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나라에서 외국지명을 표기하는 기본원리는 일단 그 나라에서 불리는(소리나는) 대로 한다는 것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북경, 심양, 천진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친숙하게 불리던 중국지명이 베이징, 센양, 텐진 이런 식으로 바뀐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바뀐 후 두 도시간의 연관성을 알아차리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보면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불리웠던 인근국가의 지명이 있으면 그것을 함부로 바꾸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다른 차원에서 볼 때, 본토의 지명으로 부르는 것이 아무래도 객관성이 있고 나아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그 원리는 보기보다 많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역사상으로 우리나라와 별 연관이 없었던 나라들의 경우, 현지 발음으로 지명을 표기하는 게 아니라 영어식 지명을 그대로 차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영어가 한국의 공용어가 아닌 이상 왜 모든 세계의 지명이 전부 영어식으로 쓰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폴스카'는 영어식의 폴란드로 불리고, '로므니아'는 루마니아로, '수오미'는 핀란드로 불린다.

발트3국의 경우도 마찬가지. 리투아니아는 리투아니아어로 '례투바(Lietuva)', 라트비아는 영어와 다행히 음가가 같은 '라트비아(Latvija)' 에스토니아는 '에스티(Eesti)'란 국명을 사용하고 있지만, 본토발음을 중시하는 우리나라는 '리쑤에이니아'하고 써 있는 영어식 단어를 한국식으로 차용한 리투아니아라는 국명을 쓰고 있다.

한 나라의 국명이 생기게 된 연유를 살펴보면, 그 나라의 특성과 역사적 배경, 민족의 특성들을 잘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 동유럽 국명표기법에 무언가 변화가 생기기 전까지, '발트3국이야기'에도 영어식 국명을 사용할 수밖에 없겠다. 악법도 법이라고 하니까.

팔레모나스 이야기

리투아니아, 즉 '례투바'라는 국명이 유럽 문서에 처음 거론된 것은 1009년이다, 그 전까지 '리투아니아'라는 나라는 이 지역에 존재하지를 않았다. 단지 여러 개의 부족국가들이 지역별로 흩어져 활동하고 있었고, 그 부족국가 중 하나가 례투바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게 옳다.

통일왕국으로 리투아니아가 시작된 것은 13세기부터이며, 민다우가스(Mindaugas) 대공이 리투아니아를 통일하여 왕으로 등극한 1240년부터라고 볼 수 있다. 이 통일국가 리투아니아의 국명이 나오게 된 연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일단 외국인들이 가장 납득하기 좋은 것으로는 리투아니아에 비가 많이 오는 것 때문에, 리투아니아어로 '비'를 의미하는 Lietus라는 단어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리투아니아는 정말 비가 자주 오긴 한다. 여름 한철에는 우산을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비가 자주 온다. 날씨 우중충하고 비 많이 오는 게 유럽에서 리투아니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리투아니아에서 외국인에게 상당히 많은 인상을 남겨주는 게 바로 그놈의 비다.

또 다른 연유라고 한다면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역사가들이 기록한 사기에 나타나 있는 로마인건국설이다. 물론 정설로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리투아니아 역사를 배울 때 한번은 짚고 넘어가는 중요한 사건인 것은 사실이다.

로마의 악명 높은 황제 네로의 폭정을 피해 로마의 귀족이었던 팔레몬(리투아니아어로 팔레모나스 Palemonas)이 그 가족, 친척들과 이탈리아를 탈출하여 지중해를 건너 유럽대륙을 횡단해 현재 리투아니아에 나라를 건설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 팔레몬은 두 아들 바르쿠스(Barkus)와 쿠나스(Kunas)를 낳았고, 그 두 아들은 각자의 이름을 따서 바르쿠스는 '유르바르카스(Jurbarkas, 리투아니아 동부에 있는 도시)', 쿠나스는 '카우나스(Kaunas, 현재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를 건설했다.

쿠나스는 후에 네리스강과 스벤토이 강이 만나는 아름다운 지역에 정착하여, 그곳에 또 자신의 아들의 이름인 '케르니우스(Kernius)'의 이름을 따서 '케르나볘(Kernave)'라는 도시를 건설하였고, 그 케르나볘를 수도로 새로운 나라가 건설되었다.

