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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간에 걸친 국정감사가 끝났다. 그러나 '이용호 게이트'를 둘러싼 무수한 의혹과 공방 속에 정작 정책감사를 충실히 준비했던 의원들의 질의는 쉽게 묻힐 수밖에 없었다. 국감이 열리기 전 열린 한 토론회 자리에서 "아무리 정책감사를 열심히 준비해도, 언론이 잘 다루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한나라당 관계자의 우려는 결국 현실로 나타났다. 정기국회를 맞아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정성을 쏟아 내놓은 정책자료집의 주요 내용들을 소개한다.

"군사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사람이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의정활동을 벌이며 얻어 가지게 된 제한적인 정보와 지식만으로 한·미 군사동맹체제를 다루려다 보니 정밀한 대안은커녕 그저 가늠해 보는 것만으로도 힘겨웠습니다"

지난 9월, 국회 국방위 소속 민주당 장영달 의원이 아홉 번째로 펴낸 정책보고서의 인사말 중 일부다.

그 자신의 고백처럼 그의 과거 경력과 군사, 국방분야는 거의 무관해 보인다. 70년대 초반부터 민주화 운동을 펼치며, 대표적인 재야인사로 불리웠던 장 의원은 대학과 대학원에서도 행정학과 법학을 전공했었다.

그런 그가 최근 경실련이 발표한 2000년도 의정활동 평가에서 국방위 최우수 의원으로 선정됐다는 것은 다소 이례적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5대 국회 후반기부터 4년간 줄곧 국방위에 몸담았던 장의원의 의정활동을 찬찬히 뜯어보면, 이번 경실련의 평가에 고개가 끄떡여질 수밖에 없다는 게 상임위 관계자의 평가다.

같은 당 천용택 의원과 함께 국회내 연구모임인 '21세기동북아평화포럼'의 대표를 맡고 있는 장의원이 지난 9월 초순 발간한 <21세기 한·미 군사동맹 체제의 발전방향과 정책과제>라는 긴 제목의 정책자료집도 그의 의정활동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료집에서 그는 ▲병역의무의 공평성을 이룩하는 문제 ▲갈라진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는 문제 ▲자주국방의 원칙을 확립하는 일 등 3가지를 우리 국방의 큰 숙제로 꼽고 있다. 이 중 세 번째 문제에 관한 고민과 연구 작업들이 모아져 나온 것이 바로 이번 자료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장의원이 '21세기를 맞아 한미군사동맹체제의 미래지향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 이에 대해 그는 "지난 반세기 동안 두 나라의 군사동맹체제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재발 방지와 경제발전, 그리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조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동시에 국가의 자주성 제약과 군사주권에 부정적인 역할을 해 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면서 "대내외적 여건의 변화가 두 나라 동맹체제의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의 경제력과 국방력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고, 6·15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형성된 한반도 주변의 평화기류도 새로운 동맹관계를 필요로 한다는 것.

이와 함께 그는 근래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는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 매향리 미군사격장 문제, 용산 기지의 독극물 무단방류, SOFA 개정, 미군기지 문제 등 주한미군에 대한 국민의 규탄 목소리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분석했다.

이런 인식 속에서 나온 이번 <21세기…> 자료집은 크게 ▲한국의 국방정책과 군사동맹 ▲한·미 군사동맹체제의 형성과 발전 ▲한·미 군사동맹체제의 현황 ▲한·미 군사동맹체제의 변화요인 ▲한·미 군사동맹체제의 발전방향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관련 조약과 협정문 등도 수록하고 있다.

물론 이 자료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21세기 한·미 군사동맹체제의 발전 방향'에 대한 6가지 정책과제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그 제안들의 간략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호혜·평등한 개정

1953년 10월 1일 체결되고 이듬해 11월 정식으로 발효된 이래 양국 군사동맹체제의 법적 근간이었던 한·미 상호방위 조약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개정된 적이 없다. 이는 그만큼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 측면이 없지 않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향후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군사분야를 핵심으로 하면서도 정치, 외교, 경제, 외교, 안보 등 제반영역을 모두 아우르는 포괄적인 안보협력조약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둘째, 한·미 동맹관계는 미국을 시니어 파트너(senior partner), 한국을 주니어 파트너(junior partner)로 하고 있다. 두 나라를 수평적 관계의 동반자가 아닌 수직적 관계의 동반자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

셋째, 현재의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제5조에서 "본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고 하여 조약의 효력을 영구화하고 있다. 따라서 조약의 유효기간을 확정하여 갱신 및 개정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 한·미 안보협의회의의 정치·외교적 기능 강화

한·미 안보협의회의는 양국 동맹체제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큼 양국간의 안보협의기구이다. 그러나, 군사 업무 위주의 기능은 두나라 사이의 수직적 관계가 재생산될 것이기 때문에 정치·외교적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모색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선 안보협의회의의 대표성을 국방부 장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

■ 한·미 연합방위체제의 구조조정

한국과 미국은 1978년 11월 7일 한·미 연합군사령부를 창설함으로써 본격적인 연합방위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현행 방위체제는 몇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현재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한·미 연합군사령관에 이양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는 여러 가지 면에서 모순되는 측면을 갖는다.

한·미 양국 각자가 자국 군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가운데 상호협조를 하는 '병립형 전략협조체제'나 '한·미 연합전력 세분화·차별화 방안' 등 다양한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과 확대

주한미군은 1954년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체결에 따라 한국에 주둔한 이래 한·미 군사동맹관계의 상징으로서 북한의 대남 무력도발을 억제하는 실체적 전력으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점차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가 돼 왔던 전제가 사라지고 있다.

주한 미군의 지위와 역할은 과도기적 상황에선 대북 무력도발 억제에 둬야 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유지와 동북아 지역안정으로 변경, 확대돼야 한다. 우선 1단계로 주한미군의 정치적 성격을 '미국의 대한 안보공약 의지'라는 차원에서 강화시킨 뒤, 주한미군을 다국적 평화유지군으로 개편해 나가야 할 것이다.

■ 방위비 분담 요구에 대한 적극적 대응

양국 동맹관계가 수평적, 상호보완적 관계로 발전되어 나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지금과 마찬가지로 부담할 것은 부담하겠다는 능동적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양국의 수혜 정도와 한국의 경제적 능력 범위 내에서 결정돼야 한다.

만일 미국이 과도한 방위비 분담을 요구할 때는 주한미군의 부분적 규모 조정을 제안하는 등 그 압력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의 개정

최근 수년동안 우리 사회에선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같은 소파 개정운동은 그동안 주한미군이 누려왔던 일방적이고 특수한 지위가 국민들의 민족적 자존심을 자극한 데 따른 것으로 SOFA가 상호 호혜적이고 평등한 수준으로 개정돼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타결돼 올 4월 발효된 SOFA 개정안은 한국측의 입장을 상당히 반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흡한 사항들이 많다. 미군 피의자 신병 인도시점 등 일본이나 독일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양국 군사동맹체제의 미래 지향적 발전을 위해서는 상호 평등한 수준으로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장의원은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철저히 금기시됐던 한·미 군사동맹체제 자체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 자료집 발간의 의미가 있다"며 "양국 군사동맹체제의 발전 방향과 정책과제들을 나름대로 제시했다는 측면보다는, 이제부터 합리적인 논의를 시작하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달라"고 결론을 대신한 글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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