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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욕망의 여신"(Goddess of Love and Desire), '라티(Rati)'가 들고 있는 화살이 눈에 들어왔을 때 미누 슈클라의 한마디가 생각났다. 미누 슈클라는 바로 이 작품을 그린 작가지.

"It is impossible to conquer Rati and Kama because to conquer desire is a desire in itself."(라티와 카마를 정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면 그것을 정복하고 싶다는 것 자체가 욕망이니까 - 카마는 힌두교에서 말하는 사랑의 신이며 라티는 카마의 아내로 사랑과 욕망의 여신이다. 힌두교에서는 인간의 모든 욕구들은 그녀가 쏜 화살에 의해 생겨난다고 믿는다)

오늘 나를 여기에 서게 한 이유중의 하나.
그래, 뉴욕 브루클린 전시관에 가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지. 르네 칵스의 "요 마마의 최후의 만찬"을 직접 보고 싶다는 욕망. 자신이 직접 누드 모델이 되어 벌거벗은 열두 사도와 함께 여자 예수로 분했다는 사진작가 르네 칵스를 만나고 싶었다.

그게 바로 "신의 여성적 이미지"란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여기 애틀란타 콜럼비아 신학대학원 해링턴 센터 복도에 나를 서게 했다. 전시회를 한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재기만 하다가 '그래, 뉴욕까진 못 가더라도...'하면서 차를 몰았다. 봄비라지만 아직은 춥고 축축하게 내리던 날 커피 한잔과 점심을 대신할 수 있는 크래커를 챙겨들고는.

▲Isis" Jean Gibb, Inanna doll 1998 ⓒ 2001 장성희
거의 한시간을 운전해 해링턴 센터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나를 제일 먼저 맞아 준 건 고대 이집트 풍요의 여신, '이시스'였다.

"신의 여성적 이미지들은 어떻게 신이 여성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며, 우리 안에 존재하며 자신의 신성한 메시지와 힘과 은혜를 드러내는 지 보여준다"

전시회 입구에 써 붙여놓은 문구를 읽으며 흠..., 신의 '여성적' 이미지라, 신의 '남성적' 이미지에 관한 전시회가 따로 열리는 날은 언제가 될까? 라는 생각을 하는 건 내가 아직 페미니즘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신이 아직 남성성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까.

"신의 여성적인 이미지에 관한 전시회"가 열리는 한 세상은 성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 세상은 때로 거기서 자유롭지 못한 나를 보게 한다는 생각을 할 때 자유로운 표정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저 여자는 어떤 계시를 보았을까? 분명 그녀의 얼굴은 네모 안에 갇혀 있었는데 그녀의 표정은 자유롭고 그녀의 눈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Revelation, by Teresa Brazen, acrylic on canvas,2000 ⓒ 2001 장성희

뚜렷한 원색으로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끄는 '계시'를 시작으로 멜리사 해링턴, 헤더 크레이머, 마다 데브터, 엘리샤 필즈, 메리 가터, 진 깁, 멜리사 해링턴, 세실리아 케인, 모니크 메이나드, 주디 패러디, 줄리 퓌트겐, 레아 르우벤 원, 플로라 로제프스키, 미누 슈클라, 프랜신 스토웨 등의 작품을 하나씩 만나며 해링턴 센터 복도를 모두 돌아봤다. 이젠 이름만 읽어도 동양에서 왔는지 동유럽인 인지 아니면 아프리카 태생인지 독일 할아버지를 갖고 있는지 대충 감이 잡힌다.

"그런데 역시, 남성 작품은 적군."
참여한 17명의 작가 중 남성 작가는 둘 뿐이다.
폴 크레이그헤드, 마이클 스코필드.

"혹시, 뭐 도와 드릴 것 있습니까?"
혼자 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복도를 따라가던 한 남성이 내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통성명을 하고 보니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바로 그 사람이다.
콜럼비아 신학대학원의 신앙과 삶 평신도 연구소장, 릭 디트리크 박사.

(이거 참 잘 만났네.) 좀 미안한 감은 있지만 다짜고짜 뉴욕 브루클린 전시회에 관한 그의 견해부터 묻는다.

