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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283개 시민사회단체의 연대기구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9월 24일 오전 10시 기자회견을 열고 9·11 미 테러사태 이후 보복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세계 정세에 대한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테러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면서도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들에게 양자택일식으로 전쟁 참여를 요구하고 각국 정부들이 전쟁의 손을 들어준다면, 이 전쟁은 21세기 자체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력과 그 적대 세력의 군사적 대결의 시대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의 보복전쟁을 반대했다.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테러리즘은 국제법상 범죄중 하나로서 그에 대한 응징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하지만 아직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돌입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테러에 대한 무력개입을 한다 하더라도 민간인 살상이 일어나지 않고 그 나라의 주권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여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전면전은 또 다른 국제법적 범죄를 구성할 수 있으며 처벌을 받아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대회의는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가 군사적 갈등 상황에 빠질 경우 남과 북의 능동적인 평화실현 노력은 커다란 장애에 부딪치게 될 것"이라며 특히 "일본이 반테러 전쟁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군사활동 범위를 넓히고 군사력 증강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을 아시아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심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고 밝혀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을 경계했다.

연대회의는 우리 시민사회단체와 정부의 과제로 △세계평화운동과 연대 △남북한간 대화와 협력을 통한 신뢰구축 △전쟁수행 지원이 아닌 다른 방식의 테러 근절을 위한 국제적 노력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막기위한 아시아 연대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문화적 환경과 교육 조성을 지적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은 연대회의가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

미국 테러 사태와 이후 상황 전개를 바라보는 연대회의 입장

참혹한 테러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냉전은 진작 막을 내렸으되 평화를 맞을 준비는 여태 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절감하고 있다.

지난 11일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발생한 테러 참사는 그 자체로 인류의 큰 비극일 뿐 아니라, 미국과 국제사회의 향후 대응 방향에 따라 세계적인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사태 전개는 새로운 세기의 국제질서에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아직 냉전의 그늘조차 걷어내지 못한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위협은 더욱 절박하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뗀 한반도 평화과정이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사회·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작지 않을 것이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실현하며, 있을 수 있는 위협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힘겹고 기나긴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국 283개 시민사회단체의 상설연대기구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우리 사회가 가진 모든 지혜를 모아 이러한 노력을 펼쳐야 한다고 믿으며, 그 첫발로서 소속 단체들의 의견을 모아 다음의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1. 무엇보다 우리는 이번 테러의 희생자들과 그 이웃들에게 깊은 위로와 안타까움을 전하며 고통을 딛고 삶을 재건하기 위해 연대하고 있는 미국 시민들에게 격려와 존경을 보낸다. 무고한 시민을 희생시키는 테러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동정도 표할 수 없으며,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들이 테러의 주범을 찾아내어 응당한 처벌을 받도록 하는 데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믿는다.

2. 적대와 증오가 만연하는 세계에서는 그 어떤 값비싼 첨단 무기체계로도 테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생생하게 목격하였다. 군비 경쟁의 어리석음이 여기에 있다. 지구상에서 테러를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제거하는 일, 즉 적대와 증오를 낳는 불평등과 빈곤, 인권 유린과 인종차별, 착취와 패권주의를 극복하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확인하였다.

3. 미국 정부는 이번 사태를 전쟁으로 몰고가서는 안된다는 이성의 호소에 귀 기울여야한다. 전쟁은 테러 행위와 무관한 시민들을 희생시킬 뿐이며 테러를 근절하기는커녕 더욱 증오에 찬 보복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국제법은 보복을 위한 무력 행사를 금하고 있으며 민간인 살상에 대해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묻고 있다. 미국은 전쟁 보복을 공언하기 이전에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테러의 주범을 찾아내고 법정에 세우려는 외교적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4. 세계가 전쟁에 휘말리면 한반도의 평화과정이 결정적인 위험에 빠질 것이며 우리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점에서도 우리는 전쟁에 반대한다. 미사일방어(MD) 계획 등 무리한 군비확대 정책과 맞물린 부시 형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이 남북한의 평화를 위한 노력에 이미 큰 장애로 작용한 것을 우리는 경험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가 군사적 갈등 상황에 빠질 경우 남과 북의 능동적인 평화실현 노력은 커다란 장애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5. 그러나 우리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안타까운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과 테러집단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가 불길한 전쟁의 분위기에 휘말려 들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들에게 양자택일 식으로 전쟁 참여를 요구하고 각 국 정부들이 전쟁의 손을 들어준다면, 이 전쟁은 21세기 자체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력과 그 적대 세력의 군사적 대결의 시대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세기를 또 다시 전쟁과 군비경쟁의 시대로 전락시키지 않도록 미국과 각 국 정부의 지혜로운 선택이 요구되고 있다.

6. 특히 우리는 일본이 반테러 전쟁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군사활동 범위를 넓히고 군사력 증강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을 아시아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심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 일본 정부는 아직도 과거의 침략 행위에 대한 참회조차 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 전쟁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일본이 새로운 전쟁을 기회로 삼아 다시 군국주의로 무장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이는 우리 시민사회와 정부, 그리고 평화를 원하는 아시아 모든 나라들의 과제이다.

7. 우리는 우리 정부가 미국의 전쟁 수행을 지원하는 것에 반대한다.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그 규모와 파장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떠한 형태든 전쟁 지원을 약속해서는 안 된다. 전쟁에 대한 지원이 아니더라도 우리 정부가 해야할 능동적인 역할은 많다. 테러 피해자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테러범 처벌을 위한 협력, 그리고 테러와 전쟁을 근절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하는 일이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 정부의 외교적 지혜는 미국의 요구를 막연히 수용하는 데서 발휘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데에서 최우선적으로 발휘되어야 한다.

8. 테러 사태 직후 전 세계가 충격과 혼란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도 남북한 당국이 흔들림 없이 남북 장관급회담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적지 않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국제정세가 혼란스럽고 평화가 위협받는 상황일수록 남북한의 대화와 협력을 빠르고 능동적으로 진척시키는 것이 국민의 안전과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일이며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9. 테러의 충격과 전쟁의 두려움 속에서도 세계 각 국에서 진정한 평화를 위한 지혜를 호소하는 움직임이 힘을 얻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는 물론 미국 안에서도 반전평화를 호소하는 큰 기운이 일어나고 있다. 전쟁을 막고, 새로운 세기를 군사적 적대의 시대로 전락시키지 않으며, 한반도의 평화를 진척시키기 위해 우리 시민사회도 이러한 이성의 호소에 응해야 할 시점이다.

2001년 9월 24일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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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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