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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면 '데오도란트'는 참으로 획기적인 것이다.
갑자기 웬 데오도란트냐고?

데오도란트란 영어로 deodorant, 방취제란 뜻이다. 냄새를 없애준다는 이 데오도란트는 가장 흔하게 겨드랑이 냄새를 없애주는 일종의 화장용품으로 불린다. 기분 나쁜 암내를 없애주는 데오도란트, 얼마나 획기적인가?

처음 데오도란트를 구경한 것은 영화를 통해서였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데오도란트를 바르는 녀석을 본 것은 98년 여름, 더치(Dutch) 친구인 캐더린이 아침에 샤워를 마치고 방에 들어왔을 때였다.

그녀는 모기나 파리를 잡는 스프레이같이 생긴 것의 뚜껑을 열더니 갑자기 한쪽 팔을 들어올리면서 "췩~~" 오른쪽에, "췩~~"하고 왼쪽에 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이란, 아주 시원하고 상쾌해보이는 그런 것이었다.

그 이후로 깨달은 것은 데오도란트가 냄새를 없애줄 뿐더러, 땀이 많은 여름철에 땀이 난 부위를 더욱 뽀송뽀송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었다. 동양인보다는 더위도 많이 타고 땀도 많은 서양인들에게 데오도란트는 사계절 필수 화장용품인 것이다.

그 날로 슈퍼마켓에 가서 진열된 데오도란트를 보니, 종류가 수십 가지였다. 뿌리는 스프레이식 데오도란트, 부드럽게 바르는 데오도란트, 굴리는 젤타입 데오도란트, 가루분 데오도란트... 거기에 모든 데오도란트는 남녀가 구분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For Woman', 'For Man'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라일락 향, 장미 향, 백합 향, 베이비 향 등을 비롯, 유명한 화장품 브랜드에서 나오는 향수라인에도 데오도란트가 판매되는 것이었다.

현재 한국의 한 화장용품 회사에서 TV 광고를 통해 데오도란트를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한 여자가 소매 없는 옷을 입고 데오도란트를 하지 않은 날은 엘리베이터에 타지 못하고, 데오도란트를 한 날은 자신있게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이다.

사람들의 겨드랑이에서 나는 암내가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지독한 냄새도 데오도란트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동물적 암내가 풍길 때는 현실적으로 자신감을 잃고, 화학이 풍기는 아름다운 향을 입은 후에야 현실적 자신감을 찾는 현대인의 모습은 어느 정도 진실성이 결여되어 보이기도 한다.

이왕이면 겨드랑이에서 암내가 아닌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것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데오도란트에서 나는 향기가 그 사람의 진짜 냄새일까? 내 겨드랑이가 화학적 성분에 의해 다른 겨드랑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술가 권오상 씨의 <데오도란트 타입>은 바로 그런 질문에 관한 전시회이다.

암내를 제거하는 화학약품인 '데오도란트'와 사진술에서 화학적 반응에 따른 분류를 나타내는 '타입'이란 단어를 합성한 그의 전시회 <데오도란트 타입>은 밑에 숨겨진 어떤 사실을 화학적 조작을 통해 은폐하고 위장하며 전혀 다른 맥락으로 만드는 그의 작업을 가리킨다.

그는 사진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3차원의 조형물을 만들었다. 그에게 있어 사진이란 현실에 대한 명백한 증거물로 이용된다. 하지만 권오상의 작품에서 시간의 파편인 사진은 하나의 입체를 구성하며 사실과 다르게 조작된다. 권오상은 특정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또 다른 냄새를 이용하듯이 시간과 현존의 파편인 사진을 조작해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전시장에서는 하얀 가운을 입고 망원경을 보고 있는 중년의 여자와 하얀 봉고차, 뒤엉켜 있는 샴 쌍둥이, 공중에 떠 있는 우주인과 이를 바라보고 있는 개 그리고 작은 바위덩어리들이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상호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관객들은 만개의 눈으로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서 사진의 눈과 조각의 공간을 의심하게 된다. "내가 보는 게 현실 맞아?"

<데오도란트 타입>은 정보와 이미지가 넘쳐나는 인터넷 시대에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이 정작 어디까지이며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지,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부분만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암내야? 데오도란트야?" "어떤 게 진짜야?"라는 생각을 소매 없는 옷을 입고 출근하면서 잠깐 해봤다.

덧붙이는 글 | <전시회 안내>

- 전시기간  : 2001년 6월 20일(수) - 7월 1일 (일) 
- 전시장소 : 인사미술공간 ( 인사아트센터 3층 tel: 760-4720-4 )

* 권오상은 홍익대학교 조소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보다갤러리의 그룹공모당선전인 '교란'전 외에 공장미술제, 공동묘지 프로젝트등의 전시를 통해 작품을 선보여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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