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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아들아, 넌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니?
난 배웠어요, 워싱턴은 거짓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걸.
난 배웠어요, 모두가 자유롭다는 걸.
그게 내가 오늘 학교에서 배운 거예요.
그게 내가 학교에서 배운거에요.
난 배웠어요, 경찰이 내 친구라는 걸.
난 배웠어요, 정의가 결국엔 승리한다는 걸.
난 배웠어요. 우리 정부는 항상 옳고 절대 틀리지 않다는 걸.
우리 지도자들이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는 걸.

톰 팩스턴의 <넌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니?>의 일부


내가 놈 촘스키라는 이름을 알게된 것은 대학일학년 때 막 영어학공부를 시작할 때였다. 그후로 이 이름을 4년동안 내 이름보다 더 자주 쓰고 읽게 되었다. 그만큼 촘스키는 어학의 분야에서는 세익스피어 못지 않은 명성과 업적을 가지고 있다.

사실 대학을 졸업할 때쯤 그의 저서와 발간된 연도, 변형생성문법, 자극반응이론 등에는 넌저리가 난 터였다. 그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언어학을 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급기야 놈 촘스키의 수제자임을 가장 큰 자랑거리로 삼는 교수가 부임하기에 이르렀으니. 지금도 우리는 그 교수를 지칭할 때 이 말을 빼먹지 않는다.
“ 아 그 촘스키 수제자라는 교수님 말이야?"

촘스키는 여러모로 이상한(?) 사람이다.
나같이 언어학 전공자는 촘스키를 언어학의 대가로만 알고 공부를 한다. 이상하게도 그의 투쟁경력(?)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반면 해외의 운동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국의 영원한 데모꾼(?)인 이 사람을 모를리 없다. 마친가지로 이런 사람들은 그가 언어학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그는 언어학과 현실사회의 변혁운동이라는 두 분야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위치와 업적 및 경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는 데모꾼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끊임없이 미국의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대외정책과 자국의 이익에 따라서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 미국의 정치를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사실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등에서 촘스키는 미국의 인디언에 대한 탄압에서부터 최근의 걸프전쟁까지 미국의 부조리와 비도덕성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조금씩 촘스키의 단골메뉴에 식상해질 무렵 촘스키는 “잘못된 교육문제”를 새 화두로 들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 책의 제목만 본다면 이 책이 교육학 관련 책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제목과는 다르게 총 5장중 1장과 2장만 교육과 관련된 내용이고 나머지 3장에서 5장은 역시 촘스키의 단골메뉴로 채워져 있다.

역설적이지만 이 점이야 말로 촘스키의 잘못된 교육에 대한 비판이 강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 받고 있다. 즉 학교와 지식인 정부가 한 덩어리가 되어 국민을 속이는 현실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간접적인 절규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스턴 라틴 스쿨의 12살 소년, 데이비드 스프리츨러는 “충성의 맹세(미국인이 국기 앞에서 하는 서약)을 거부한 이유로 징계를 받게될 처지에 놓이게 된 일이 있었다. 그 소년의 항변은 미국은 지금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불평등이 만연된 사회이며 미국을 “원하는 것은 누구든지 원할 수 있는 행복한 사회”라고 찬양하는 맹세를 할수 없다는 것이다.

촘스키의 주장은 간단명료하다.
12살짜리 소년이 깨달은 사실을 교육을 훨씬 더 많이 받은 교사들이 왜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왜 그런 길들이기 교육을 시켜야 하는가? 교사의 임무는 말로만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학교가 부와 권력을 장악한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계획된 것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다. 과거나 현재에 권력을 선전하고 권력자를 찬양하는 교육을 그 얼마나 많이 저질러 왔는가?

사소한 예를 들어보자.
교과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지도자는 늘 위대한 인물이며 영웅이다. 늘 우리나라가 옳으며 정의롭다.

게다가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과 배경은 예외없이 상류층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라 달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늘 불리한 입장이다. 자신들의 생활을 그린 교과서로 공부하는 중 상류층아이들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이다.

학교는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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