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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던 지난 2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았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에 고개조차 들기 힘들던 정오 무렵에도 관람객들로 북적거렸던 그 곳.
단체 관람을 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연신 혀를 차며 지난날의 아픈 과거들을 이야기했고 방학을 맞아 자녀들과 함께 온 어머니는 하나라도 더 설명해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30도를 훨씬 웃도는 날씨였지만, 고문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한 지하전시관의 분위기에 등골이 오싹해진 어린이들은 할말을 잊은 듯 했다.
때마침 열린 <일제침략 역사왜곡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역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중간시)

김광섭의 <별>

나는 2223번
죄인의 옷을 걸치고
가슴에 피를 차고
이름 높은 서대문 형무소
제3동 62호실
북편 독방에 홀로 앉아
내가 광섭이냐고
혼잣말로 불어보았다

(중략)

나는 지금 광섭이로 살고 있었으나
나는 지금 잃은 것도 모르고
나는 지금 얻은 것도 모르고 살 뿐이다

그래서 어느덧 눈시울이 추근해지면
어데서 오는 눈물인지는 몰라도
나의 눈물은 이제 드디어
사랑보다도 운명에 속하게 되었다

(중략)

인권이 유린되고 자유가 처벌된
이 어둠의 보상으로
일본아 너는 물러갔느냐
나는 너의 나라를 주어도 싫다

<김광섭> 호 이산(怡山). 함북 경성 출생. 1928년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모교인 중동중학에서 10여 년 간 교편을 잡다가 일제 말 창씨개명을 공공연히 반대하여 3년 8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해외문학>과 <문예월간> 동인으로 고요한 서정과 냉철한 지적 성격의 시편들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고, 그 후의 작품에는 식민지시대의 지성이 겪는 고뇌와 민족 의식이 짙게 나타나 있다.

■ 역사관 길라잡이
▲서대문 형무소가 지나온 길
·1908년 10월 21일 : 경성감옥으로 신축
·1912년 9월 3일 : 서대문감옥으로 명칭변경
·1923년 5월 5일 : 서대문형무소로 명칭변경
·1945년 11월 21일 : 서울형무소로 명칭변경
·1961년 12월 23일 : 서울교도소로 명칭변경
·1967년 7월 7일 : 서울구치소로 명칭변경
·1987년 11월 15일 :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
·1998년 11월 5일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개관

▲ 역사관은 어떤 모습?
지하1층, 지상2층으로 이뤄진 역사전시관은 각각 추모의장(1층), 역사의장(2층), 체험의장(지하1층)으로 구성돼있다. 추모의 장에선 서대문형무소의 설립배경과 변천과정을 입체영상으로 7분간 보여주며, 독립운동사와 관련된 기획전이 연이어 열리고 있다.
역사의장은 민족저항실과 형무소역사실, 옥중생활실로 각각 이뤄져 있으며 강우규의사의 남대문역 의거장면을 매직비젼으로 볼 수 있다. 일제의 고문과 탄압에 관한 실상을 전시한 옥중생활실에는 벽관과 독방을 재현,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와 함께 지하1층에선 일제가 저지른 잔혹한 각종 고문 장면들을 문헌과 고증을 통해 재현, 생생한 역사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외에도 역사관 내에는 유관순열사가 순국한 지하감옥과 7개동의 옥사, 사형장과 추모비 등이 자리잡고 있다. 오는 8월 26일까지 계속될 <일제침략 역사왜곡전>이 열리는 곳이 바로 이 옥사건물.

▲ 어떻게 찾아가나?
여름철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정기휴일은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 다음날. 3호선 독립문역에서 내리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엔 현저동 또는 독립문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입장료는 어른 1,100원, 청소년 550원이며 7세부터 12세까지의 어린이는 220원이다. 문의전화는 (02)363-97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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