"'요 마마의 최후의 만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카톨릭 교회는 신성모독이라고 하고 쥴리아니 뉴욕시장은 당장 치우지 않으면 시 보조금을 줄 수 없다고 또 저렇게 난리법석인데... "
"아, 예.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 얘기시군요. 1999년에도 성모마리아 가슴에 코끼리 똥칠을 한 작품 때문에 말썽을 빚었죠. 인간이 신을 이해하는 방법은 참 다양합니다. 그리고 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도 다양하구요. 한 작가가 표현한 신성에 대해 관객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도 있고 거기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반대로, 작가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을 수도 있고 의심을 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한 작가의 작품이 다양한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 자체에도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인정되어야지요."

▲ Divine Passage, by Paul Craighead, ceramic, 2000. 이번 전시회에 참여한 남성 작가 두 명 중 한 명의 작품 ⓒ 2001 장성희
"여긴 기독교 신학대학원에서 하는 전시회인데도 작가들의 성향이 다양하네요. 아까 저쪽에 전시된 작품을 보니까 힌두교 여신들도 전시 되어있고..."
"예, 메트로 아틀란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에게 신의 여성적인 이미지를 주제로 작품을 보내 줄 것을 요청했지요. 참여한 작가들은 기독교 배경을 갖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다양한 문화와 전통과 사상과 정서, 그리고 다른 종교적인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작가들의 이 같은 성향과 그에 따른 작품세계는 존중해 주어야지요. 작가들의 눈을 통해 이해되고 표현된 신의 모습을 감상하고 토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나는 표현주의라는 표현 방법들을 통해 정치적, 정서적, 영적인 나의 목소리들을 전달하며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이번 전시회에 참가한 작가, 레아 르우벤 워너의 말이다.

브루클린 미술관과 르네 칵스는 뉴욕에만 있지 않았다.
"Think Out Of Box"의 성역을 깬 르네 칵스의 경종은 여기서도 울리고 있었다. 브루클린 미술관에 초대될 정도로 대단하지도 센세이셔널하지도 않은 작품들이었지만, 그래서 온 세상의 시선을 끌만큼 감각적이고 자극적이진 않았지만 해링턴 센터 침침한 복도에도 르네 칵스가 울리고 싶어했던 경종은 낮은 목소리로, 혹은 평화로운 목소리로 울리고 있었다.

뉴욕이고 애틀란타고 경종은 끊임없이 울리는데 들어야 할 이들은 듣지 않는다. 가톨릭 교회는, 그리고 가톨릭 교인인 줄리아니 시장은 르네 칵스를 신성모독으로 몰기 전에 그녀가 그녀의 작품을 통해 어떤 경종을 울리기 원하는 지 귀 기울일 수는 없는가?
'요 마마의 최후의 만찬'이란 자신의 작품은 여성의 사제서품을 금지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에 대한 합법적인 비판이라는 그의 주장을 한번 들어 볼 여유는 없는가? 더하여, 가톨릭 배경을 갖고 자라난 그녀가 왜 그런 식으로 가톨릭을 비판하고 있는지 교회안을 들여다 볼 의향은 없는 것일까?

신성이건 사상이건 그것을 믿는 이들의 절대적인 신념은 종종 다툼과 억압을 낳는다. 그리고 사람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남긴다. 엊그제 그대로 지나갔던 C. S. 루이스의 한 마디가 새롭다.

"신앙인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잘못은 자신을 너무 심각하게 몰아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죄악 중에서도 가장 나쁜 점인 자만의 한 형태이며 그것은 인간을 신성으로 이끌기보다는 악마적으로 이끈다."

...

비처럼 식어버린 커피가 차다.
커피건 그림이건 따듯한 게 그리운 날이다.
아이를 품은 어머니의 자궁처럼.

덧붙이는 글 | 지난 주 목요일 그러니까 22일에 다녀온 내용을 이제야 올립니다.
이 기사는 지난 1월 21일 부터 2월 28일까지 애틀란타에 있는 콜럼비아 신학대학원 해링턴 센터에서 열린 전시회 "Feminine Images of God"에 다녀와서 쓴 글이에요.
이 전시회는 이 학교의 The Lay Institute of Faith and Life 주관으로 열렸으며 IVAC(Individual Visual Artists' Coalition) 회원 17명의 작품 23점을 전시했습니다.
사진 기술이 변변치 못한 데다 카메라를 떨어뜨린 후 어떤 날은 초점이 잘 맞지 않아 사진이 선명치 않군요.
좀 더 좋은 사진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되겠지요.
기사도 더 빨리 올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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