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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 극우세력이 만든 교과서 왜곡 파문이 점차 커지고 있다. 여야 모두 간만에 한 목소리를 내며 정부에 강경 대응을 촉구하고 있고, 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단식농성까지 끝마친 상태. 그러나, 일각에선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우리 정부의 외교력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김종필 명예총재가 사전 예방차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그 영향력은 미비했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무능력도 문제시되고 있다.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일본. 그간 정치인들이 대일문제와 관련, 얼마만한 준비를 했는지 그 단초를 제공할 수 있는 저서들을 살펴봤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저서에서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분야는 정치·통일에 관한 것이다. 이와 함께 대외문제를 다루는 책들도 드문드문 발견되지만, 그 대부분은 미국에 관한 것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학자 출신의 정치인들에 의해 러시아나 중국 문제가 다뤄지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정작 36년 통치의 가해자였던 일본에 관해 쓰여진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해방 후 결성된 '반민특위'의 해체 과정은 왜 우리 정치권이 대일관계를 거론하는 것을 꺼려했는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공영권 꿈꿀지도

일본의 교과서 왜곡을 이야기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근현대 문제가 그 하나고, 또 다른 하나는 '임라일본설'로 대표되는 고대사 논쟁이 그것이다.

4대 민의원을 지냈으며 아남그룹 명예회장과 대한민국 헌정회장을 역임한 김향수 전의원의 <일본은 한국이더라>(문학수첩)도 이런 고대 역사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95년 발간된 이 책은 '일본 건국과 역사의 비밀을 찾아서'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한반도 문화의 일본 전파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국보 83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일본 국보 1호인 '보관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소재만 다를 뿐 형제처럼 닮았다는 그의 지적이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김 전의원은 "일본 건국의 뿌리가 가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주인정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며 "동질의 역사성을 갖고 있는 한일 고대사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 양국의 우호증진과 상호협력체제 구축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다"고 발간 취지를 설명했다.

책이 발간되기 전인 94년 5월, "태평양 전쟁은 식민지 해방을 위한 것이며, 남경대학살 사건은 조작극이다"고 망언한 나가노 시게토 당시 일본 법무상에 던지는 비판도 현재의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일본내에 양심적인 대다수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발언이 정부를 대표하는 핵심관료에게서 나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일부 인사들의 몰지각한 행동은 막강한 군사력과 세계 경제를 주도해가고 있는 경제력에서 배태되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전의원은 일본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여 자위대를 재무장함으로써 경제대국과 군사대국이 되어 또 다시 세계공영권을 꿈꿀지 모른다는 우려도 숨기지 않았다.

군벌정치와 군 정치개입

한나라당 강창성 의원(14,16대)이 지난 91년 발간한 <일본/한국 군벌정치>(해동문화사)는 또 다른 면에서 일본을 바라본다. 그는 이 책을 쓰게 된 취지에 대해 "무엇보다도 군이 정치 전반에 개입하게 되면, 종국엔 군도 파괴되고 나라도 망한다는 교훈을 결론으로 제시하고 싶었다"며 "일본의 군벌정치와 일본 식민통치의 영향을 받았던 한국에서의 군 정치개입은 상호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자민련 구천서 전의원이 하마다 고이치의 저서를 번역한 <일본을 망친 9인의 정치가>(지식공작소, 94년)도 일본 정치계의 속성을 아는데 유익한 책이다. 중의원과 중의원 예산위원장을 역임했던 하마다 고이치는 이 책에서 "일본이 엄청난 경제적 부를 이루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지만 정치적 부정부패로 인한 국가 경영의 비효율 때문에 국가발전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며 자신을 포함한 9명의 정치가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다케시타 노보루, 미야모토 겐지 등 일본 정가를 주름잡던 정객들이 여기에 포함돼 있다. 이책을 번역한 구 전의원도 "금권과 결탁한 일본 정치인들이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의 대립속에서 펼치는 이전투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자신을 포함한 현역 정치인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서슴지 않은 고이치의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정치인들이 번역한 일본 관련 저서엔 한나라당 이부영 부총재가 지난 86년 발간한 <히로시마의 증인들>(분도출판사)도 있다. 존 허시의 책을 옮긴 이 책은 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에서 운 좋게 목숨을 건진 여섯 사람의 변화된 삶과 불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일본 현지 시각으로 정확히 1945년 8월 6일 아침 8시 15분,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터진 바로 그 시각에 동아주석 공장의 인사과 직원인 사사끼 도시꼬 양은 그 때 막 공장 사무실의 자기 자리에 앉아서 옆자리의 여직원에게 말을 걸려고 고개를 돌리던 참이었다...... 폭탄이 투하된 지 1년 후 사사끼 양은 불구자가 되었다'는 식의 서술은 보는 이들에게 원폭 이후의 참혹한 상황과 이를 받아들이는 일본인 특유의 기질을 잘 전달하고 있다.

교과서 왜곡 논란이 전 사회적으로 파급되면서, 또 하나 불거지고 있는 문제가 일본내에 있는 한국사 연구자수가 우리의 그것을 훨씬 앞서고 있다는 점이다. 감정적인 대응에 앞서 이성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

정치권 역시 막연하게 강경 대응만을 주문하지 말고, 왜 이런 시도와 망언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지 본질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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