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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사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여인철씨 ⓒ 오마이뉴스 최경준
절망스럽다. 모두 제정신이 아니다. 아니 제정신이면서 미친 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배운 자들이 망쳐놓은 우리 역사가 또 다시 배운 자들에 의해서 유린당하고 있다.

8월 31일 아침 8시 50분 대전발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아침 신문이 일제히 임통일부 장관의 거취를 둘러싼 DJP 공조의 위기상황을 알리고 있었다. 어찌하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가 되었는가.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가만히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냥 그렇게 모른 척 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지난 92년 LA에서 흑인폭동이 일어났을 때 재미동포에 대한 미국의 처사에 항의하기 위해 미국대사관 앞에서 일인 시위를 감행(?)한 적이 있다. 미국인의 흑인 구타와 차별대우에 대한 항의로 시작한 흑인폭동의 표적이 LA 경찰의 의도적인 작전의 결과 우리 동포에게로 바뀌었다. 우리 동포들이 두려움에 숨죽이며 흑인과 히스패닉을 상대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고 우리 동포들을 당연히 도왔어야 할 LA 치안경찰은 팔짱을 낀 채 그 약탈장면을 감상하고 있었다.

우리의 정치인도 언론도 심지어 국민도 모두 괴이한 체념에 빠져 아무 말도 못하던 때였다. 왜 말을 못하는가. 나는 그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미대사관 앞으로 갔다. "US Sent Police to American Town, Mobs to Korean Town. Stop Harassing Our Brethren"이라고 쓴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 지나가던 몇몇 사람만이 지켜보았을 뿐 아무런 소득이 없이 허망하게 진압된 시위였다.

그리고 안티조선 시위 이후 이번이 나의 세 번째 일인 시위이다. 나는 지금의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기도, 참기도 힘들다. 이 사회가 또 다시 희한한 분위기에 빠져 있다. 모두가 한쪽으로 휩쓸려 배가 뒤집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정신차려야 한다. 모두 한 쪽으로 쏠리면 전복된다.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나에게 달리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격한 의사표시로서 나는 또 다시 일인시위를 택했다. (오마이뉴스 9월1일 최경진/공희정기자의 "임장관 사퇴요구는 보수본색 드러낸 것")

우리 민족은 크게 싸움을 하고 갈라져 50여년이란 세월을 적대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이제야 겨우 그 대결에서 막 벗어나 민족화해협력의 길로 접어들려 하고 있다. 수십년 동안 가 본 적이 없는 무성한 숲길을 더듬으며 가려니 당연히 넘어지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꽃을 꺾게 되기도 하리라. 그러나 그것 때문에 산행을 포기하고 내려갈 수는 없지 않은가.

8.15 방북단의 돌출행동은 바로 그런 지엽적인 것이었다. 그런 당연히 있을 법한, 오히려 없다면 이상할 그런 작은 해프닝을 부풀려 김대중 정부의 핵심정책이자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을 올바로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 햇볕정책을 폐기시키려는 음모가 한나라당과 수구언론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그 음모에 온 나라가 휘청거린다. 거기에 자민련이 부화뇌동 가세하고 있다. 이른바 '한자동맹'이 21세기 우리나라에도 수입될 모양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싸울 수도 있는 것. 싸웠다가도 화해하고 다시 합치는 것. 서로 말과 사상이 다른 이민족 간에도 잘 살고 있다. 그런데 민중은 어리석고 배운 자는 탐욕스럽다. 우리 모두가 배우나 못 배우나 우리의 운명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강대국의 이념의 최면에 걸려 꼭두각시 노릇하며 살아온 지난 날을 아직도 깨치지 못하고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

왜 우리는 한 조상 아래 태어났음에도 화해하지 못 하는가. 아직도 남북의 형제가 서로를 갈구하고 있는데. 누구의 장난질인가, 아니면 스스로 이 형극의 길을 선택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이 잘못 되면 우리는 다시 냉전으로 회귀하게 될지도 모른다. 다시금 우리만 이 지구상의 유별난 못난 민족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자민련의 김종필 명예총재는 6.25 때 전사한 동기생 얘기를 했다 한다. 왜 50여년 지난 친일부역자의 얘기는 오래된 얘기니 잊자고 하면서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동족간의 싸움은 그토록 오래 기억하고 잊을만하면 끄집어내서 상처를 덧내야 하는가? 무엇을 원하는가. 그래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 주위의 모든 나라가 미래를 향한 발을 성큼성큼 내딛는데 우리는 아픈 과거에 집착하며, 대대손손 동족간 전쟁준비나 하면서 살길 원하는가.

