌륭해서, 입원실은 이슬람 특유의 우아한 구조와 장식이 되어 있고, 병원부속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었다. 게다가 열병, 설사병, 눈병(아랍은 더운 지방이어서 눈병이 많았고, 안과학이 특히 발달했다), 외상, 부인병 등 각각의 질병을 위한 병동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회복기 환자를 위한 구역이 따로 있는 등 병원이 매우 선진적이었다.

그리고, 환자가 퇴원할 때는 다시 일을 시작할 만큼 몸이 회복될 때까지 생활하는데 필요한 금을 주는 등 인도주의적인 의료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질병에 대한 연구수준-여기 서술하지는 않겠지만-도 매우 높았고, 초기 질병관에서 초자연적인 질병관이 있기는 하였으나, 서구와 같이 '천형' 등의 신이 내린 형벌이란 개념은 없었으므로, 중세유럽의 '마녀사냥'과 같은 환자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하는 문화가 아니었다.

그리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도적인 대우 등도 의학사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이슬람문화에 내재해 있는 인본주의를 느낄 수 있을 것같다.

주지하다시피 근대 이후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서구문명은 아랍을 앞서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세력 전도의 상징적인 예를 우리는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침략에서 찾을 수 있는데. 당시 신 병기로 무장한 나폴레옹군은 이집트의 군대를 순식간에 무찔렀다.

이 과정은 중국문명의 경우도 유사한데, 중국은 19세기 말 아편전쟁에서 영국군에 힘없이 무너졌다. 이후 세계사는 서구중심으로 체계가 성립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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