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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나 TV에서, 학원이며 과외를 5-6개씩 하느라 뛰어놀 시간조차 없는 초등학생들의 고단한 일상이 간혹 보도되는 것을 보곤 합니다. 내 아이가 아직 어렸을 때 그런 보도를 보면서 어이없어 하곤 했습니다.

아이들을 그렇게 혹독하게 휘두르는 부모들의 극성에 대해 혀를 차기도 했죠. '아이에게 중요한 건 인성이다, 공부나 과외에 앞장서기보다는 세상을 따뜻하게 살아갈 줄 아는 건강함을 심어주겠다.' 전 언제나 그렇게 생각했었죠.

마침내 우리 아이(이름은 휘영입니다)도 올해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책상 앞에는 휘영이의 일주일 주간 계획표가 붙여져 있습니다. 휘영이가 지금 학교 수업 외에 받고 있는 과외 수업은 모두 6개입니다.

우선 매일매일 가는 것으로 피아노와 태권도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급식까지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1시 가량. 그때부터 피아노와 태권도 학원을 모두 다녀오면 4시 정도가 됩니다. 그리고 잠시 쉬고 나면, 서로 다른 과목을 일주일에 두 번씩 돌아가면서 하는 순환 과외가 시작되지요.

그 중 대표적인 과목이 영어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에 영어 과목이 정규 교과로 포함된 이래, 학부모들의 영어에 대한 공포심은 상상을 초월하고 그에 따라 학습 강도도 높아졌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씩 바둑을 시작했습니다. 공부라기보다는 거의 게임에 가깝고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한다는 이유로 시작하게 된 과외학습입니다. 남자 어린이의 부모라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과외 학습이기도 하죠.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눈높이 수학 선생님이 다녀가십니다. 선생님이 머무는 시간은 약 20분에 불과하지만 휘영이는 매일 저녁, 다섯 장씩 연산 문제를 풀어야 하죠.

마지막으로 일주일에 한 번, 휘영이는 동네 친구들과 글짓기를 합니다. 이건 엄마인 제가 아이들을 불러모아놓고 해주는 일종의 품앗이죠. 직업이 책을 만들고 글을 쓰는 일이다 보니 아이들에게 모자란 독서라도 시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바쁜 시간을 쪼개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없이 꽉짜인 스케줄 속에서도 휘영이와 골목안 친구들은 짬짬이 열심히 뛰어노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요? 저희들끼리 축구팀도 만들고 야구팀도 만들어 학원에 오가는 길마다 시간을 맞추어서 골목 안 축구와 야구에 열성입니다. 때로 자전거 폭주족이 되어 골목을 내달리기도 하고 롤러 블레이드 시합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나마 제가 살고 있는 동네가 아파트가 아니고 일산의 단독주택 지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고양시에서 붙여준 우리 골목 이름은 '소정로'입니다. 소정로에는 유난히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 아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 휘영이처럼 4-5개 이상의 과외 학습을 받고 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아직은 찌들린 표정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곧 2학년이 되고 3학년이 되면 학교 수업 시간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엄마들은 피아노나 태권도, 바둑과 같이 공부와 직접 관련이 없는 과외, 하지만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던 과외 학습은 그만 시킬 것입니다. 그대신 국어와 수학, 영어, 과학에 할당되는 시간이 늘어나겠지요.

휘영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간 그 순간, 저의 원칙이나 교육관 같은 것은 그야말로 이상으로 그치게 되고 말았습니다. 휘영이가 한국에서, 도시에서 학교를 계속 다니는 한 과외 학습 6개는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교육이 그야말로 우리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다 잘할 줄 아는 팔방미인으로 만들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잘하면서 만능 스포츠맨이고, 악기 하나쯤은 능란하게 다룰 줄 알면서 외국인과 회화가 가능한 영어 실력을 갖추고, 글도 논리적으로 쓰면서 바둑같은 잡기에도 능한 멀티형 신인간.

오, 신이시여 제가 과연 휘영이를 이런 아이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네? 자신 없으면 하루라도 빨리 이 땅을 떠나라구요?

덧붙이는 글 | 제가 소신없이 학부모들의 바람에 휘둘리는 귀 얇은 엄마인 걸까요? 
아님, 이 땅의 교육제도 아래서 살아남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엄마인 걸까요? 이상한 것은 이 교육제도에 발을 디딘 그 순간부터 늪처럼 그 속에 깊이 빠져 들어간다는 사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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