임동원 장관의 거취문제는 일개 장관의 거취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정부의 핵심적 상징인 햇볕정책의 거취문제이다. 햇볕정책은 국민의 정부에 들어서 비로소 태어난 것이지만 우리 민족사에 하나의 금자탑이랄 수 있는 6.15남북공동선언의 모태이자 민족의 나아갈 길을 밝히는 햇빛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임장관 거취문제는 "정권의 문제가 아닌 민족의 문제"라는 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설사 그보다 더 햇볕정책에 정통하고 열의가 있는 사람이 온다 하더라도 이미 햇볕정책은 상징적으로 몰락하는 것이다. 더는 힘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임통일부 장관의 해임은 결국 "햇볕정책의 폐기"로 귀결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북관계는 다시 옛날의 대립관계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의 문제라는 것이다. 모두 정말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가?

역사가 또 다시 후퇴하려 하고 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대통령을 향한 권력욕 때문에 민족의 염원을 저버리고 평양에서의 일개 곁가지 해프닝을 "평양광란극"으로 만드는 "서울광란극'을 꾸미고 있다. 그리하여 그 역사후퇴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는 그 더러운 목숨을 다시 이런 식으로 구차하게 연명해 가며 조연으로 등장하고 있다. 임장관의 해임안이 가결된다면 이회창 한나라당총재와 김종필 자민련명예총재는 이 시대의 두 간웅으로 기록될 것이다.

나는 지금의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분명 정상이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수구언론이 있다. 언론에서 그런 분위기를 부추기며 또 한번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수년 주기로 몰아치는 이 광풍.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화해협력 분위기에 눌려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던 수구세력이 이번 평양 방북단의 돌출행동을 공세의 기회로 포착한 것이고 언론이 복수하듯 그 앞장을 선 것이다. 거기엔 물론 세무조사에 대한 반감이 개재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나는 수구언론이 이렇듯 증오스러워 본 적이 없다. 8.15 평양방북단 에 대한 무지막지한 확대 왜곡 기사는 그대들 양심으로 쓴 글인지 묻고 싶다. 수백명 전체 방북단 중 과연 몇 명이나 돌출행동을 했는지. 돌출행동에 대한 처벌은 개인이 감수함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닌지 그리고 백보 양보하여 그들은 지금 인신이 구속된 상태 아닌가.

그대들은 정말로 이번 일이 통일부장관을 경질해야 할 정도의 중대사라고 판단하는가. 그대들은 평소에 그토록 이 사회가 "다른 의견에 대한 관용"이 없다고 부르짖어 왔으면서 어찌하여 무심코 행한 작은 돌출행위 하나에 그런 무지막지한 돌을 던진단 말인가. 그대들이 정녕 이성이 있는 자들인가.

3일날 표결한다구? 그래, 좋다. 떳떳하라. 구차하게 표를 구걸하느니 차라리 당당하게 표결에서 지는 것을 선택하라. 그것이 죽어서 사는 길이 될 것이다. 국민의 대의기관이라는 국회에서 화해보다 대결을 원한다면 그 길로 가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그에 대한 준비도 되어 있겠지. 그리고 그것이 진정 국민의 결정이라면 추후 그로 인해 발생되는 모든 귀결에 대한 짐은 우리 국민이 같이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역사의 죄인이 누구인지. 2001년 9월, 국회에서 그리고 언론에서, 어느 누가 무엇 때문에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을 비추는 햇볕을 가렸는지. 21세기의 한반도 남쪽에서의 '한자동맹'은 얼마나 더러운 동맹인지. 그리고 어떻게 수구언론과 한자동맹이 민족의 앞날을 어둡게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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