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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차는 노래방으로 갈 것이다. 술을 마실 때마다 이 순서는 잘 변하지 않는다. 방이 정해지자 취한 이들은 먼저 마이크를 잡겠다고 난리다. 그 경쟁은 바로 노래선곡으로 이어진다. 반주가 나온다. 마이크를 쥔 사람은 라이브 공연을 하는 가수처럼 한껏 분위기를 잡는다. 나머지는 노래를 고르거나 능숙하게 탬버린을 흔들어 댄다. 나는 어설프게 박수치는 시늉을 한다.


스스로 '바보'가 되어야 뒤끝이 없다

벽에 붙어 있는 '8월 신곡'을 유심히 살펴본다. 내가 아는 노래는 하나도 없었다. 예전 노래를 뒤적거려보기도 한다. 이 사람들에게는 이미 식상한 곡들뿐이다. 사실 나는 노래를 잘 못 부른다. 그저 남이 부르는데 장단이나 맞추고 있을 뿐이다. 내 목소리는 무척이나 느끼해서 감정잡고 부르면 다들 힘들어하는 눈치를 준다. 그러면 나는 가만히 앉아서 영상 속 가사를 음미해보기도 한다. 그것도 참 못할 노릇이다. 2시간 넘게 화장실 가는 것 말고는 박수와 환호성을 연달아 '연기'한다. 가식은 극에 달한다.

이 공간에서 '나'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별 생각도 없어진다. 아니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요란한 기계음이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다들 남의 노래에는 관심이 없다

평소에는 조용하다가 노래방만 오면 마이크를 놓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도 있다. 잠시 그에게로 시선이 집중되어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이 연출되지만 곧 그 열기는 수그러든다. 다른 사람들이 노래를 부를 때는 다들 자기 노래 선곡에 바쁘다. 아는 노래가 나오면 함께 부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남의 노래에는 관심이 없다.

단체라는 욕구가 사람들을 노래방으로 이끌지만 결국 이 곳에서 개개인은 모두 파편화된다. 서로들 필요의 의해 이 공간에 있을 뿐이다. 혼자서 노래방에 가는 경우는 드물다. 자신이 멋있게 노래부르는 모습을 타인에게 '공개'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나같은 음치들은 술 얻어먹고 동원된 관객에 불과하다. 노래 잘 부르는 그들에게 억지로 끌려와 철저히 소외당하면서도 나는 이 공간이 가진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묵묵히 아무 생각 없이 버티고 있을 뿐이다. 모든 노래가 끝나면 애써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를 달랜다.

노래방은 지극히 나에게 폭력적인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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