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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망쳤다.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애틀랜타 통신원으로 오늘 처음 리포트를 했는데 말이지. 몇분 되지도 않는 데 시간이 지날수록 촌스럽게 떨리긴 또 왜 그렇게 떨리고 긴장이 되던지 하여간 정신없이 지나고 보니 망쳤다는 말이 딱 맞다.

미국의 초등학교 사교육에 대해 방과후 교육과 악기나 체육활동 내용, 그리고 정부 지원 프로그램 등이 있는지에 대해 내가 여기서 살면서 경험한 사례를 중심으로 간단하게 리포트를 해달라고 했는데 준비하다 보니 뭐 그렇게 할 말이 많던지 정신없이 길어지는 거야.

그 내용을 줄이기 전 처음 초고 그대로 여기에 실으려고 해. 왜냐면 오늘 한나절을 여기다 다 썼는데 5분에 끝내기는 너무 아까워서.^^

1. 지금 애틀랜타는 저녁 다섯 시 삼십분 이지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한참 숙제하고 공부할 시간일 것 같은데 거기 아이들은 어떤가요? 맞벌이 부부가 대다수인 미국의 방과후 교육 시스템은 어떻습니까?

- 네, 저도 그렇구요, 제 주변에도 90%가 일하는 엄마들이에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은 보통 두 시 반에서 세시 반 사이니까 직업을 가진 엄마들의 가장 큰 고민이 바로 아이들 방과후 교육 문제지요.

엄마들이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지역의 사설 데이 케어센터(Day Dare Center)입니다. 데이 케어 센터는 영아부터 여기 아동보호법에 따라 혼자 집에 있을 수 있는 나이인 13세 미만의 아동들을 돌봐 주는 곳입니다. 오전에는 유치원도 함께 운영하며 등교전과 방과후의 아이들을 맡아 줍니다. 가격은 한 달에 3백 달러에서 4백 달러 정도 들어요. 만만치 않은 돈이지요.

요즘은 아예 학교에서 방과후 교육을 해 주는 곳도 생겼어요.
그렇다고 공립학교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은 아니구요. 대행업체들이 방과후 교육을 필요로 하는 학교의 시설을 이용해 일종의 방문 지도를 하는 거지요. 우리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도 지난 학기부터 이런 프로그램이 생겼는데 가격은 사설 데이케어 센터보다 훨씬 쌉니다. 한 주에 40달러면 되거든요.

그런데 이런 방과후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엄마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 날의 숙제를 지도해 주는 것 이상의 교육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2. 그런 데이 케어 말고 양질의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어떤 곳이 있습니까?

- 예, 여기도 역시 학원과 개인 과외가 있습니다.
산수와 영어 두 과목 정도를 택해 학원을 이용하면 학원에 따라 한 달에 2백 달러에서 4백 달러 정도가 들어요.
개인지도를 받을 경우에는 보통 한 시간당 최소 20달러에서 50달러까지 합니다. 아주 비싸지요. 물론, 그룹과외를 받을 경우에는 이보다 비용이 조금 덜 들긴 합니다.

학원과 개인지도 외에 학교에서 방과후에 선택적으로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도 있어요.
이것도 일종의 방문지도 프로그램인데요. 아까 말한 방과후 프로그램과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전문교육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거든요.

예를 들면 스페인어나 예절 교육 같은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쳤으면 좋겠다는 학부모들의 요청이 있으면 학부모 교사회의에서 내용을 검토해 해당 전문 사교육 기관과 학교가 계약을 맺고 학교 시설을 이용해 전문적인 사교육을 제공하는 거예요. 물론 이럴 경우에 비용은 일반 사교육 기관을 직접 찾아가는 것보다는 조금 쌉니다.

3. 음악이나 미술 같은 특기 교육도 물론 한가지씩 하겠지요?

미국인들이 사교육을 선택하는 방법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학교 교육이구요, 그 다음이 지역 사회 체육 프로그램과 사회 교육 혹은 봉사 프로그램입니다. 그 다음에 조금 재정적인 여유가 있고 자녀가 특기에 재능이 있거나 관심을 보일 경우 예체능 개인 레슨을 시킵니다. 그리고 살림에 좀 더 여유가 있을 경우에 각종 캠프에 아이들을 보냅니다. 과학캠프, 음악캠프 같은 것을 말하는 거지요.

여기는 생각 외로 악기 레슨을 그리 많이 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 주로 가르치는 건 여자아이의 경우 발레나 체조(Gymnastic)구요. 이유는 몸을 예쁘게 만들어 주고 신체 균형감각을 익히기 위해서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남자아이들은 물론 사회 체육이 구요.

