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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는 8월 1일부터 '아내를 자랑합시다'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캠페인 특집을 보시고 싶으신 분들은 클릭하십시오. 편집자 주)

아내와 결혼한 지 벌써 11달이 지났습니다. 그야말로 아직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초짜배기 부부입니다. 하지만 깨가 쏟아진다는 여느 다른 신혼부부들과는 달리 우리들은 조금 낯설고 다른 환경에서 지내온 그 동안의 1년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중입니다. 대학원 입학이 조금 늦게 결정되는 바람에 작년 땡볕 더위에서 친구들의 원망(?)을 들어가며 8월 13일에 결혼하고 신혼여행 2박 3일, 그리고 바로 1주일 뒤 24일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남들보다 뒤늦은 나이에 유학을 결심하게 된 것도 아내의 힘과 격려가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비록 힘들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현명한 선현들의 지혜를 무대뽀로 믿고, 서로 사랑으로 의지하며 보다 의미 있는 향기를 지닌 우리의 삶을 엮어가자고 다짐하며 부산의 시원한 바닷바람을 뒤로 한 채 5년 예정의 유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역시 첫 유학생활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더군요. 로스엔젤레스와 덴버를 거쳐 화씨 100도를 웃도는 텍사스에 밤 10시에 도착했을 때 그 망연함. 비행기에서의 새로운 환경에 대한 설레임과 각오는 어느 새 작은 두려움으로 바뀌어 버리더군요.

가을학기 시작 4일 전에 도착해서 우왕좌왕하는 내 모습은 바로 1988년 대학 새내기 시절 수강신청조차 조교의 도움으로 해야만 했던 바로 그 시절의 모습이었습니다. 아파트를 바로 구하지 못해 학교 임시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어머님과 장모님이 싸준 밑반찬으로 아내와 마주앉아 식사를 하면서 말로써 표현을 못했지만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후 어렵게 한국 학생의 도움을 받아 마련한 아파트에서도 미처 가구를 구입하지 못해 종이박스에 밥과 반찬을 올려놓고 먹으면서도, "그래도 미국 와서 밥먹는 게 어디고?"라며 나의 미안함을 감싸주던 아내가 무던히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썩 잘하는 영어가 아니라서 가끔씩 곤혹을 치를 때면 오히려 격려를 해주며, 남들처럼 넉넉한 생활비도 없이 가계부를 적으며 알뜰하게 생활을 꾸려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러웠습니다.

한국에선 직장을 다닌다고 변변한 음식을 해본 적이 없는 아내지만, 한 번씩 식탁에 올라오는 멀건 된장국과 불어터진 만두국도 저에겐 더할나위 없는 성찬이었습니다.

이곳 미국에서 아내는 태어나서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한답니다. 바로 제 머리를 깎는 거지요. Wall Mart에서 산 바리깡으로 집 욕실에서 한 달에 한번씩 작업(?)을 합니다. 비록 처음에는 거의 칠뜨기(?) 수준으로 만들었지만 지금은 프로 수준에 달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과도한 자신감으로 빡빡 밀어 올리는 폼이 불안할 때도 있지만 까칠한 머리 촉감에서 아내의 사랑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 동안 늘으라는 영어실력은 안늘고 음식하고 이발 실력만 늘었다고 놀리기도 하죠.

돌아보면 정말 살같이 지난 1년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 아내에게 볼낯이 생긴 것은 이번 가을학기부터 Assistantship을 받기로 된 것입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지난 1년처럼 서로 믿고 아끼면서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자고 아내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8월 13일은 우리들 결혼 1주년이 됩니다. 결혼 5주년 때 내가 근사한 이벤트를 하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이번에는 그냥 단촐한 식사로 대신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신 이 글을 아내에게 결혼 1주년 선물로 전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마치 룸메이트와 사는 것 같다고 말했던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오히려 나는 평생 동안 서로 어려운 점을 이해하면서 도와주는, 같은 방을 쓰는 친구처럼 살고 싶다고... 사랑하오. 여보.

당신을 사랑하는 유일한 남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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