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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익그룹이 만든 교과서 내용이 한일 양국간의 외교문제로 불거지면서, 분노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져가고 있다. 초기엔 일본 내 관련사이트에 대한 네티즌들의 집단 접속 등 민간인들 위주로 대응하다 최근엔 수정 요구 부문을 일정부에 통보하기로 결정하는 등 그 양상도 점차 발전하는 모습이다.

그럼, 정작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일본 내 분위기를 보자. 지난 19일 보수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에 대해 "지금까지 교과서가 7종류 있었다고 해도 모두가 대동소이의 내용이었다. 여기에 다른 취향의 교과서가 한 종류 더 생겼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의 역사교육 방향으로 기본적으로는 환영해야 한다"며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워싱턴포스트도 "일본의 새 역사 교과서는 개선되고있는 한일 관계를 깨도록 위협하고 있고 중국과 북한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그러나 일본의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은 모든 국가는 역사를 그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일본 문부성은 그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일본인의 자기투영

이런 점에서 막연히 분노로 일관하기보다는 일본인들이 과거사에 대해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35년전인 지난 66년, 일본외교관으로 폴란드 대사를 지내기도 했던 하기일랑(河崎一郞)의 저서를 번역한 <추악한 일본인>(영문원제:Japan Unmasked, 금란출판사)은 그들의 역사인식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 전의원은 세계통신, 서울신문, 경향신문을 거친 언론인 출신으로 9, 10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저자 하기일랑은 이 책 서문에서 "일본인으로서 객관적이면서도 또한 양심적으로 일본을 그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며 "그러나 국가간의 상호이해는 솔직과 진실을 기반으로 해서 비로소 촉진되는 것이지 왜곡과 위선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갖는 강렬한 확신이다"고 표명했다.

지난 74년 이 책을 번역, 우리나라에 소개한 정전의원도 "우리 사회 각층에는 흔히들 일본통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 많지만 설익은 관찰대에서 탈출을 기도하지 못한 과오를 우리는 솔직히 시인해야 한다"며 "일본인의 정체를 정확하게 봄으로써 떳떳한 '탈일본'을 선언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전의원이 경향신문 주일특파원으로 일할 무렵 '국치 선언문'이라는 비판과 추악한 일본인 상을 바로 잡게 한 국민적인 '반성교본'이라는 상반된 평가속에서 일본출판사상 톱을 기록한 베스트셀러가 바로 이 책이다.

일본인 자신이 거울 속에 반사된 자신의 자화상을 에누리 없이 고스란히 옮겼다는 사실이 <추악한 일본인>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게 역자의 말.

일본과 폴란드

일본인의 역사의식과 관련, 눈길을 끄는 몇 가지 대목을 살펴보자. 저자는 일본인의 한 특질로 쉬 흥분하고 쉬 냉담해지는 기질을 꼽는다.

예를 들어 제2차 대전 말기 일본열도에 투하된 원자폭탄 투하는 일본 전 국민을 분개시켰지만 이 역시 잠깐이었다는 것.

특히 폴란드에서 외교 생활을 한 저자는 나치 독일의 잔학행위에 대한 폴란드인의 공포와 증오가 얼마나 격렬하게 살아 남아 있는지를 일본과 비교하면 일본인의 건망증은 참으로 대조적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일본인 특질 중 하나인 조상 숭배 풍습을 지적하는 부분에서 "태평양전쟁이 끝나자 줄곧 일본 정부는 태평양상의 여러섬에 매장된 일본군의 위령을 목적으로 미국, 중국, 소련 그리고 몽고 등의 각국 정부와 절충을 계속해 왔다"며 "이 옛 전쟁터에 유족이 방문하는 문제는 국민적 요구로서 매우 강하며, 중요한 정부외교정책의 하나로 되고 있다. 일본정부는 이들을 위해 여행의 안전확인과 보조금을 지출하고 있는 것"이라는 대목은 실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파악된 강제연행 숫자만 100여만명이 되는 실정에서 정작 피해국임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끝내지 못한 우리와 상당히 대조되기 때문이다.

더욱 위험한 것은?

이어 저자는 일본인 특유의 성격으로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 하는 점을 지적한다. 지난 48년 항복 후 미군에게 점령당하게 되자 '항복'이라든가 '점령군'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종전' '진주군'이란 말을 사용한 것에서 본래의 의미를 왜곡하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

몇 해전 우리에 대해 '사과'라는 직접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통석의 념'이라는 말로 교묘히 넘어간 것도 바로 이런 일본인의 정신구조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전후 피해국과의 보상 문제에 대한 하기일랑 대사의 시각도 명확하다. 그는 이 책에서 "종전 직후 수년동안 일본은 전쟁의 직접 피해국-필리핀, 미얀마를 비롯, 그 뒤 한국도 포함-에 대해 배상협정을 체결했으며, 반면 그 지불을 통해서 아시아 여러나라들과의 교역의 돌파구를 열었다"고 분석했다. 일본인을 비판하는 그 조차도 한일 피해보상은 일단락 됐다고 평가한 것이다.

이런 시각은 "태평양 전쟁 중 일본군은 아시아 각지에서 다른 외국 점령관이 보인 행동이하로 굴지는 않았다. 전쟁 당초 아시아 각국은 유럽의 식민지 지배자보다 일본군을 환영했었다는 사실은 상상되고도 남았다"며 "일본인 현지 행정 당국이 존경과 사랑을 얻어내지 못한 것은 현지인의 심리를 파악못했기 때문이다"는 대목에서도 일면 엿볼 수 있다.

그는 이런 태도의 이유를 지위가 높은 층에 열등감을 갖고 낮은 층에 우월감을 갖는 봉건주의적 미덕 때문으로 돌린다. 일본인은 유럽 사람이나 미국 사람에게 열등감을 갖는 대신 아시아 민족에 대해선 우월감을 갖고 때론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는 것.

이와함께 "일본인이 육체적으로 다른 아시아 민족과 비슷하다고 해서 일본인이 항상 올바르게 그들의 심리를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다. 일본인에 대한 이웃나라 사람들의 심리에는 친근이란 있을 수 없고, 다만 경계하는 생각이 있을 뿐이다"며 "좀처럼 쉽게 잊어버릴 수 없는 전시중의 원한과 적개심은 그만 두고라도 섬나라 근성의 일본인은 가끔 아시아 선린들의 감정을 이해 못하는 짓을 한다"는 하기일랑의 비판은 현 시점에서도 많은 것을 던져주고 있다.

어쩌면, 이번 교과서 왜곡 파문도 바로 그 '이해할 수 없는 그것'이자 '아시아에 대한 오만 불손한 태도', 그리고 '과거 행위에 대한 건망증'의 발로일지 모른다.

최근 통외통위에서 일본 교과서 문제를 다룬 장성민 의원 관계자는 "일본 고위관료가 '독도는 우리땅'이라며 망언을 한 뒤 물러나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전략적인 것임을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며 "특히 일본이 최근 'UN안전보장이사회'에 가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고 지적했다.

일본 극우 보수 세력의 최근 행보를 단순한 '우월감'의 표현이라고 하기엔 그냥 넘어가기 힘든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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