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치인은 정치현장에 있어야 한다" 한때 강력한 차기 주자로 각광받던 한나라당 강재섭 부총재의 말이다. 지난 13대 국회부터 내리 4선을 역임한 강부총재는 서울고검 검사, 대통령 비서관, 민자당 기획조정실장, 대변인, 신한국당 원내총무 등을 역임하며 순탄한 정치행보를 걸어왔다.

이미 당내 차기 대권 후보가 이회창 총재로 굳어지는 분위기지만, 아직도 50대 초반이라는 점에서 그 잠재력을 높이 인정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여권이 소홀하게 임했던 16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서도 원만한 진행을 이끌어냈으며,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통신위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이처럼 한동안 자신이 맡은 역할에만 충실해오던 강부총재가 현재의 '정치'를 바라보는 스스로의 생각을 부담 없이 풀어내는 자리를 가졌다. 지난 9월 21일 오후, 국회를 찾은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들에게 헌정기념관 한 강의실에서 행한 강연이 바로 그 자리였다.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다.

"최근 들어 여야 대권주자로 불리우는 정치인들이 농가도 찾고, 지하철 민심 탐방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부 정치인들은 몇몇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기도 하는데, 사실 박사 학위는 공부하는 분이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일까. 여느 대선 주자의 강연자리라면 보도자료도 내고, 기자들로 북적거릴텐데, 강부총재의 이날 강연은 그렇지 않았다. 시종일관 조용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이 자리에서 강부총재는 현재 우리 정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새로운 패러다임에 관해 특유의 부드러운 화술로 하나 하나 풀어나갔다.

그가 몸담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비판이 가장 먼저 화두에 올랐다. 강부총재는 "현재 우리의 정치는 삼국지 정치이자 가십거리 정치요, 보신정치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권 주자군의 행보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일반 국민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는 점에서 '유비·관우·조조'등의 지도자만 부각됐던 <삼국지>와 흡사한 양상이라는 것. 지역 분할에 근거한 3김정치와 '연어, 가문의 영광, 성은이 망극'과 같은 말이 나도는 보스정치도 이와 함께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게 강부총재의 설명이다.

이어 그는 "중진 이하의 의원들이 진정한 봉사 활동을 하고, 훌륭한 법안을 내도 신문에 잘 나오지 않는 게 우리 실정이다"며 "이런 점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전심전력으로 노력했던 고제정구 의원이 정말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꼭 고쳐야 할 것

"기자가 있으면 발언 하나라도 더 하려고 하고, 없으면 휴게실에 가 쉬던지 침묵으로 일관하는 정치인들도 있다" '가십거리 정치'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강부총재는 "대권주자들이 발대식, 후원회를 대규모로 개최하는 것도 이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것 아니냐"며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해 말과 올 초 논의된 '개헌론' 논의였다"고 비판했다.

실업문제를 비롯,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개헌론'을 이야기한다는 게 비상식적이라는 이야기다. 또한 개헌을 위해선 국회 2/3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데 현재의 구도에서 불가능한 일이며, 내년 지자체선거와 월드컵을 앞두고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는 발상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것.

이외에도 당과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고, '중용과 타협'은 사라진 채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보신정치'가 우리 정치권의 현주소라고 그는 지적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강부총재는 "우리 정치에 부정적인 요소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애정을 갖고 비판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꼭 고쳐야 할 것이 있다. 고시제도와 지구당폐지가 그것이다. 특히 국회정치개혁특위위원장으로서 지구당폐지는 슬기로운 과정을 통해 반드시 관철시켜야 할 것이다. 총재와 대표, 대변인 그리고 당사가 무슨 필요가 있나. 모두 선진국에는 없는 것들이다. 효율적인 조직관리를 위해서라도 당 총무가 실질적인 권한 행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부총재의 지적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었다.

시대는 변했다!

그럼, 강부총재가 생각하는 새로운 정치의 패러다임과 리더십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는 우선 부지런한 사람이 최고로 인정받던 박정희 전대통령의 시절이 농경시대와 산업화 시대였다면, 현재의 사회는 이미 정보화사회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네티즌들의 여론조사를 비롯 '국민들의 직접 참여 정치'가 가능해졌다는 말.

이어 그는 "지금까지 보여왔던 1인 인치에 의한 정치가 아닌 '분권적 정치'가 돼야 하며 이를 위해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면서 "이와 함께 부작용이 다소 있더라도, 서울과 지방을 분리해야 한다"고 '분권적 정치'를 강조했다.

다음은 새로운 리더십에 관해 설명한 대목의 일부분.

"박정희 전대통령은 눈은 치울 줄 알았지만, 눈을 감상할 줄 몰랐다. 반면 김영삼 전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눈의 아름다움과 더러움은 알았지만, 치우는 방법을 몰랐다. '말로만 준비된 대통령'이었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리더십은 실질적인 역량과 희노애락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그는 순수성을 전제로 한 진실성과 관용, 이해를 바탕으로 한 균형된 사고를 새로운 리더십의 조건으로 꼽으면서 "나도 이 다음쯤은 이념과 생각을 펼치기 위해 한 번 뛰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차차기에 대한 의욕을 내비치기도 했다.

당 정체성에 관해 묻는 학생의 질문에 "나는 가만있는데, 당이름이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변하더군요. 부끄러운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정치가 한사람에 의해 얼마나 좌지우지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구요. 정당은 이념으로 바꿔야 합니다"라면서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주셔서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십시오. 애정을 갖고 주시는 비판은 달게 받겠습니다"고 명료하게 답했던 강부총재.

그러나, 4선 중진의원이자 정치개혁특위위원장이라는 위치는 현실 정치 폐해의 책임에서 그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또한 보여주고 있다. 차차기를 생각하고 있다는 포부처럼 아직은 검증받아야 할 대목이 무수히 남아있다는 것도 그에겐 큰 기회다. 강부총재가 후배들에게 이야기했던 '정치'에 관한 생각들을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펼쳐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