그 지역사람들은 나라를 건국한 사람들이 로마의 후손임을 기억하여 라틴어로 '이탈리아의 후손'이란 나라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곳이 세대의 세대를 거쳐서 '례투바'로 굳어지게 된 것이라는 설이다.

이런 웅장한 전설의 배후에는, 그 사기들이 쓰여진 시기가 옆 나라 폴란드와 서로의 강성함을 자랑하며 영향력을 키워가는 시기였으므로 서로의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해 지어냈을 수 있다는 역사적인 사실이 감추어져 있다고 말하곤 한다.

'발트3국이야기'의 한 회에서 이야기했듯 리투아니아어가 라틴어와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그리 설득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이야기했지만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이름이 고대 로마인의 이름과 비슷하다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팔레몬의 아들이 건설했다는 카우나스에 기차를 타고 들어가면 아직도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을 딴 '팔레모나스(Palemonas)'라는 지역을 통과하게 된다. 그리고 성경 마태복음 1장에 누가 누굴 낳고 하는 식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리투아니아 사기들을 보면 팔레모나스로부터 시작해서 리투아니아 역사상 최고의 영웅인 게디미나스와 비타우타스 등의 이름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리투아니아 건국전설과 비슷한 로마인 건국이야기는 유럽 여기 저기에서 나타난다.

현재 거의 정설로 굳어져 있는 리투아니아 국명기원설은 리투아니아 최초의 수도였던 케르나볘 주변을 흐르는 강의 이름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실제로 현재 케르나볘 지역을 흐르고 있는 강 중엔 '미투바(Mituva)'라는 강이 있다. 강이름이나 지역이름에서 국가이름이 나오는 것은 비교적 빈번한 일이다.

국명 외에도 리투아니아에는 여러 도시들의 시작과 관련된 재미 있는 전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리투아니아가 산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대신, 숲이 울창한 지역이 아주 많아 숲이나 사냥과 관련된 전설이 많다.

리투아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늦게 기독교화된 국가로 14세기까지 이교도 국가로 존재하고 있었다. 왕이라는 것이 교황의 칙령이 없이는 될 수 없던 시기였으므로, 리투아니아에는 '공식적으로' 왕이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통일 리투아니아를 건설하고 자신이 친히 기독교를 받아들인 민다우가스 단 한 사람 밖에 없다.

민다우가스가 리투아니아를 공식적으로 기독교화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민다우가스 이 후 그 왕이라는 것대신 리투아니아를 다스린 사람들은 바로 대공작, 리투아니아어로 '쿠니가익슈티스(kunigaikstis)'로 불리는 지도자로, 군대수령과 비슷한 역할로 지역을 다스린 사람들로 이해하면 된다.

물론 지역마다 또 시대마다 어마어마한 수의 대공작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이야기를 많이 남긴 사람은 게디미나스(Gediminas) 대공이다. 이교도 국가인 리투아니아를 집적대기 시작한 십자군들을, 로마 교황에게 보내는 문서 하나로 잠시 잠재운 외교가로 유명한 이 사람은, 역시 사냥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리투아니아의 수도가 여전히 케르나볘이던 당시. 게디미나스는 수도에서 5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지역에 사냥을 나갔다. 게디미나스는 거기서 네리스 강물줄기가 흐르는 자그마한 언덕이 있는 아름다운 지역을 발견하고, 이 지역에 성을 지어 수도를 이곳으로 천도했는데, 이 도시의 이름은 바로 '트라카이(Trakai)'이다.

트라카이라는 말의 뜻을 짚어들어가면, '숲을 헤집는 사람들'이란 뜻이 있는데, 그 울창한 숲을 헤치고 성과 마을을 건설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왜 그런 이름이 나왔는지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트라카이는 현재 리투아니아 최대의 관광지 중 하나로, 아름다운 호수 위에 자리잡은 붉은 성이 주위 경관과 어우러져 리투아니아에 오는 이들은 꼭 방문을 해야 하는 명승지이다.

이 도시는 잠시 후 이 사냥 좋아하시는 대공작님께서 다른 곳으로 수도를 옮기기까지 리투아니아의 수도로 존재하게 된다. 꼭들 가보시길...

덧붙이는 글 | 필자의 발트3국에 대한 홈페이지 http://my.netian.com/~perkunas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