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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한군데 마음 둘 곳 없어 밤길을 나섰습니다.
백두 외갓집이라도 다녀와야겠습니다.
나는 문득 외갓집이 그리워 어린 날의 불빛을 따라 왕복 삼십리 밤길을 떠납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밤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늙어버린 탓일까요.
어느 때부턴가 저녁이 오면 집으로 돌아갈 생각부터 하게 됐습니다.
한 시절 두려움 없이 밤길을 가고, 거칠 것 없이 새벽길을 떠나던 때가 있었습니다.
내 안의 집을 부수고 세상의 집을 지으러 길 떠나던 때가 있었습니다.
다시 길 떠날 꿈을 아주는 접지 못하고, 오늘은 청별 고개를 넘고, 월송리 고개를 넘어 백두로 갑니다.

어린 날에도 이 밤길을 홀로 걸었던 적이 있었지요.
여섯 살 무렵의 겨울날.
백두 외갓집에 다니러 갔다가 무엇에 마음 상했던지 저녁 먹던 밥숟가락을 팽개치고 그 길로 외갓집을 뛰쳐 나왔었지요.
분한 김에 나오긴 했어도 별도 없는 칠흑의 길을 가자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저주저 한참을 머뭇거리며 뒤돌아 보고 또 돌아 봤지요. 하지만 아무도 말리려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린 것이 제풀에 지쳐 돌아오겠거니 했었던 것일까요.
하지만 그것이 어린 나를 더욱 서럽고 분하게 만들었습니다.

백두 잔등을 오르며 몇 번을 넘어지고 엎어졌다 일어나 길을 갔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추운 줄도 몰랐습니다.
잔등을 넘어서자 중리 흰 모래밭은 그 밤중에도 환한 등불같이 길을 밝혀주었지요.
중리를 지나 여항 고개를 넘어 통리 해변을 따라 쭉 걸었습니다.
월송리 저수지, 청별, 부황리, 부용리 돈방골까지 시오리 밤길을 여섯 살의 내가 혼자 걷고 또 걸었습니다.
마침내 돈방골 잔등을 넘어 집이 보이자 사립 밖에서부터 나는 "함마이....." 소리지르며 할머니를 불렀지요.
놀란 할머니가 뛰어 나오시고 나는 할머니를 보자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내고 말았습니다.
아, 나는 그 고집불통의 어린 내가 그리워 이 밤길을 다시 나선 것일까요.

청별 월송리 진주 강씨 제각께에 다와 가도록 밤길 걷는 사람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합니다. 이따금 밤이 와도 지칠 줄 모르는 자동차만이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자동차는 밤길에도 불한당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보니 들고 나왔던 손전등이 거추장스런 짐이 되고 맙니다.
나는 진주강씨제각께 길가 한 모퉁이에 손전등을 가만히 내려놓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가져가면 될 터이지요.

지금은 더 이상 외조부님도, 외할머니도, 외삼촌도, 친정 온 이모들도 살지 않는 외갓집.
이 밤 쓸쓸함에 겨워 찾아가도 누구 하나 반겨줄 이 없는 외갓집엘 갑니다.
외할아버지는 환갑이 넘어 고향을 뜬 뒤 보길도가 아니라 낯선 땅 인천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딸 다섯을 낳은 후 어렵게 얻었던 외아들.
외삼촌의 바램에 못 이겨 보길도의 집과 땅과 배까지 팔아 부산으로 갔다가 몇 해 지나지 않아 모두가 거덜나고 외삼촌은 술김에 스스로의 몸에 기름을 부어 자살을 하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두 분은 빈 몸으로 딸들 사는 인천까지 흘러 오셨던 것이지요.
돌아가시기 전까지 외할아버지는 몇 해 동안을 인천 송림동의 삯월세 방에서 외할머니와 단 둘이 사셨습니다.

그때 우리 가족도 송림동에 살았습니다.
어느 날이었을 겁니다. 벌써 3일째 어머니는 아버지와 싸우신 뒤 밥을 굶고 누워 계셨지요.
아버지는 어딘가로 나가버렸고, 동생과 나도 덩달아 굶고 있었습니다.
늦게사 사정을 알게 된 외할아버지가 동생과 나를 두 분이 사시던 쪽 방으로 데려갔습니다.

