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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4년 1월 18일 오후 8시 20분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한 늦봄 문익환 목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김대중(현) 대통령의 모습은 비통함 그 자체였다.

통일소녀로 지칭되던 임수경씨와 재야 활동에 앞장섰던 지선스님과 함께 단상에 앉은 그에게 기자가 심정을 물었다. "고인(늦봄)의 삶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김대중 대통령의 대답은 "그의 삶 전부"라고 했다.

1918년 6월 1일 만주 북간도 명동에서 문재린씨와 김신묵씨의 맏아들로 태어난 늦봄 선생은 은진중, 숭실중학교 재학중에 신사참배 거부로 중퇴하는 등의 일화처럼 타고난 양심가였다.

김대중 대통령도 추모사에서 "고인은 1976년 3월 1일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첫 투옥된 이래 1991년 6월 6일 마지막 여섯번째 투옥되기 까지 평생을 민주화와 남북통일에 대한 열정으로 사셨다"고 술회했다.

그 날의 추모사에서 1992년 1월 고인이 노벨평화상 후보가 되었던 사실과 지난 1980년 5월 내란음모죄로 함께 재판을 받았던 사실을 고난사로 읽었을때, 추모객들 중에서 오열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장례식이 끝난 직 후, "이한열 열사여..박종철 열사여,.."를 힘있게 외치는 고인의 생전 육성이 울려 퍼질때 김대중 대통령이 일행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 때 그 장례식에서 그를 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그들이 노벨평화상 까지 수상한 현직 김대중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들이 변했는지, 김대통이 변했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다.

그 때의 이 사진을 보면서 잠시 초심으로 돌아보는 추억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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