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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유철
<오마이뉴스>는 4월23일부터 약 한달간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 200여개 환경 사회단체와 종교단체들의 연대체인 '생명평화연대'(상임대표 문규현 신부 등 6명)와 공동으로 '생명의 땅, 새만금 살리기' 캠페인을 벌인다. <오마이뉴스>는 이 기간동안 새만금 현지 르포, 해외 갯벌 보존 현장 소개, 해외 저명인사 이메일 인터뷰, 사회 각계인사 릴레이 기고 등 다양하고 심층적인 기획기사를 내보낼 예정이다. 그 첫 기획으로 지난 4월 14,15일 양일간에 걸쳐 취재차 새만금에 다녀온 임유철 뉴스게릴라의 동영상을 내보낸다.-편집자 주

새만금의 봄

천혜의 자연, 새만금 갯벌에 거대한 인공의 둑이 건설되기 시작된지 10년. 서해안 시대를 여는 장밋빛 청사진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고, 황폐해져가는 이 갯벌에 뒤늦게 봄이 찾아왔다.

산과 들은 이미 진달래 산천인데, 겨우내 뻘속에 웅크렸던 새만금의 게들을 이제서야 느즈막히 기지개를 켜고 뻘밭에 나와 부지런히 집게발을 움직인다.

하지만 갯벌의 봄은 예전같지가 않다. 물막이 공사로 물길이 바뀌 뒤 '물반조개반'이라던 갯벌에서의 조개 수확량도 눈에 띄게 줄었다. 고기잡이도 영 신통치 않다.

그뿐인가. 우리나라 최대의 철새 도래지 새만금. 새만금 간척사업은 어민들의 삶 뿐만 아니라 철새들의 삶의 터전도 위협하고 있다. 갯벌을 박차고 비상하는 도요새 무리들. 올 봄에도 어김없이 이곳을 찾은 이 무리들은 아마 새만금에 드리워진 환경 재앙의 암울한 그림자를 눈치채지는 못한듯하다.

그래서 갯벌에서 만난 새만금의 계화리 아주머니의 표정도 밝지 않다.

“물이 세게 들어왔다가 세게 나가야 하는디, 이래서 되간유, 양식장도 없고 이젠 이런게(조개나 게) 생기지 않잔유”

하루 5시간, 허리굽혀 작업해도 2만원을 벌기 힘들다는 아주머니. 그는 간척사업에 혀를 내둘렀다. “막으려면 얼른 막아버리고, 안 막으려면 말아버리고...”

손에 쥐는 것이 없어도 갯벌에 나올 수밖에 없는 어민들, 서울에서 노동일을 했다던 아들(김혁수 40세)이 고향을 찾았어도 그리 반길 수만은 없는 새만금이지만, 오늘 낙향한 아들을 데리고 백합을 따러나온 변치윤씨의(70) 표정은 밝았다.

"심심하고 한푼이라도 벌어쓰라고, 처음으로 데려왔어."(변치윤)

"저는 처음 나왔어요. 서울에서 노동일을 했어요. 노가다요. 이곳 갯벌일도 힘드네요. 어머니는 참 잘하시는데, 벌써 한 바구니를 캐셨어요. 저는 이제 반 바구니를 캤어요."(김혁수)

"처음 이사와서만 해도 여기 생합(백합)이 바글바글 해갖고, 그때는 경운기도 안다니고 걸어다녔어. 이제 이렇게 안나오니까 힘들어유."(변치윤)

허리한번 펼수 없이 갯벌을 캐다보면 어느새 바닷물이 들어온다.

'백합 따기 여왕'이 식당을 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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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만금의 봄
ⓒ 임유철


새만금의 자랑인 백합. 백합 따기 여왕으로 불리는 이숙자 아주머니는 이제 더이상 경운기를 타고 벌에 나가지 않는다. 해태(김)양식을 하다가 이제는 조개잡이 아내를 위해 배를 타는 남편 박기준 씨와 함께 멀리 백합이 많은 곳을 찾아 나선다.

