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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된 조국이 섧고 설워 울다 지쳐 목이 터진 두견이의 쏟은 순결한 피가 꽃잎을 물들였네. 살을 에이는 이역만리 눈보라 속 빗발치는 탄환 뚫고 승리로써 넘은 항일 전사를 반겨 맞는 진달래 꽃아......"

이 노래의 제목은 '진달래 마음'이고, 가사를 지으셨던 분은 93년 북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선생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학 다닐 때 참 좋아했던 노래였습니다. 가사가 아름다워 지금까지 제대로 외우고 있는 몇 안되는 노래들 중 하나이기에 요즘도 가끔 흥얼거리곤 합니다.

'0.75평 지상에서 가장 작은 내 방 하나'를 엊그제 읽게 되었습니다. '비전향 장기수 7인의 유예된 삶'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이데올로기라는 고문도구로 철저하게 짓밟혀 상처받은 비전향 장기수 선생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고 있습니다.

45년 10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한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 할아버지, 시집 '독방'으로 유명한 이종 선생... 그리고 신인영, 김석형, 조창손, 송경선, 이종환 선생이 기나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이유는 대한민국으로 '전향'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삐딱하게 말하면 '나는 북녘사람'이라고 고집을 피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우리나라를 하나로 보았지 이쪽저쪽으로 나누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읽은 다음 어떤 힘이 그분들로 하여금 눈앞에 죽음과 같은 고통을 두고 신념을 지키게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몸도 제대로 뉘일 수 없는 0.75평 독방에서 저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국 전 포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글이나 생각만으로는 비전향 장기수 선생들이 겪어야 했던 극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신념을 지킨다'라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는 단순히 '약속', '정직' 등 지극히 단편적인 단어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신념까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는 것도 그 이유가 될 것입니다.

당연히 저에게 사상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수십 년씩 감옥에 갇혀 지내야 한다는 것은 생각의 범위를 벗어난 일입니다. 하지만 갇혀 있는 43년 동안 굳건히 자신의 신념을 지킨 이종환 선생의 글에서 결국 저는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탄압받는 사람들의 처지에서 보면 거대한 폭력에 대항한 작은 승리지만 그것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는 의미였다. 나의 패배는 동지로서 함께 살아온 선생들의 패배이고 죽어간 동지들이 제 생명과 바꾸며 지키려고 했던 가치들에 대한 배반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앞으로 살아 있어야 할 조건을 스스로 버리는 행위였던 것이다. (중략) 살려고 하면 비굴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죽기를 결심했다. 그러자 삶이 버겁지 않고 용기가 생겼다. 어떤 폭력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다. 나는 앞에 나서서 일을 하고 싸울 때 나는 물러선 적이 없다. 과감하게 따라나섰다. 나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차라리 죽음을 택했다."(본문 286페이지)

좌냐 우냐, 흑이냐 백이냐를 가리기 위해서 해방 이후 우리는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고, 고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우리나라가 비록 '분단'이라는 암담한 현실에 가로막혀 있긴 하지만, 사상의 자유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보장되어야 기본권리입니다. 법이나 제도로써 보장하느냐 마느냐 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사람이 신념이 없으면 그것은 껍데기만 있는 것입니다.

1945년 그때로 돌아가서 남북이 분단만 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이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통일'입니다. 저의 짧은 머리로도 그 외의 방법은 생각하기 힘듭니다. '왜 통일이 되어야 하는가'마저 의심하고 있는 우리 세대가 '0.75평 지상에서 가장 작은 내방 하나'를 읽고 가져야 할 것은 '통일에 대한 강한 신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다큐웹진 이미지프레스(http://www.imagepress.net/backnumber/reportage/longdated.html)에 가시면 사진작가 신동필 씨가 촬영한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의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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