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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건 말건 나는 꺼벙하게 부풀어 있는 아내의 허접스러운 파마머리만 보고 있었더랬다."-오찬식의 바꿔살기

여기서 '허접스럽다' 허름하고, 잡스럽다란 뜻이다. 허접, 허접쓰레기, 허섭쓰레기 같은 말로도 쓰인다. 허접스럽다 뿐 아니라 비아냥, 홀로서기, 해지개 , 참맛 ,외곬수, 모듬 같은 말이 다 토박이 말이다.

토박이 말이란 한자어와 외래어를 제외한 순 우리말을 말한다. 그리고, 한 낱말이 한자말과 토박이말로 겹쳐 이루어진 때에는 뜻이 우세한 쪽을 따른다. 한자말이라고 하더라도 뜻 또는 형태소의 변화가 일어난 경우는 토착화된 말도 보통 토박이말도 잡는다.
이런 토박이말은 일본어의 찌꺼기, 지나치게 어려운 한자어, 특히나, 무분별하게 들어온 외국어에 가려 쓰임새가 좁다. 그냥 길거리를 나가더라도, 실제 순 우리말의 간판을 찾기는 예삿일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중고생 및 대학생들 사이에 많이 쓰이는 토박이말이 있다. 우리 순 한국말을 쓰는 일이 좋은 현상이기는 하나, 쓰임새로는 그리 반길만한 소식은 아니다.

그 현상의 주인공은 위에서 논했던 '허접스럽다' 라는 말이다. 한 때 인터넷 사이트에 곳곳에 올려졌던 인기 글 중에 엽기적인 스님에서도 허접이라는 토박어를 볼 수 있다.

엽기적인 스님.
-중략-
2. -겜방에서 스님과의 두 번째 만남-

지하철 사건 이후..
이주가 지나고 그 스님을 강남의 한 겜방에서 다시 만났슴다.
즉빵에 알아봤죠. 가까이 가서 봤습니다. 그리고 놀랐습니다.
저는 무슨 인터넷이나 워드 같은 거 할 줄 생각했는데...
스타크래프트 베틀넷을 하고있더군요... 막 방을 만들었습니다.
`1:1 오빠 살살` (-.-;;;;)
즉시 한명 드러옵니다. 인사대충하고 플토로 시작하더군요..
5 4 3 2 1 0...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무지 빠른 손놀림으로 플브를 정확하게 미네랄에 찍습니다. 속으로 조금 감탄했죠. 허접 일 줄 알았는데...
-중략-


'엽기적인 스님'은 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스타 크래프트, 포트리스 같은 길드 게임에서 상대와 대화를 주고 받는 가운데 많이 볼 수 있다. 게임에 관련된 게시판이나, 일반 게시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데, 보통 허름하고 잡스러움의 원 뜻보다는 실력 없는, 아무것도 아닌, 별 것 아닌,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게임 실력에 지위나 위치에서의 최하위를 나타내는 데, 쓰인다. 그러다 보니, 게임의 상대편을 공격하는 말로 자주 등장하고, 상대편에게는 그리 썩 내키지 않는 순우리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허접 이라는 말이 정겹고, 구수한 토박이 말이라는 사실을 거의 알지 못한다. 워낙 시대가 컴퓨터와 떼어 놀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게임은 남, 녀를 가리지 않고, 젊은 층에 폭넓은 인기를 받고 있다. 그러면서, 허접 이라는 토박이말은 일상 생활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다. 질이 안 좋은 제품, 게임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 능력 없는 사람, 자기 자신에 적이 되는 사람, 무관심 받는 사람들에게 허접이라는 말은 그 모든 것을 포함한다.

허접스럽다 , 허접의 본 의미가 허름하고, 잡스럽다 의미여서, 결코 좋은 뜻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문학 작품에서나 등장하는 고유어이고, 토박어이다. 단어 자체가 좋은 모습을 말해주진 않지만, 원래 그 쓰임이 크게 욕되지 않고, 과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읽는 독자의 상상력을 구수하고, 정겨운 느낌으로 유도한다.

허접스럽다 라는 말은, 게임에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말로 쓰기에 바르지 않다. 그 순 의미를 잃을 뿐 아니라, 이렇게 잘못 쓰인 토박어는 안 그래도 열악한 국어 사용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세계화가 되면서, 우리나라 또한 쏟아지는 외국어에 우리의 순 우리말을 잃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어길 순 없지만, 남은 우리말이라도 제대로 알고 바로 써야 하겠다.

덧붙이는 글 | 김정영 기자는 군산대학교 극예술연구회 해왕성에서 활동중이며, 시나리오 쓰기와 자유기고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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