전문성을 살리는 특기 교육보다는 사회 교육에 더 힘을 기울입니다
피아노나 바이올린, 미술 등 예능 교육 보다는 축구, 야구, 소프트 볼, 등 사회 체육과 걸스카우트 보이스카우트 활동 등 사회활동에 더 관심을 갖지요.

그리고, 악기 개인 레슨은 가격이 아주 비쌉니다. 시간당 30달러에서 50달러까지도 하거든요.

4. 장성희씨의 아이들도 사회체육 프로그램이나 사회 교육 프로에 참여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 큰 아이도 지난 학기엔 축구를 한번 시켜 보았는데요, 같은 팀의 엄마들이 그런 말을 하더라 구요. 한창 자라는 아이들이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걸 선택했다 구요. 특히 운동 하나 씩 해 두면 사춘기에 겪는 문제를 줄일 수 있을 거라고 말하더군요.

또, 이런 것을 택하는 데는 특기 교육보다 가격이 무척 싸다는 현실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난해 저희도 처음에 등록할 때 16주(네달)코스로 등록비 75달러를 냈는데 한시간 피아노 레슨비 3, 40달러에 비하면 아주 저렴하잖아요. 거기다 등록비만 내면 필요한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어요. 유니폼과 단체 사진 및 개인 사진 촬영비, 그리고 트로피까지요. 축구용 양말과 축구공, 그리고 축구화만 준비를 했습니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이들이 사회체육을 많이 선택하는 이유가 됩니다. 일 주일에 두 번 정도 연습게임을 하고 주말마다 다른 팀들과 시합을 갖는데 정규 게임에는 엄마 아빠와 가족들이 모두 와서 응원을 하며 성원이 대단합니다. 그런 분위기와 게임 자체를 가족이 함께 즐기는 거지요.

걸 스카우트나 보이 스카우트 같은 활동들도 비용이 거의 들지 않습니다. 입단비 같은 건 없구요. 단복도 꼭 똑같이 모두 구입할 필요는 없어요. 형편에 따라 각자 준비하면 되거든요. 모자, 스타킹, 조끼, 바지 혹은 치마 등 단복을 모두 갖추지 않아도 됩니다. 모두 구입하는데 무리가 될 경우는 조끼만 구입하고 청바지로 대신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다 갖추어 입는 아이들이 적을 정도입니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재료비 2달러를 내면 되고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간식을 준비하지요.

5. 그럼, 사회 체육 활동은 주 정부에서 지원을 해 줍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사회 체육 프로그램은 주로 지역사회의 공공 시설인 공원의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주관하거든요. 이 외에 커뮤니티 평생 교육 센터도 있어요. 저희가 살고 있는 귀넷 카운티에는(한국의 군 단위에 해당하는 행정구역) 귀넷 커뮤니티 라이프 에듀케이션이란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것도 카운티에서 운영을 하는 거지요. 주로 카운티 내의 몇 개 공원시설과 공립학교 시설을 이용해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주민들을 위한 아트, 댄스, 재정관리, 컴퓨터 교육, 사회 체육 프로그램들을 운영합니다. 사설 기관에서 하는 것 보다 가격은 조금 싼 편입니다.
주 중에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 클래스를 갖는데 과목에 따라 한 달에 40달러에서 100달러 선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걸 스카우트나 보이 스카우트 같은 사회 교육 프로그램은 회비를 받아 운영하지 않고 학부모들과 아이들이 함께 참여하는 펀드 레이징(Fund Raising)을 통해 캠프 비용 등을 직접 마련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쿠키 세일(Cookie Sale)이 구요.

6. 거기서 직접 아이들을 키우면서 참 좋은 사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지요.

-예, 바로 오늘 우리 큰 딸이 엄마의 이 방송 때문에 포기한 "Girls on the Run"이란 프로그램인데요. 이 것 때문에 제가 데려다 주질 못했거든요.

노스 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의 크로스 컨트리 대표선수였던 애나 헌터라는 여성이 시작한 프로그램입니다. 사회, 문화, 그리고 상업적으로 스테레오 타이프화 된 여성상에 머무르지 않도록 여자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3.1마일 달리기와 여러 가지 활동 등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키워주고 긍정적인 자아상을 갖도록 돕기 위해 시작했대요.

학교 클래스를 통해 정보를 알았는데 목적이 너무 좋아서 꼭 한 번 시켜보고 싶었어요.
12주 동안 일주일에 두 번, 1시간 30분씩 교육을 하는데 비용이 문제였어요. $140 달러면 개인 레슨이나 학원비보다도 훨씬 싼 가격이었지만 그걸 시키자니 그 달 저희집 예산을 초과하게 되더라 구요.

자세히 보니 이 프로그램은 참가하기 원하는 이들에게는 누구나 동등한 기회를 주고 있다면서 재정적인 문제로 어려움이 있을 경우에는 장학금이 있으니 주저하지 말고 문의하라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했지요. 제 문제를 얘기했더니 곧 장학금 신청서를 보내 주더군요.
수입에 맞추어 스스로 낼 수 있는 만큼만 내라고 쓰여 있었어요.

