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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자들은 때로 필요에 따라 역사에 의미를 부여한다. 공산당 창립 80년을 맞은 2001년 중국은 80년전 7월 1일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전국대표자회의의 역사를 불러낸다.

텔레비전은 다큐멘터리는 물론이고, 드라마, 뉴스, 예술 공연을 통해 중국 인민들의 생각을 80년 전에 상하이가 존재하던 그 시간으로 끌어가려 한다. 거기엔, 갈수록 자본주의화 되고 있는 중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던 초발심을 끌어내려고 하는 순수한 의도만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미 중국 위정자들 내부에서는 필요하면 공산당이라는 단어를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도 적잖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80년 전 상하이를 불러낸 목적이야 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 사회가 있는 이상 권력의 쟁투가 있고, 그 쟁투를 보는 관찰자들은 자못 흥미롭다. 그 흥미로움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식이 중국의 과거(역사)와 현재와 중첩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책여행은 여전히 낙후한 느낌을 피하기 어려운 지앙시 성의 성도인 난창으로 간다. 그리고 난창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중국 현대사의 두 영웅을 생각해 본다.

난창, 퇴락한 느낌을 가진 공산 중국의 고향

지앙시(江西)성의 성도라지만 난창(南昌)은 깔끔한 맛보다는 퇴락하고 있는 도시라는 느낌을 피하기 어렵다. 경제든, 관광이든, 정치든 어떤 특점을 잡아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다른 대도시와 달리 난창은 중국인들에게조차 크게 부각될 요소가 없다. 롱후산(龍虎山), 루산(盧山), 징강산(井岡山) 등 몇 개의 명산이 자리하고 있지만 다른 산들에 비해 사람들에게 각인되기에는 한계가 있고, 도로 교통으로도 베이징-지난-상하이, 베이징-우한-광저우를 잇는 중국 내륙의 주맥에서 떨어져 있다.

난창시는 시의 곳곳에 투자를 유도하고, 도시 발전 기금을 걷는 등 노력을 하지만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난창은 사회주의 중국의 태동에서 큰 몫을 한 중요한 도시다.

공산당의 규모나 역량을 강화시킨 난창봉기가 없었다면 마오쩌둥과 주더, 저우언라이와 같은 인물들이 쉽사리 의기를 투합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난창은 8월 1일 봉기의 주역인 주더(朱德)의 정치적 고향이고, 중국 현대화의 영웅인 덩샤오핑이 문화대혁명 때 하방되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던 곳이다.

사실 인물형으로 보면 중국 현대사에서 주더 만큼 극적인 삶을 산 인물이 드물다. 또한 그는 매력적인 인물형이기도 하다. 덩샤오핑의 삶도 주더만큼이나 복잡하지만 덩의 삶이 주는 느낌은 주더와 달리 너무나 평온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덩샤오핑의 삶 역시 주더의 삶에 못지 않은 맵고, 시다. 그 두 중국 현대사의 영웅들은 43년이란 시간을 두고 난창이라는 도시에서 공존했다.

두 사람의 난창생활은 새로운 부상을 위해 잠시 엎드려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복구자필비고(伏久者必飛高 오래 업드린 자는 반드시 높게 난다)라는 말처럼 그들은 좀 더 큰 비상을 준비했다. 그 길에 덩 샤오핑을 위해 그의 딸 등용이 쓴 불멸의 지도자 등소평을 동행해 본다.

난창의 영원한 영웅, 주더

도시의 가운데 크고 나른한 깐지앙(江)이 흐른다는 특점을 제외하면 금방 잊혀질 것 같은 도시인 난창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팔일(八一)이다. 중국 축구팀의 이름 등 갖가지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팔일이라는 숫자의 기원은 난창시의 중심거리인 런민(人民)공원과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난창의 대표적인 광장인 이곳에는 팔일남창기의기념탑(八一南昌起義記念塔)이 솟아 있다.

공산당과 국민당의 헤게모니 싸움에 극적인 전환점이 된 시안사변에 못지 않은 팔일봉기는 20년대 초반 독일로 유학갔다가 중국에 돌아와 국민당의 장교훈련연대를 지휘했던 주더와 저우언라이(周恩來) 등이 주인공이다. 주더는 면밀히 공산 봉기를 계획했지만 봉기는 실패로 돌아간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징강산(井岡山)으로 피신하고, 여기에서 마오쩌둥을 만나게 된다. 주더로서는 독일 유학 중에 만나 공산주의를 전파받게 된 계기가 된 저우언라이와의 만남 못지 않은 이 상봉은 결국 홍군(紅軍)의 현대화를 가져오고, 대장정 및 중국공산화의 기틀을 마련한다.

쓰촨에서 부유한 광동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마약과 여자를 탐닉하던 한량이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유학과 공산당 지위자를 거쳐, 1927년 징강산 회군에서부터 중국 홍군의 최고사령관을 지낸 주더의 삶은 그 자체로 깊은 흥미를 자아낸다.

팔일기념관의 가장 큰 주인공도 주더였다.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봉기기념전시관의 전시장의 중앙에는 ‘중국 군기가 일어난 곳’이라는 장쩌민의 글씨가 도드라진다. 이곳에는 당시 주인공들의 기록은 물론이고, 그 과정이 삽화로 잘 소개되어 있다. 물론 그 가운데 가장 도드러지는 그림은 마저쩌둥과 주더가 징강산에서 조우하는 징강산회사(井岡山會師)다.

주더가 국민당의 일원으로 장교를 교육하던 곳도 주더군관교육단으로 보존되어 그때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었다.