외할머니가 밥상을 차려 내오셨습니다.
배고픈데 어여 먹어라. 밥상에는 김치 한 접시와, 멀건 동태국 한 그릇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외손주들 먹일 요량으로 없는 돈에 사오신 동태 한 마리.
두 분은 평상시에는 김치 한보시기로 밥을 드셨을 테지요.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는 외손주들 먹으라고 동태국에는 손도 대지 않으신 채 어여 먹어라 배고플틴디. 어여 먹어, 채근하시고.
나는 눈물을 참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고향에 사실 때 외할아버지는 김발도 하시고 어장도 하셨습니다.
철 따라 도미, 우럭, 삼치, 민어, 장어, 조기, 갈치 등 펄펄 뛰는 생선들을 한배 가득 낚아와 이웃들에게도 나눠도 주시고 참 맛나게 잡수기도 하셨지요.
그날 나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고, 그 와중에도 명태국에 고봉밥 한 그릇을 다 비웠습니다.

느릿느릿 걸었지만 벌써 중리 해수욕장을 지나 백두 잔등을 넘습니다.
해안 따라 도로가 난 후로는 잘 넘어 다니지 않는 고갯길이지요.
부근에 묏등들이 많은 것을 아는 터라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괜히 머리카락이 곤두섭니다.
신기하다, 아직껏 내가 무서워 할 무엇이 남아 있었단 말인가.

막 고갯길을 내려서는데 앞에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있습니다.
뱀.
히끗히끗 한 것을 보니 살모사거나 까치 독사 일 듯 합니다.
녀석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나도 한동안 녀석을 주시합니다.
어쩐다, 이 밤중에.
한 때 땅꾼 노릇도 했던 내가 뱀을 잡지 않게 된지는 꽤 됐습니다.
그냥 놔주기로 하고 녀석의 옆으로 피해 갑니다.

그렇게 걸어내려 가는데 길가 수풀 속에서 어떤 기척이 들립니다.
누가 나를 건너다보고 있습니다.
아, 염소군요. 나는 반갑게 아는 체를 하고 말을 겁니다.
염소도 아는 체를 하며 반가워합니다.
나는 이 채식주의 철학자와 한동안 댓거리를 하다 다시 길을 갑니다.
그는 밤새워 무슨 생각을 할까. 줄에 묶여 오도 가도 못하겠지만 생각은 또 얼마나 멀리 갈 것인가.

마을의 불빛들이 가까워옵니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소리는 점차 먼 곳의 개들에게까지 전염됩니다.
저 아래 마을이 나의 외가 동네 백두입니다. 백도리라고도 하지요.
마을 안 길을 지나 백두 마을 회관 뒤 외갓집으로 들어섭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니 외갓집이 아닌가요.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언제까지나 나의 외갓집입니다.
외갓집에 불이 모두 꺼져 있습니다.

일찍들 자는 걸까. 바로 옆, 어머니의 사촌인 남표 삼촌 집에도 불이 꺼져 있습니다.
기대가 있어서 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냥 돌아가기가 못내 서운합니다.
진성이 형님네 가서 소주나 한 잔 하고 가야 하겠습니다.
선백도 쪽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보길도의 '한량' 진성 형님 댁이 있습니다.

집에 불이 켜져 있군요.
마당으로 들어서며 '진성 형님' 부르는데, 문이 열리고 아들녀석이 내다봅니다.
문틈으로 얼핏보니 형님은 잠들어 있습니다.
낮의 고단한 노동에 지쳐 저녁 먹고 TV 좀 보다 잠들었겠지요.
요즘 김발이다 뭐다 겨울 바다 농사 준비로 좀 고단하겠습니까.
나는 아이에게 깨우지 마라고 손을 저으며 조용히 사립을 빠져 나옵니다.
누구네 것인지도 모를 담장가 감나무에서 덜 익은 단 감 하나 따 베어 물고, 다시 시오리 밤길을 되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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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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