1년 365일 갯벌이 가져다 주는 풍요로움이 떠나간 후, 이숙자 아주머니는 식당을 열어야 했다. 새만금 사업이 시작한 6년 후부터 말이다. 갈수록 귀해지는 백합이 여왕님의 손맛을 더해 그 맛이 일품이다.

"이 마을은 시골이지만 300가구가 넘는 큰 마을이었어요. 이장도 6명이나 되었고요. 이제는 다 떠나가고 없죠. 빈집들도 점점 늘어갑니다."(이숙자)

태어나서 줄곳 고향을 지키고 있는 숙자 아주머니. 그는 "고향을 떠난 초등학교 동창생들이 만들어준 감사패를 보며 가끔은 어릴적 친구가 그립다"면서 "남편과 1년차의 동창생이며, 아들, 딸들이 모두 집앞의 의복초등학교를 나왔는데, 모교가 폐교가 되었을 때가 가장 마음이 아팠다"며 금새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학교 앞은 가기도 싫어요. 운동장에 잡초들이 무성하고 교실의 유리창이 깨어져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찟어진다. 딸아이가 동창생들 사진을 확대해서 가져왔을 때, 너무나 기뻤다. 하지만 그 친구들도 폐교되고 나서는부터 소식도 멀어진다."

새만금 갯벌을 운동장 삼아 뛰어놀던 친구들이 어느새 학부형이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등졌고, 이제 기억 속의 학교는 더이상 남아있지 않다. 어쩌면 새만금도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지 모르는 일이다. 단 10년사이에 고향의 봄은 참 많이 변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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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만금의 봄
ⓒ 임유철
"갯벌이 죽으면 사람도 죽어요"

새만금간척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해창갯벌에선 환경활동을 위해서 새만금을 찾은 단국대 학생들에게 자연과 생명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신형록씨(생명과 평화 대표). 학생들은 한마디를 놓칠 새라 메모하기 바쁘다.

"갯벌은 어민들과 공동체입니다. 어민들은 갯벌의 생명들을 보호하고 기르는 어머니과 같은 존재죠. 갯벌은 그런 어머니에게 365일동안 노동을 제공합니다. 땀흘려 일하는 사람에게는 무한대의 풍요를 안겨주는 것이 새만금 갯벌이죠. 사람과 갯벌이 분리되면 사람도 죽고 갯벌도 죽습니다.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는 갯벌과 사람이 하나되는 생명의 운동이죠."

새만금에서의 1박 2일. 지금 새만금에선 바다가 죽어가고 갯벌도 죽어가고, 마지막 남아있는 마을 공동체도 차츰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 새만금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죽어가는 새만금을 살리기 위해 나선 사람들. 정부는 이들의 요구에 어떻게 화답할까.

새만금과 한 어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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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방조제 남쪽 5km 격포항. 이곳 어민들은 돋게, 꽃게, 쭈꾸미, 왕새우 잡이를 하면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새만금 간척 사업이 시작된 뒤 배를 띄우는 것조차 시큰둥해한다. 고기잡이가 시원치않기 때문이다.

"겉보기에 뭐 물이 굉장히 맑다고하고 어느 교수는 수질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하던데...근데 바닥이 썩어가는데 뭐... 나무도 땅이 살아야 사는 거 아닙니까? 땅이 썩어 있는데... 산란터도 잃어버리고, 고기가 살 수가 없죠."(윤송길씨/어부,37세)

새만금 간척사업 토론회에 참석했던 어느 교수가 하는 말을 듣고, 격포항에 와서 하루만이라도 고기를 잡아보고나서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송길씨.

1년에 들어가는 어구 값이 2000만원. 거기에 기름 값, 미끼 값을 빼면, 나흘마다 바다에 나온 송길씨의 일당은 5만원 정도이다.

결국, 그는 생계를 위해 고향을 떠날 결심을 했단다.

"정부에서 융자해 주고 뭐하고 하는데, 못갚으면 바로 빚으로 집 날아가고, 가정 파탄나고 그러니까... 시골에서 산다는게 가진 자들한테는 평화로운걸지 몰라도 없는자들 한테는 점점 더 갈수록 각박해지고, 뭐 주위 돌아볼 시간적 여유도 없구요...고향을 떠나 그냥 잡일이나 할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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