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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3월 30일, 연세대와 신촌 일대에서 격렬한 시위가 있었습니다.
한때 민주 투사로 불리우며 민중의 벗을 자임했던 김대중 씨가 정권을 잡은 지 4년 되었지만 당신께서 분신했던 95년 3월과 별반 달라질 것이 없는 약한 자를 억압하고 강한 자를 옹호하는 폭거정권이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화염병이 터지고 최루탄 대신 고무 총탄이 등장하고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한 기동 타격대까지 출동했었답니다. 간신히 집회 대오를 빠져나와 신촌 지하철 역 아래에서 그만 부서져버린 목발을 바라보면서 95년 3월을 기억해 봅니다.

우리 과 전체 모꼬지 사전 답사를 가기 위해 학교 밖으로 나가려다 검문하는 전경에게 막혀 구경하자며 선배 손에 끌려 갔던 3월 25일. 연세대 노천. 그 곳에서 진행 중이었던 당신의 노제. 그곳에서 만났던 노점을 하시던 수많은 아저씨 아줌마들과 장애인 분들.

생전 처음 대학교 신입생이 아무 것도 모른 채 갔던 집회, 그 때 받아들었던 유인물의 당신의 그 처참한 모습을 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척수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을 전전하며 다방 껌장사, 수세미 장사 등으로 생활을 연명하다 85년에 어렵사리 아버지를 찾았으나 또 다시 아버지가 거부, 두 번이나 버림받았던 당신.

그나마 부질없는 목숨 열심히 살아보자던 당신의 희망은 중도에 당한 교통사고로 여지없이 깨져버리고 법적으로 존재하는 아버지 때문에 생활보호대상자조차 선정되지 못해 94년부터 방배역 근처에서 온갖 멸시를 마다않고 시작했던 테이프 노점.

이마저도 불시에 들이닥치는 단속반의 무차별적인 철거에 94년 6월 한쪽 다리마저 부러지고 말았지요. 그러나 당신이 삶에 대한 희망으로 끈질기게 쏘아올렸던 작은 공은 참으로 모질게 모질게 캄캄한 허공을 가로질렀습니다.

아! 그렇게도 치열하게 불타오르던 당신의 희망을 어느 누가 당신 몸에 끼얹은 신나와 기름 분노로 변하게 했나요? 도대체 어느 누가 당신 몸을 스스로 불살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인가요?

95년 3월 5일 오후 8시 30분경, 서초구청의 단속으로 장사하던 스피커와 밧데리를 빼앗기고 돌려 달라던 애원에 돌아오는 것은 온갖 욕설과 모멸감뿐이었지요.

그때였습니다. 당신이 이미 몸에 지니고 있던 시너를 온 몸에 붙고 스스로 몸에 붙인 것은. 당신은 얼굴에 3도 화상을, 온 몸에 88%의 중화상을 입고 강남시립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지요.

당신께서 병원에 실려온 후 "복수해 달라", "400만 장애인을 위해서 라면 내 한목숨 죽어도 좋다"고 절규한 것 기억하세요? 그 말 한마디가 당신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습니다. 당신께서는 분신 13일만인 3월 21일 오전1시 50분 숨을 거두시고 말았지요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당신의 죽음에 분노하며 당신을 ‘열사’라 이름지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은 어디 갔나요? 당신의 뜻을 이어 장애민중의 올곧은 삶을 위해 투쟁하겠다던 나열하기 조차 힘들었던 장애인 단체들은 다 어디서 무얼하나요?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씨는 명예 졸업장을 받았고 백골단에게 맞아 죽은 강경대 씨는 4월을 맞아 추모 사업이 한창 준비중인데 구천을 떠돌고 있을 당신을 위로 해줄 추모제라도 이 땅 어디에서 열리고 있기나 한 것인가요?

하다못해 낯부끄럽게 ‘열사’라 불러줄 그만큼 치열하게 살고 있는 활동가들, 운동가들, 그들의 그 현란한 말솜씨와 글재주는 무엇을 논하고 있나요?

도망쳐 뛰어오는 대학생 후배들을 보며 괜시리 눈물이 났습니다. 당신을, 당신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열사로 추모하지 못하는 것도 그네들 잘못이 아닌 것을, 신촌 지하철 계단에서 홀로 덩그러이 남겨져 한참을 서글퍼했습니다. 장애인은 '민중'에서도 소외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4월로 드는 첫길목, 집에 돌아와 신문 스크랩을 뒤져 당신의 그 유인물과 기사를 찾아 한참을 보았습니다. 바로 어제도 한 장애 아동이 지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죽임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어머니를 살인자이게 하고 장애인을 죽음으로 내모는지 그런 현실에서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할 수 있는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당신의 영혼 답장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단지 이렇게 편지로라도 당신을 ‘열사’로 기억해 주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갔습니다.

최정환 열사님,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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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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