가계 수입이 2만 5천 달러 이하일 경우는 20달러, 2만 5천 달러에서 3만 달러일 경우는 40달러, 3만 달러에서 4만 달러 일 경우는 80달러, 4만 달러 이상일 경우는 140달러를 모두 내도록 권장한다는 가이드 라인이 적혀 있었구요.
그래서 우리 가계 수입에 맞춘 권장 비용을 지불하고 이 클래스를 택했습니다.

클래스 내용도 물론 좋지만 저는 솔직히 장학금을 받는 과정이 너무 맘에 들더라 구요.
저소득층이 보통 주 정부나 공공 단체에서 의료 혜택이나 재정보조를 받을 경우 신청서를 낼 때 꼭 함께 첨부하도록 하는 게 있거든요. 가계 재정 상태에 관한 뱅크 스테이트먼트(Bank Statement)나 월 수입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증빙서류를 요구하지 않고 개인의 양심에 맡긴 다는 게 참 좋았습니다.

또, 이 사회 프로그램 담당자들을 접하면서 그리고 제 상황에 맞추어 그 비용을 내면서 저소득층이기 때문에 느껴야 하는 자괴감 같은 걸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아틀란타 여성 기금 등 4개의 사회단체와 자선단체의 재정적인 지원으로 이뤄지고 있었어요. 여기 살면서 가끔씩 정부에서도 기대할 수 없는 이런 프로그램을 접할 때는 정말 살 맛이 나더라구요.


여기까지야. 어때? 미국 사교육에 대한 리포트 분위기가 너무 lazy하니? 근데 이게 바로 여기 애틀랜타 미국인들의 다수 중산층에서 중상류 층까지의 사교육 분위기다. 그렇게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물론, 저소득층과 최 상류층은 또, 조금 분위기가 다르지. 저소득층은 주정부 사회 교육도 못시키기도 하고 상류층은 테니스에 수영에 악기에 미술에 값비싼 개인 레슨비를 지불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참, 손석희씨의 질문 중에 중 고등학생들이 명문 대학을 가기 위한 과외 활동도 있느냐는 내용이 있었다. 그런 질문을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으면서도 갑작스레 받고 보니 횡설수설했다.

물론 있지. 수학과 영어, 과학 등 주요 과목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학원도 있고 과외도 많이 한다. 그런데 이런 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전체 학생들에 비해 그리 많지는 않아. 또, 누구나 다 시키려고 하지도 않고. 일단은 가격이 비싸 중상류 층 이상이 되어야 사교육을 시킬 수 있다. 미국에서는 한국과는 다르게 집이건 아파트건 매달 꼬박꼬박 나가는 엄청난 주택비와(총수입의 삽 분의 일 정도가 될 때도 있다) 자동차 할부금, 비싼 보험료 등에 교육비로 투자 할 수 있는 한도액이 한국보다는 적기도 하고.

또, 일반적으로 꼭 명문 대학을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특별히 명문대학을 가야 하는 목적의식이 있으면 가는 거고. 대부분 거주하고 있는 주의 대학을 지원할 경우 재정적인 혜택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명문대학이라는 간판보다는 소위 지방대학이라는 실리를 택하는 학생들도 많고.

한국 이민자 들을 비롯한 많은 동양인들은 아무리 저소득층이라도 과외 한 두개, 음악 레슨 하나 정도는 무조건 시키려고 애를 쓴다. 비싼 레슨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몸으로 직접 뛰는 나를 봐도 교육열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애. 내가 내 자식들 피아노 가르치랴, 산수 떨어지나 점검하랴, 영어 챙기랴 거기다 한국말 다 잊어버릴까 걱정하랴 참 바쁘다. 헌데, 부모가 그렇게 하면서 여기 공교육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고 학교에만 맡겨 놓으면 안심이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교사가 워낙 부족해 자질 미달의 교사들도 많이 있고. 엊그제 아틀란타 저널에는 얼마 전 여기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치른 시험 결과 약 절반 가량이 아직도 읽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났더라.

특히 여기서 인종적인 차별로 설움을 당하고 산다고 생각하면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할 수 없어, 그러니까 공부 열심히 해서 실력으로 눌러."

나도 가끔씩은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근데, 그럴 때마다 잠깐! 하고 말을 멈춘다. 그리고는 "공부 열심히 해서 실력은 쌓는데 누르려고 하지는 말아라"고 말을 바꾸려고 노력해. 물론, 생각대로 말을 바꾸는 게 힘들긴 하지만 말야.

여기 아틀란타엔 손석희 아나운서가 강조한 CNN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촌스러운 장성희 리포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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