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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형제가 있었다.

사촌지간인 이 형제는 6개월 차이로 형 동생이 되었다. 터울이 비슷한 탓에 이 둘은 때로는 경쟁하기도 하고 때로는 격려하기도 하며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쯤 사촌 동생은 '가치있는 삶을 살고 싶다며' 가톨릭 수도자가 되어 신학대학에 진학했고 사촌 형은 목표하던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하게 되었다. 집안이 모두 가톨릭 신자였던 까닭에 이 두 형제에게는 그 길이 무척이나 고귀해 보였고 사촌 형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사촌 형은 아직 자신도 성직자의 길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단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하느님께 내던지는 어려운 선택을 한 사촌 동생이 자랑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나 사촌 동생은 사촌 형의 착하고 성실한 품성을 익히 겪고 있었던 터라 형에게 가톨릭 사제의 길을 함께 가자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형은 자신은 너무 많이 부족하다며 사양하곤 했다. 그래도 동생이 추천해주는 가톨릭 신앙 프로그램들에 참석을 하곤 했다.

그러던 중 대학 입학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형이 동생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도 너와 같은 길을 가고 싶어 하지만 나는 너같은 수도자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재속 사제가 되고 싶구나"

그렇게 해서 형은 광주에서 동생은 서울에서 각각의 신학생 생활을 하게 되었다. 두 형제는 어린 나이였지만 자주 편지를 보내며 서로 영적인 교감을 했다. 또한 비슷하면서도 다른 서로의 길에 대해 격려를 하기도 하고 때론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형이 먼저 군대에 가게 되었고 동생은 학생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동생은 점점 신앙에서 멀어져 갔고 수도생활의 단점들을 크게 보기 시작했다. 마침내 동생은 신부로의 길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동생은 형에게 이 일을 상의할 수 없었다. 형에게 자신있게 그만둔다고 고백할 용기도 없었지만 군에 있는 형에게 마음대로 연락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형은 무척이나 안타까워했다. 자신보다 1년 먼저 신학교에 입학했던 동생이 대뜸 그만둔 것이 못내 서운했다. 자신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그만두다니.

하지만 둘은 서로를 신뢰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생이 군에 가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이 되고 형도 자신의 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봐야겠다며 신학교를 휴학했다.

둘은 감옥에서 면회를 하면서도 동생이 출소한 뒤에도 긴 얘길 하진 않았지만 서로가 가야할 길에 대한 확신을 주고받았고 동생은 형이 신부가 되는 길을 계속 걸어가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늘 가슴에 품고 기도해 주었다.

형도 동생이 신학교 자퇴, 구속 등으로 이어지는 생활 속에서 혹시나 좌절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기도해 주었다. 시간이 흘러 2001년 1월 형은 드디어 신부가 되었고 동생은 몇 번의 굴곡 끝에 의대생이 되었다.
형은 자신의 삶을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온전히 바치는 사제의 길을 시작하게 된 것을 기뻐했고 동생은 영혼의 의사인 신부가 되는 길을 포기했지만 육신의 의사가 된 것을 기뻐했다.

동생은 형이 처음으로 집전한 미사를 드리는 날 밤 형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 하느님은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꼭 들어주신다고 생각해.우리가 10년 전에는 신부와 의대생로 만나게 될 줄 아무도 몰랐지만 이제 생각해 보니 우리가 간절히 바랐던 것은 단지 신부가 되고 싶다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 형과 내가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래야 할 것은 우리의 작은 행위들이 온 세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인 것 같아.그리고 신부님이 된 거 진심으로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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