난창의 아픈 기억, 덩샤오핑

주더를 통해 난창은 중국 현대를 낳았던 반면, 중국 현대의 가장 안타까운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하다. 바로 덩샤오핑이 광기의 역사인 문화대혁명 시기에 이곳 난창 근처의 작은 변두리 마을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그리고 그 가장 생생한 기록이 바로 덩샤오핑의 딸 등용이 출간해 최근에 한국에도 번역된 나의 아버지 등소평이다.

이제는 중국 언론이나 학계의 공공연한 비판의 대상이 된 문화대혁명. 이 문화대혁명에는 수많은 함수관계들이 있다. 가장 큰 축은 대약진운동의 한계를 인식하고 개방을 잠진적으로 추진하려하는 류샤오치와 사회주의의 좀 더 철저한 추진을 꾀하는 마오쩌둥의 갈등.

또 류샤오치에게 후계구도를 빼앗기는 것을 부담스러워한 린비아오의 권력 쟁투 등이 광범위하게 확대된 것이다. 린비아오와 거기에 융합한 사인방의 횡포는 걷잡을 수 없었다. 거기에 통제하기 어려운 청년과 어린 홍위병(紅衛兵)들이 거리로 나오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흘러갔고, 10년 동안 중국 대륙을 황폐하게 했다.

특히 류샤오치나 덩샤오핑은 물론이고 공산 중국의 건설자인 주더나 하룡장군 등의 모두 홍위병 앞에서 참담히 유린되는 사태를 빚고 말았다. 덩샤오핑은 당내 제 2의 주자파란 명목으로 지앙칭(江靑) 등 사인방의 표적이 됐다. 특히 덩 샤오핑의 당적을 박탈하지 못할 경우 복권을 두려워한 이들 때문에 집중적인 타겟이 됐지만, 허점을 노출하지 않는 덩의 삶과 당적 박탈을 바라지 않는 마오쩌둥의 배려로 그는 목숨과 당적을 보유하게 된다.

기자가 태어났던 시각인 1969년 10월 22일 이른 아침 덩샤오핑과 부인은 지프에 실려 베이징 사하비행장을 출발해 난창에 닿는다. 책은 도저히 감출 수 없는 감정적인 분노를 전제로 해서 당시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풀어간다. 덩샤오핑의 딸이 저자이기도 하지만 지금 그 당시를 풀어내는 지식인들의 감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특히 문혁의 과정에서 베이징대학 조반파에게 추궁을 받다가 견디지 못하고, 건물에서 떨어진 덩의 큰 아들 박방의 이야기를 비롯해 자신들이 겪어야 했던 문혁의 기억을 상세히 풀어낸다.

그 가운데도 의연함을 잃지 않은 덩 샤오핑의 평정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기자는 난창에서 덩샤오핑의 흔적을 그다지 발견하지 못했다. 사방에 팔일봉기와 주더의 모습이 그려진 그곳에서, 사실 아픈 기억 밖에 없는 덩샤오핑이 감춰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황폐된 땅에서도 사랑은 피고

하지만 모두에게 그 땅은 절망의 땅은 아니었다. 당연히 어린 나이로(등용은 50년생이고 문혁은 20세를 중심으로 다녀갔다)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그 사이에도 수많은 꽃이 피고 졌고, 저자인 등용에게도 사랑의 꽃이 폈다. 등용은 72년 문혁의 중반에 2개월 동안 편지로 연락하던 하평을 난창기차역에서 만난다. 그들에게는 난창이 낭만의 도시일 수 있으리라.

린비아오가 반란을 꿈꾸다가 실패하고 망명하다가 비행기가 추락해 죽었지만 아직 그 광풍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등용이 하평과의 사랑을 이루고, 광풍이 사그러들면서 징강산(井岡山)을 여행하고, 74년 여름에는 베이징으로 돌아온다.

다음은 덩샤오핑과 가족은 안정을 찾고, 중국 현대사의 핵으로 떠오른다. 덩 샤오핑의 4년여가 넘은 난창 생활은 악몽이었을 것이다. 특히나 등용의 기록처럼 난창의 겨울은 북방의 그곳도 다른 뼈 시린 고통이었을 것이다.

이후에도 난창의 발전은 더뎠다. 난창이 내세우는 문화재는 텅왕거, 칭윈푸, 셩진타 등 우리에게 생소한 곳이다. 텅왕거는 깐 강의 강변에 위치하며, 역사가 오래되고 꽤 유명한 곳으로 시지앙(西江) 제일의 건축물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고, 칭윈푸(靑云譜)는 오랜 역사를 가진 아름다운 도원이지만 먼 걸음을 하게 할 동기는 되지 못했다.

덧붙이는 글 | -책소개 <불멸의 지도자 등소평> 오류 문혁에 대한 통열한 비판서
등용은 중국 공산화가 막 완성된 50년 쓰촨의 충칭에서 태어났다. 중난하이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다가 막 사춘기 무렵에 문화대혁명을 만나게 되고, 거대한 골짜기를 들어갔다가 나온다. 그리고 그 골짜기에서부터 마오쩌둥이 사망한 시간까지의 기록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이 인상적인 것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애증, 그리고 저우언라이의 말년의 의연함, 그리고 1976년 4월 25일 천안문 사태의 상황 등 문혁을 중심으로 해 당시의 권력투쟁과 흐름을 만날 수 있다. 
이야기 자체가 극적인 삶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가독성이 있다. 다만 편의 때문인지 한자발음을 그대로 발화한 표기나 번역에서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종종 눈에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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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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