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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 에밀레∼∼∼∼∼"

9일,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국보 29호 성덕대왕 신종(일명 에밀레종)이 전국에서 몰려든 3천여 시민들이 귀를 기울인 가운데 타종돼 종소리가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100리까지 간다는 에밀레 종소리를 9년만에 들으면서 눈물까지 글썽이며 감동하는 시민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다물지 않는 에밀레 종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등장한 이애주 춤꾼(서울대 교수)의 살풀이춤은 한없이 퍼져나가는 '에밀레'만큼이나 무한해 보였다.

현존하는 한국 최대의 고대 범종인 성덕대왕종은 신라 34대 경덕왕이 부왕 성덕대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기 시작, 34년간 실패를 거듭한 끝에 771년 제36대 혜공왕 때 완공된 신종이다.

지난 92년 제야의 종을 치면 수명을 단축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그 동안 타종을 중지하고 녹음된 에밀레종 소리를 듣다가 문화재청이 실시한 정밀조사에서 안전상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려 신라문화제 기간 중인 한글날 타종하게 된 것이다.

높이가 364cm에 달하고 명문에 구리 12만근이 들어갔다고 기록돼 있는 성덕대왕 신종은 국내에서 가장 웅장하고 소리가 맑아 종소리가 100리 밖에까지 간다고 전한다.

그러나 성덕대왕 신종이 옥음(玉音)이 나오기까지는 끔찍한 일이 있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신라 경덕왕은 한번 들어도 가장 청아한 소리로 정신까지 맑아지는 신비로운 신종(神種)을 만들어 성덕대왕의 위업을 기리고 명복을 빌기로 했다. 그러나 이 신종이 만들어지기 전 경덕왕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완성된 종이라 하더라도 금이 가고 깨진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이어 혜공왕 역시 신종 제작을 이어받아 정성을 다했으나 마찬가지였다. 청음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점치는 일관이 신종을 완성하려면 속세의 물욕과 때가 묻지 않은 순결한 어린아이를 쇳물에 녹여서 종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누가 희생양이 되겠는가.

'궁하면 통하는 법.' 종에 사용될 쇠붙이를 시주받기 위해 어느 마을에 갔던 한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신하들은 해결책을 찾았다. 스님이 아주 가난한 집 여인의 시주대신 아이를 바치겠다는 말을 하자 신하들은 그 집을 찾아가 아기를 데려왔다.

아기 어머니는 그 때 한 말이 진심이 아니라고 한사코 아기를 내놓지 않으려 했으나 부처님을 속일 수는 없는 일이라 해 강제로 빼앗아 끓는 쇳물에 넣었다. 이로써 완성된 신종은 드디어 깨진 소리가 아닌 신비스런 옥음을 내게 됐다. 그리고 그 종소리에는 "에밀레∼∼∼"하는 애닲다 못해 애처로운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봉덕사 성덕대왕 신종은 이리하여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려지게 됐다.

물론 전설이다. 전설은 허구로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전설은 당시 성덕대왕 신종을 제작하기 위한 후대왕의 갸륵한 정성과 염원을 현실로 읽을 수 있다. 또 이 신종에 34년이란 세월을 매달려 오면서 불국토가 도래할 것을 간절히 기도해온 신라인들의 입장에서는 어린 아이의 희생을 통해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지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전설적 진리를 간절히 실현하고 싶었으리라.

반면 전문가들은 에밀레 종소리를 맥놀이(울림) 현상으로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종을 치면 종 몸체는 지름, 원주, 길이 등 3방향으로 3가지 진동을 만든다고 한다. 이중 가장 큰 진동은 지름이다.

또한 타종 후 종소리는 대개 3구간으로 나눌 수 있다. 제1구간 음은 타종 직후 1초 이내에 소멸되는 소리로, '탕'하고 울리는 타격 순간음이라 한다. 제2구간음은 타격 후 10초 이전까지 계속되는 고음 성분으로 먼 곳에서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이 구간음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제3구간음은 타격 후 1분 이상 계속되면서 점차 감쇄되는 소리로 여운음이라 설명하고 있다 . 여음은 맥놀이 현상, 즉 은은한 울림이 뚜렷하고 길수록 좋은 소리다. 성덕대왕종은 이 맥놀이 현상이 뚜렷한 신종으로 '에밀레종'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것이다.

과학적 기술과 장비 없이 순전히 사람의 귀에 의지해서 이러한 신종을 만들어낸 것은 신라왕과 백성이 일치가 돼 어린 아이의 희생같은 노고와 정성을 쏟아부은 결실인 만큼 선덕대왕 신종은 에밀레 전설 이상으로 가치 있고 기이하다. 에밀레종은 누구를 위해 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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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갖자"는 체 게바라의 금언처럼 삶의 현장 속 다양한 팩트가 인간의 이상과 공동선(共同善)으로 승화되는 나의 뉴스(OH MY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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